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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니내가작가라니
Jul 20. 2021
샤워를 하다 문득
아직 여름을 맞이하지 못한 아이들과 만났다.
다. 리. 털
갑자기 이곳에 나의 털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자.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샤워를 후다닥 끝내고 나왔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이 순간 급하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주변에는 쟤 또 왜 저래. 하는 눈이 6개.
나의 온라인 이름은 토리. 토리의 엄마 도 아니고 토리.
귀엽고 상큼한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이렇다
내 고등학교 때 별명이 털이다. 그냥 털.
그것을 가엾이 여긴 친구 하나가 터리 라고 좀 늘려 발음해주었고, 천운으로 토리가 되었다.
그럼 이쯤 되면 털의 상태가 궁금하시겠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가. 유인원인가?
일단 손가락 두 번째 마디부터 털이 송송 있다.
손등, 팔로 올 수록 밀도는 높아지고 조금 길어진다.
팔찌나 금속 시계는 착용하지 않는다. 그 줄 사이사이에 털이 끼어 아프다.
다행히 가슴, 배에는 없다.
문제는 다리지.
살색 스타킹을 착용하던 그 시절부터 종아리에 나 있는 털은 고민거리였다.
스타킹 밖으로 털이 나오는 건 예삿일이었다.
대강 눈썹 칼로 다리털을 밀었고, 다음날이면 더 빼곡히 자란 다리털을 만날 수 있었다.
문제는 얘네가 점점 더 굵어지고 길어졌다는 점이다.
나는 음.
남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하는 사람이다.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냥 노트에 끄적이는 글을 쓸 때와 누군가 자꾸 라이킷을 눌렀다며 알람이 오는 여기에 글을 쓸 때의 느낌은 정말 다르다.
자꾸 썼다가 휘리릭 지우고.
저장을 누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끄적이고. 이 짓을 며칠 째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뭐람!'이라는 생각으로 뭔가를 써 내려가다가 또 멈칫거린다.
그래.
뭔가 두려운 거야.
욕먹지 않을까 두렵고.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봐 두렵고.
내 밑바닥이 드러날까 봐 두렵고.
그런데 그렇다고 당장 다 뒤집어 까긴 또 망설여진다.
그때! 다리털이 생각났다.
다리털은 나의 치부다. 내 외적인 부분의 최대 컴플렉스.
이걸 다 드러내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손가락 한 마디 만한 털을 가지고 있어요. 심지어 숱도 많고요.
샤워를 하다 보면 얘네가 미역 같기도 하답니다.
제모크림 광고에 나오는 그 다리랑 비슷해요.
(욕.. 해도 되나요? 갑자기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발가락 위에도 털이 나서 패디케어는 한 번도 안 받아봤어요.
얘네는 왜 이렇게 자라났을까요. 이렇게 자라는 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이렇게 쓰면서 이런 걸 쓰는 내가 좀 어이가 없었고, 이걸로 내면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긴 했지만
일단은 발행을 해본다.
그리고 라이킷 알람이 울릴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을 것 같긴 하지만
난 내 치부를 동네방네 다 떠들었어! 이미 새어나간 치부는 더 이상 치부가 아니지!
이제 난 뭘 쓰든 다리털 보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