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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룬드 Mar 08. 2021

나는 왜 강릉에 왔나

강릉으로 이주하기로 한 이유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참 이사를 많이 다녔다. 기억의 시작은 6세 때 전라남도 순천이지만, 그 전에도 아버지의 직장 전근으로 인해 이사를 여러 번 다녔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멀리 떨어진 경상북도 울진까지도 살았던 적이 있다. 모친이 본 사주에서는 역마살이 있다 듣기도 했고. 공교롭게도 유년기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울진에 살 당시의 기억을 들곤 했다.


그런 역마살 덕분인지 필자는 제주도에서도 2년 정도 사는 경험을 누렸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공중보건의 지역 선정을 하는데, 제주도는 제주 출신을 빼고는 인기가 없어(대부분은 서울/부산과의 지리적 거리를 기준으로 인기가 정해졌다.) 그리로 지원했던 결과 그대로 배치가 되었다. 이때만 해도 본격적인 제주살이 붐과 중국발 관광객 러시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터라, 나름대로 조용한 제주를 만끽하다 떠나왔다.

제주를 떠나오기 전 마지막 주말의 사진. 주변 직원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오름을 오르라고 권유하였다.


그렇게 국내 최고의 관광지인 제주에서도 살아봤건만, 전공의 시절 지역사회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이주지를 정할 때 마음속에는 제주가 있지 않았다. '웬만하면 강릉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 보는 마음에서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기후

태백산맥의 존재는 강릉의 기후를 독특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다. 한반도는 편서풍대에 위치하여 있어 기본적으로 바람의 방향은 서풍이 된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는 이유도 이 편서풍인데, 태백산맥이 편서풍을 받아내며 영동지방이 갖는 이점들이 몇 개가 생긴다.


먼저 미세먼지가 한 번 걸러진다. 수도권 미세먼지 상태가 매우 나쁨이 되면 여기도 어김없이 탁해지지만, 그래도 그 정도가 덜하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날에는 청량함이 느껴진다. 2008년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왔을 때 그 맑은 공기에 감탄했다 귀국길 스탑오버로 들른 대만에서 공기가 너무 탁해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서울이 그 상황이 되어 있는 바, 미세먼지를 피해 강릉에 이주한 가족도 은근히 보이는 실정이다.

모든 것이 쨍하게 보였던 뉴질랜드의 남섬에서.

또한 이전의 글에서 이야기한 '푄 현상' 역시 독특한 기후 형성에 한몫을 한다. 강릉의 겨울은 더 따뜻하고, 한여름은 기온이 높은 반면 약간은 덜 습하다. 장마의 영향도 비교적 덜하여 땅이 말라있는 날이 많은 편으로 보인다. 이렇게만 보면 나쁜 게 없는 기후 같지만, 가끔 태풍이나 기단 영향으로 동풍이 휘몰아칠 때는 폭우나 폭설로 인해 심하게 피해를 받는 곳 역시 영동지방이다. 강릉 지역민들은 아직도 2002년의 태풍 루사로 인한 무시무시한 피해를 기억하고 있다. 필자 역시 집 지을 터를 알아보며 저지대 쪽은 피하고 있는 중이다.


제주도는 해양성, 아열대 기후를 띠다 보니, 비교가 많이 된다. 9월 말까지 덥고 습한 터라, 여름을 싫어하는 필자로서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날그날의 날씨도 예측이 잘 되지 않는 편이었다. 지구 온난화 덕에 평균 기온이 점점 상승하는 중에 이미 충분히 더운 지방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옅어졌던 것 같다. 시원하고 공기맑고 장마가 적은 곳, 강릉!


2. 수도권과의 교통

과거에는 영동고속도로가 터널도 없이 대관령을 직접 넘는 왕복 2차선이었을 정도로 열악했던 강릉이지만, 시절이 좋아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부모님이 서울에 거주하시는 필자도 필자지만, 잘 다니던 공연기획사를 그만두고 평생 살아온 서울을 떠나 지방에 거주해야 하는 아내 역시 고려의 대상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주 당시는 KTX 개통 이전이었던 터라, 단순히 거리 계산만을 통해 KTX만 열리면 서울 시내권으로 1시간 남짓이면 들어갈 거라는 예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부담 없이 당일치기 방문도 가능하고, 잘만 하면 생활권에 편입되어 출퇴근도 하겠다는 부푼 희망을 가졌지만, 받아들인 건 서울역 2시간 청량리 1시간 40분이라는 현실. 사실 이 정도만 되어도 감지덕지이다.


비슷하게 공보의 당시 제주도를 지원해서 내려갔을 때에, 단순히 비행시간 50분만 계산하면서 '이 정도면 충청도보다 가까운데 뭐하러 탈락하면 격오지까지 튕길 수 있는 충청남북도를 선택하는 걸까?' 하고 내심 비웃다, 그나마 공항에 가까운 도청에 오전 9시 도착하려면 서울집에서 6시에 출발해야 각종 수속과 이착륙을 마치고 겨우 턱걸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필자의 어리석음이 떠오른다.

대충 절반 거리니까 시간도 절반이겠지? ㅎㅎ (출처: https://ko.wikipedia.org)

여하튼, 서울 시내와의 사이에서 시간 계산이 되는 2시간짜리 교통수단이 있는 것은 큰 장점이다. 실제로 코로나 유행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운전을 잘 못하는 아내가 아이 데리고 KTX를 통해 서울에 다녀가기도 했었고 말이다. 아무쪼록 이 유행이 올해 안에는 잦아들길 기원한다.


3. 비교적 순박한 사람들

대부분의 의사들은 가장 바빴던 시절 중 하나로 인턴(수련의) 및 전공의 시절을 떠올릴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잘 무장된 사회 초년생이 아니라면 잘 버텨내기 힘든 상황의 종합 선물세트가 인턴인데, 적응될만하면 1 달마다 급격히 바뀌는 소속과 업무, 상급자 의사에 덧붙여 간호사들이 뿜어내는 하청업무, 손재주 없는 이들이라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술기들 등등. 여기에 초년생들에게 버거운 '사회적' 스트레스가 곁들여지면 그 기억은 평생 각인될 터이다.


그중에서도 악명 높았던 근무처가 지방 모 도시(편의상 Z시라 하자)의 응급실 근무 파견이었다. 뺑뺑이를 돌려 재수가 없으면 1/4 확률로 가는 곳이었는데, 반대로 강릉 쪽 응급실 파견은 '꿀이다'라는 관점이 퍼져 있을 만큼 인식의 차이가 극과 극이었다. 필자는 악명 높은 쪽에 다녀왔는데, 정말 학을 떼고 왔다. 휴일 없이 12시간마다 보장된 식사/휴식 시간도 없이 교대 근무하는 터라 심신이 피폐한 와중에 밤마다 취객들을 상대하는 스트레스까지. 배식 온 밥은 훈련소 짬밥보다 질이 떨어졌고 인사불성으로 만취한 이들은 경찰이나 119 인계하에 응급실에서 한잠 자고 갔다. 와중에 벌어지는 실랑이는 오롯이 응급실 의료진의 몫. 막판에는 취객의 폭행에 대해 고소장도 한 장 쓰고 나왔다.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본인 의지로 이 도시 땅을 다시 밟을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던 내용은 아직도 유효하다.


1달 후 신분이 바뀌어 전공의 자격으로 두 달간 체류했던 강릉은 명성대로 훨씬 온화했다. 직원과 의료진은 모두 친절하고, 개인적으로 친분도 쌓곤 했으며, 병동과 응급실 환자나 보호자는 훨씬 유순한 편이었다. 비록 과 내에서는 가장 힘든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Z시에 비하면 천국이라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일했다.


사실 필자의 색안경과 착각이기도 했던 게, Z시 병원은 시내 번화가 중심지에 위치해 있었던 곳이라 취객이 많을 수밖에 없던 지리적 여건도 있었고, 당시 병원 재정도 몹시 불안정한 상황으로 보였다. 당연히 근무여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여유를 갖기에도 힘들었다. 그리고, 의료진을 힘들게 하는 진상들이 강릉이라고 없는 것도 아니다. 억양이나 분위기도 무뚝뚝함이 묻어 있는 편이고. '육지'라는 단어가 엄연히 존재하는 제주보다야 훨씬 덜하지만 외지 출신을 그다지 달가워할 리도 없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내가 맘에 들면 다 가려지는 것들인데.

흥정을 잘 못하는 터라 시장에서는 패배만 적립하고 돌아온다. 후..


4. 커피

대학생 시절, 뜬금없이 병원에 입점해 있던 그 '스타벅스'는 필자 눈에는 오롯이 사치스러움으로만 보였다. 에스프레소 음료만 마시면 신체 정신적 긴장감이 고조되어 구역감이 발생하는 고통만 맛본 터라(그렇다고 날이 꼴딱 새지는 것도 아니고) 커피란 음료 자체를 즐기지 않았고, 남들같이 매일처럼 마실 돈도 없었다. 그나마 연애를 하면서부터 카페를 가끔 방문하긴 했는데, 저녁 식사를 하고 허전할 때면 커피점에 가기 싫으니 상대를 살살 꼬셔서 맥주 가게에 데려가는 게 보통의 데이트 코스였다.


생각이 바뀐 것은 위에 언급한 강릉 병원 근무 시절이다. 당직근무를 서고 나서 아침 회진을 돌고 처방을 넣은 후 한잠 자고 나면 보통 오후 회진 준비까지 두세 시간이 남는데, 이 시절 필자의 소일거리는 병원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동네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저 아랫동네에서 발견한 소박한 카페가 한 군데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모든 종류의 커피 음료가 핸드드립 기반이었다. 마셔보니 어찌나 깔끔하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하던지, 게다가 원두 종류도 나라별로 따로 있는 게 신세계 아닌가. 지금은 문을 닫고 횟집 자리가 된 곳이지만 당시엔 사장님하고 참 친해졌었다.

지금은 없는 그곳. 사장님 보고 계시면 안부 문자나 한 통 날려주세요.


사장님이 핸드드립 쉬우니까 직접 내려 마셔보라고 추천도 하시길래 손사래를 치며 못한다고 뺐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커피는 원두만 좋으면 막드립도 맛있다'며 나름대로의 개똥철학을 완성한 상태이다. 그러고 나서는 강릉 커피가게를 섭렵한 블로그를 보며 몇 군데 방문을 했었고, 모든 개인 카페가 핸드드립을 한다는 강릉만의 특색을 발견해서 뿌듯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 특색이 이제는 강릉만의 특징은 아니겠지만, 당시에는 나만이 알고 사랑하는 도시의 면모로서는 충분했을 거라 생각한다.


강릉 커피의 역사야 찾아보면 쉽게 나오는 부분이니 설명을 생략하겠지만, 혹시나 강릉을 방문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 있다. 안목의 '카페거리' 기원은 강릉 핸드드립 커피의 기원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카페거리는 바닷가에서 뽑아 마시라고 설치했던 커피 자판기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커피 애호가들로부터 '보헤미안', '테라로사' 등 강릉의 커피가 유명세를 타자 갑자기 덩달아 카페들이 그 장소에 들어서며 호황을 맞이한 핫플레이스이다. 안목에도 디저트가 맛있는 것으로 유명한 카페들은 있지만, 강릉 커피의 맛(그런 것이 따로 존재한다면)을 느끼기에는 아쉬운 곳이 아닐까 싶다. 땅값이 극도로 올라 커피값도 비싼 편. 차라리 숙소 근처의 조그마한 커피숍을 방문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여행지에서 만끽하는 이런 여유를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본래는 다른 내용을 써 볼까 했었는데 글 하나만 딸랑 써놓고 재미없는 글들을 쓰게 될까 봐 강릉 이야기를 한 편 더 써보았다. 글을 쓰면서 보니, 아직도 마음속에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지금 필자에게 있어 가장 큰 목표가 강릉에서 평생 살 집에 대한 건축인 것이 그 연유이다. 내가 좋아하기로 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어쩌면 큰 행복이다. 글을 읽는 독자들도 언젠가는 그런 경험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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