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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룬드 Mar 04. 2021

3월의 설국, 강릉

출근길 풍경

영동지방의 기후는 태백산맥의 존재로 인해 서쪽과 몹시 다르다. 겨울에는 보통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북서풍이 부는데, 이 바람은 원래도 대륙발인지라 건조하지만 추가로 태백산맥을 넘는 순간 푄 현상으로 인해 극도로 건조해지며 기온은 더 높아지고, 풍속도 더 빨라지게 된다. 따라서 12-2월의 강릉에서는 영서, 수도권보다 따뜻하고, 눈은 커녕 산불이 훨씬 무서운 계절을 맞이하는 게 일반적이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푄_현상



그러나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늦겨울-초봄이면 상황이 달라지는데, 북서풍이 약해지게 되면서 오호츠크해 기단의 영향력으로 동해와 태평양의 습기를 머금은 동풍 내지는 북동풍이 부는 때가 4월까지도 있다. 이때는 푄 현상이 반대방향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태백산맥의 경사가 서쪽에 비해 훨씬 급한 터라 영동지방에 내리는 눈의 양은 차원이 다를 정도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4년의 폭설사태가 있었다. 1주일 내내 눈이 연속으로 오면서 강릉지방 누적 적설량이 사람 키만큼 측정되었다고 한다. 당시 필자는 1년에 한 번 강릉에 2달씩 파견근무하는 상황이었던 터라 강릉에 없었고, 대신 동기 두 명이 근무 중이었다. 폭설로 인해 병원 오는 환자들이 확 줄었겠다며 필자가 부러워하자 근무했던 동기 누나 왈 "줄긴 줄었는데 와중에 가끔 한 번씩 구급차에 실려오는 환자들 상태가 무시무시하다." 라며 진절머리를 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파견근무에서 생긴 인연의 결과 필자는 2016년부터 강릉에 이주하여 지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눈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사 온 후로는 눈이 내리는 일이 거의 없었고 봄까지 건조하여 산불은 기본,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가뭄으로 인한 단수' 사태가 발생할 뻔했던 적도 있는 터라, 이러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영영 눈 구경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유치한 걱정도 하며 지냈다.


어제는 3월 1일, 계절이 공식적으로 봄으로 바뀌는 날이었다. 날씨가 우중충해 보이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내리던 비가 우박이 되고 그게 금세 눈으로 바뀌면서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데, 기세가 심상치가 않더니 급기야는 한밤중에 제설차가 출동할 지경이 되었다. (영동지방의 제설은 신속하기로 명성이 높다.) 동네 주민들은 오후부터 삼삼오오 모여 집 앞 도로의 눈을 정리하는 게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집에서 찍은 사진. 온 세상이 하얗다.


밤사이 눈이 계속 내리고, 출근길 차들은 경사에서 올라가지 못해 후진하기 일쑤인 와중이라, 필자는 직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래는 출근길 맞이한 풍경들. 평소 출퇴근길 가방에 사진기를 넣어 다니는데, 이 날만큼 많이 찍은 날이 없다.

분명 어젯밤 제설차가 정비하고 지나간 길이다. 후진등이 켜져 있는 앞차는 결국 반대방향 도로로 나간 듯.
위 도로가 이어진 길인데 경사가 심하다. 간혹 감히 도전하는 차들이 있긴 했는데 결국 다 돌려서 나간 모양.
소도시에도 노사분규가 있는 현실. 오늘은 쌓여있는 눈의 무게에 눌려있다.
올림픽이 끝나고 제대로 쓰이지 않는 비공식 도로라 제설차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대신 주민들이 눈을 치우고 있다.
교통량이 적은 도로도 한번 정도는 정비가 되어 있는 상태다. 제설차가 눈을 치우는 광경은 꽤나 박력이 있어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학교 앞 도로도 제설에 열심인 분들이 많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겨울방학이 끝난 첫 등교일이던가?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꺾여버린 인도변 소나무
같은 자리에 1년 내내 주차되어 있어 무슨 용도인가 했더니 사설 제설차였다. 후덜덜..

도착하니 오전 8시 54분, 신발과 양말이 흠뻑 젖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통장님께서 진입로를 정비하셨다 한다. 오후 되면 눈이 그칠 예정이라 부모들이 저녁에 모여 나머지 제설작업과 이글루 건축을 할 예정이다.


강릉의 3월이 눈, 그리고 신속한 제설작업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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