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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Sep 28. 2023

잘 짜인 '질투'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손원평&만물상, <위풍당당 여우 꼬리 4>

추천 지수는 ★★★★☆ (9/10점 : 감정에 대한 통찰력이 정말 무시무시하다)


   ★ "내가 가진 재능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뿐인데 그것조차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니까 솔직히 너무...... 당황스러웠어. 나라는 존재가 너무 하찮고 보잘것없게 느껴졌다고......." (p.52-53)


   ★ "그렇게 당황할 것 없어. 나도 너랑 비슷한 비밀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린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p.60)


   ★ 이젠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꼬리에 대한 답만큼은 나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p.129)


   5학년이 된 단미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아 우울해합니다. 심지어 새로운 반에는 자기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있고, 집에서는 고모가 맡기고 간 아기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쏠려 견딜 수 없어하는데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낄 즈음 튀어나온 네 번째 꼬리! 불처럼 뜨거운 붉은 꼬리는 단미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나한테만 맡기면 넌 항상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 네가 주인공이 될 수 있어!'


  꼬리의 역할이 달라졌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내용에 주목

   1년 만에 돌아온 <위풍당당 여우 꼬리> 네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단미가 한 살을 더 먹은 만큼 저도 한 살을 더 먹어버린 탓에 안타까운 요즘인데요. 동화책을 자주 못 읽고 있는 와중에도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다는 소식에 황급히 서평단을 신청하였습니다.

   지난 에피소드들과 비교했을 때 이번 편은 내용이 상당히 다릅니다. 특히 꼬리의 역할이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3편까지 등장한 꼬리들은 저마다 단미가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이자 대결에서 힘을 실어주는 '조력자'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꼬리들은 매번 나를 위해 행동해 주었'기에, '붉은 꼬리가 이끄는 방향대로 간다고 해도 내가 손해 볼 건 없지 않을까?' (p.83)라고 이야기하는 단미의 말에 우리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4편에서 등장하는 붉은 꼬리는 단미를 점차 예상치 못한 불행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됩니다.


   '질투'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러나 불편하지 않게

   이러한 독특한 전개는 단순히 이전 에피소드들과 차별화된 서사를 만드는 데에만 기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붉은 꼬리가 단미를 불행하게 만드는 과정은, 이번 에피소드의 주제인 '질투'를 담아내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거든요. 단미가 이번 편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는 '질투'를 겪어본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질투를 겪는 사람은 3단계에 걸쳐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질투의 대상보다 더 우월하고 싶다는 마음에 억지로 열정을 쏟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넘보고 있다고 괜히 의심하게 되며, 마지막에는 결국 마음이 다 타버려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죠. 이러한 감정의 흐름이 단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이번 에피소드에서 촘촘하게 짜인 '질투'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되고, 이미 질투를 겪은 아이들은 '질투'라는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단미가 안 좋은 일을 겪는 과정이 불편하게 묘사되지는 않았다는 점이 아동문학으로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는 생각에 아동문학에도 잔인한 현실을 들이미는 사례들이 종종 있습니다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시선에서 특유의 발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세밀하게 짜인 스토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합니다.


   '나 자신을 사랑해 줘', 두 가지 의미와 두 개의 꼬리

   이러한 독특한 전개로 인해 마지막에서 단미가 '질투'와 어떻게 맞서 싸울지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단미가 찾은 방법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져 아쉬웠습니다만, 단미가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여느 때보다도 두드러졌기에 이번 에피소드를 상당히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언제나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피하려 하지 않고, 부모님이 말한 것과는 다른 결론을 내기도 하는 당찬 우리의 주인공입니다만, 이번 편에서는 항상 자신을 도와주었던 꼬리와 맞서서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모습이 더욱 기특하게 느껴집니다.

   시리즈를 줄곧 읽어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번 에피소드는 1권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권에서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나'라고 이야기하였는데, 4권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후반부에 단미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다름이 아니라 처음에 등장했던 꼬리라는 점은 이러한 연관성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때문에 '나 자신을 사랑해 줘'라는 문장은 이번 편에서 '자기 자신을 다독이라는 조언'과 '질투를 느끼는 '나'의 감정'을 둘 다 담아내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은 아이들은 기존에 있던 문장의 뜻을 단일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나가고 감정에 대한 저마다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미처럼 "그냥 좀 쉽게 답을 주면 안 돼?" (p.116)라고 화를 내더라도, 마지막에는 '내 꼬리에 대한 답만큼은 나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p.129) 능동적인 결론을 얻게 됩니다. 꼬리의 개수가 늘어나면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 또한 성장할 수 있다면, 이 책이 아동문학으로서 다해야 할 본분은 이미 충실히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네가 진정 원하는 걸 찾으려고 할 때만 나는 널 도울 수 있어." (p.118)


   사실 어른도 질투라는 감정에는 취약한 존재인지라 이 책을 읽는 부모님들 또한 인상 깊은 지점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 같은 경우 중간에 선유가 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쿡쿡 찔렸습니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해 주면 돼. 단, 정말 그럴 수 있다면." (p.92) 이라니, 교수님들께서 흔히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식겁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맞서면서 한층 성장해 나가는 우리의 주인공과 변화하는 꼬리의 역할, 거기에 더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신 캐릭터 '도래아'의 등장까지. 앞으로의 시리즈가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돌이켜보면 꽤 길게 느껴집니다만, 그동안 작가님께서 상당히 고심해서 스토리를 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원평 작가님 5권은 언제 나온다고요? 만물상 일러스트레이터님 여우꼬리 특별전 같은 거 혹시 안 해주시나요?


   (* 이 서평은 창비에서 주관하는 <위풍당당 여우꼬리>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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