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이정림
마포대교 수면 밑 방은 넓다
2호선 순환선이 돌고 돌아
오늘은 새로운 직업을 얻어
그는 노숙자로
내용증명과 돌려막지 못한
수표와 어음들은
물안에서 자라지 못한 편지로
미쳐 부치지 못한 바람조각들
수많은 꽃들의 눈빛
찾은 둥지 두렵지 않아
다리밑 그는 집을 지었다
나뒹굴던 소주와 과자도 끼니로
달빛 벗삼아 조우하고
생체시계 서성거리면
새벽이슬로 목축이고
박무로 얼굴 씻어
얼굴빛은 녹슨 이끼처럼
나무 아래 석양을 널고 있다
노을빛 바랜 익지 못한 시간들
주머니 속에는 공기만 찰랑거리고
방황 그리고 자꾸만 어딜 가고 없는
지울 수 없는 나의 길
젊음의 단추가 떨어져 나가면
어제는 어제가 아니고
오늘은 오늘이 아닌
약속된 내일이 없어
달빛에 걸린 차가운 은수저
꺼내 그리움 떠먹으면
신문지를 몸에 감아 한기를 베어내고
가족들 얼굴은 민들레 씨앗처럼
수신자 불명의 편지 답장이 없고
오늘은 계속 출렁거리고
2호선은 순환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