원어민 강사가 가르치는 영어 회화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다면 한 번쯤은 영어 이름을 물어보거나 없다면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로마자화(anglicized)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언어 몰입 (language immersion) 교육 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주 많이 불편했다. 태어난 연도, 월, 일, 시간을 고려하고 앞으로 잘 되라는 부모님의 바람까지 꾹꾹 눌러 담겨 있는 내 이름을 왜 바꿔야 하는가? 어린 마음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첫 수업을 진행하는 원어민 강사들에게는 항상 콕콕 집어서 알려줬다.
작년 여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소재의 레이니 컬리지 수학 교수 매슈 허버드가 베트남 여학생 푹 부이 지엠 응우옌에게 영어 이름을 사용하라는 이메일 보낸 것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하버드는 이 학생에게 너의 이름은 영어에서 욕설과 비슷한 발음이라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름을 불러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영어 이름을 만들라는 내용의 이메일까지 보냈다.
"If I lived in Vietnam and my name in your language sounded like Eat a D---, I would change it to avoid embarrassment both on my part and on the part of the people who had to say it, " Hubbard wrote. "I understand you are offended, but you need to understand your name is an offensive sound in my language."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존경심을 표하는 유교 문화의 잔재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 교수가 학생에게 친절하게 조언을 해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문화가 아니다. 허버드가 정말로 학생을 생각해서 조언을 했다면 "다른 학생들이 너의 이름을 듣고 웃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네가 괜찮을지 걱정이 되는데 닉네임은 따로 있나? 풀네임 사용하길 원하다면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알려달라"라는 이메일을 보냈어야 한다. 또한, 랭귀지 스쿨도 아니고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학생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양 이름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는 생각은 안 한 것일까?
이메일에서 타이틀 나인 (Title IX)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푹 부이 지엠 응우옌은 미국 대학교 생활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던 학생인 것 같다.
미국의 타이틀 나인 (Title IX) 이란?
1972년 미국 교육계의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다.
No person in the United States shall, on the basis of sex, be excluded from participation in, be denied the benefits of, or be subjected to discrimination under any education program or activity receiving federal financial assistance.
미국의 그 어떤 사람도 미국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성별로 제외되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큰 규모의 사립 대학교로 탄탄한 펀드레이징 (fundraising)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 내 모든 고등학교, 대학교들이 타이틀 나인 (Title IX)을 준수해야 한다.
더불어 이름 발음을 찾아보니 욕설과 비슷하다는 허버드의 주장과도 완전히 다르다. 찾아볼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저렇게 몰상식하고 차별적인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문화를 최고라는 생각을 근저에 깔면서 다른 문화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구시대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아주 잘못된 태도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양인에 대한 은근한 차별에 여성 차별까지 미국에서 당할 수 있는 차별은 다 들어간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름의 상징성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이름을 가짐으로써 인식이 된다는 진리를 짧은 시에서 고스란히 보여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실 인식이 된다는 것은 아주 깊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자기 집에서 경찰에게 살해당한 흑인 여성 브리오나 테일러와 관련한 움직임에 #SayHerName 이 붙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미국인들도 한 사람의 이름은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괴짜 경제학(Freaknomics)을 보면 흑인 인권 운동이 활발해진 1970년대부터 흑인 부모들은 백인 이름이 아닌 흑인의 뿌리와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흑인 이름을 아이들에게 붙여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 재학 시절 기분 나쁜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었을 이 사건을 푹 부이 지엠 응우옌은 용기를 갖고 당당하게 학교 측에 정식 고발했다. 또한,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이름까지 나온 이메일을 공개하고 나눔으로써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힘든 동양 이름을 가진 다른 동양 학생들에게 있었을 차별에 대한 판례까지 만들었다.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영어 이름을 만들자면서 대표적인 남녀 이름 500개를 모아둔 책을 발견했다. 3년 전인 2017년에 출판되어 아직까지도 판매가 되는 책이다. 이런 것이 버젓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진정한 글로벌 시대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것 같아서 참으로 씁쓸하다. 또한, 이런 태도는 우리 스스로가 문화적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외국인들을 게으르게 하는 것이다.
구직 활동을 하던 때에 동양 학생들 사이에서 영어 이름을 이력서에 넣으면 서류 전형을 쉬이 통과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에서 영어로 일하고 살아가겠다고 결정한 것은 나 자신이지만, 나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한국식 이름을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런 나의 생각과 태도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확대 해석하고 싶지 않다.
미국에 살면서 동양 이름을 유지하는 것은 인종 차별'과 '다양성'이라는 미국 사회의 두 가지 중요한 키워드를 나 스스로 지켜 나가는 것이며 진정한 글로벌 사회를 위해 작은 보탬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같은 맥락에서 본인의 자유 의지와 생각으로 영어 이름을 쓰고 싶다면 이 또한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