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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을 닮은 엄마되기

비혼을 선택하는 20대 여성들에게 같이 나누고 싶은 말


     “ 왜 이렇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요.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배웠잖아요?

      결혼할 나이가 되어 현실을 바라보니, 세상에 속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배신감까지 느껴져요. ”  

   


  막 서른 살이 된 후배가 성토 어린 투로 말했다. 나를 위하여 경험과 능력들을 하나하나 쌓아가기도 바쁘고 버거운 젊은 친구들에게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생길 수 있는 경력단절이나 독박 육아, 유리천장에 대한 일들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실제로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결혼과 출산뿐만 아니라 연애와 성관계 모두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비연애 ․ 비섹스 ․ 비결혼 ․ 비출산을 추구하는 ‘4B(비․非) 운동’이라고 한다.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동생들,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 친구들은 이제 익숙한 모습들이지만, 20대의 젊은이들이 그 좋은 시절에 연애조차 하지 않겠다니..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어떤 이유로 그런 다짐을 하게 되었을까?     




My Little Stella


  지난 워크 레터에서 이야기했던 나의 카페 이름은 ‘My Little Stella’였다. Stella는 딸의 영어 이름으로 카페의 인테리어에도 곳곳에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녹여두었다. 카페의 이름을 그렇게 정하고 곳곳에 그러한 모티브들을 숨겨놓은 것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기도 했지만, 나의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했고, 나의 일과 딸을 향한 마음의 줄다리기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가 직장생활을 하셨기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계시지않은 것에 대한 슬픔이 컸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엄마같이 '바쁜 엄마’가 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나의 커리어보다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귀담아 들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미술치료사로 활동하며 ‘엄마 되기 연습’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아보니 엄마라는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나’를 내려놓아야 하는 육아


  가장 어려운 일은 ‘나’를 내려놓는 일. 나는 갓 태어난 딸만큼 나 자신이 소중한 엄마였다. 아이를 위해 기꺼이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내 몸이 망가지는 것이 아쉬웠고, 밤새 잠을 못 자고 아이를 돌보아야 했던 다음 날은 꼭 혼자 외출해서 카페라도 다녀와야 갑갑한 마음이 해소되었다. 아기띠를 매는 것이 싫어서 아이에게 유모차를 적응시켰고, 저녁 약속이라도 생기는 날엔 콧노래를 부르며 집안을 돌아다녔으며, 출산 후 백일이 지났을 때부터 대학원을 다니며 단절된 경력을 이어갔다. 늦은 밤 귀가했을 때 잠든 아이의 발을 조물 거리며 ‘엄마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엄마가 될게.’라고 말하곤 했다. 함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은 크지않았다.

  이제까지 받아온 교육은 나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집중하여 내가 가진 강점을 찾고 그것을 극대화시켜서 내가 가진 가능성, 잠재력을 발휘하며 사는 것. 그것이 내가 부모와 학교, 사회로부터 받은 교육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반대의 행동을 요구하는 활동이었다. 

  임신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엽산을 먹으며 흑맥주와 이별해야 했으며 임신 동안에는 먹고 싶은 치킨이나 매운 라면보다 뱃속의 아이에게 좋을 보양식들을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이힐을, 네일 케어나 파마를, 짧은 치마를 내려놓는 연습은 시작되었고, 출산 이후에는 기꺼이 나의 욕구를 내려놓으며 아이를 돌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육아라는 무급의 노동을 하고 있는 내가 초라해 보였고, 아이에게 몰입할수록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 우울했다.      



당연한 건 없는 거야 


  이렇게 육아로 지쳐가는 선배 여성들을 보며 20대의 젊은이들은 출산을 거부하는 것일까? 자본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비용이 계산되지 않는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며 돌아갈 직장이 없어 경력이 단절되는 선배들을 보며 결혼을 포기하는 것일까? 그들이 연애와 섹스, 결혼과 출산의 가치를 모르기에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기성세대에게는 4B의 선택들이 안타까울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20대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삶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듯하다. 너무나 당연시되어왔던 일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발전적인 과정일 수 있으나 그것의 결과가 너무 극단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시킬 수 있다. 비슷한 경험을 한 같은 여성으로서, 결혼과 임신, 출산을 모두 끝낸 선배로서, 4B를 외치는 젊은 친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을까?     




크루아상 같은 관계

  

  개개인의 상황이 모두 다르고 해결책도 다르겠지만 자신의 길을 고민하는 젊은 친구들의 그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해답을 내려줄 수는 없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고 함께 고민해줄 수 있는 언니가 되어줄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혐오 감정들 속에서 극단적으로 저항하거나 그로 인한 파업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더 얻어가는 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내가 나 자신과 맺는 관계를 포함하여, 가깝고 먼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크루아상 같아서 다양한 관계들이 겹쳐지고 쌓여서 깊은 풍미를 풍기는 것이다. 그 겹겹의 관계의 결들을 한입 베어 물고 맛을 음미하면서 함께 고민하고 나누어보면 어떨까?               





크루아상 같은 관계의 결 만들기


크루아상은 밀가루와 버터로 반죽을 빚어 켜켜이 층을 낸 초승달 모양의 빵이에요.
잘 구워진 크루아상은 가볍고 속의 층들이 잘 드러나는데
좋은 관계 또한 무겁지 않고 산뜻하며, 관계마다의 층과 결이 분명합니다.
앞으로 함께 쌓아볼 8겹의 관계들 알려드려요~


첫 번째 겹, 나와 울 엄마
두 번째 겹, 나와 나의 몸
세 번째 겹, 나와 미래의 아이
네 번째 겹, 나와 임신 그리고 출산
다섯 번째 겹, 엄마가 된 나와 갓난아이
여섯 번째 겹, 엄마가 된 나와 영유아
일곱 번째 겹, 엄마가 된 나와 아동
여덟 번째 겹, 나와 엄마가 된 나




글쓴이 : 황지영 부모교육자 (모성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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