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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Oct 14. 2023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색채가 옅은 리메이크 작품과 그가 상실을 떠난 해

추천 지수는 ★★★☆ (7/10점 : 이번엔 짙은 정사 장면이 아예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별점을 깎은 건 아닙니다. 정말이야.)


   (<상실의 시대>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 "그래도 서두르진 마. 내 마음과 몸은 조금 떨어져 있거든. 아주 조금 다른 곳에 있어. 그러니까 좀 더 기다려주면 좋겠어. 준비가 될 때까지. 이해해?" (p.110)


   ★ 적어도 그곳에서 나는 더이상 한곳에 묵직하게 정지한 쇠공이 아니다. 조금씩이나마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결코 나쁜 감각은 아니다. (p.233)


   ★ 나는 이제 열일곱 살 소년이 아니다. 그 무렵의 나는 온 세상의 모든 시간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가 손에 쥔 시간은, 그것을 쓸 수 있는 사용처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p.683) 


   열일곱 살 때, '나'는 '너'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너'는 자신이 그림자에 불과하며, 진짜 자신은 도시 안에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너'가 사라진 후 긴 시간이 지나, 어느덧 사십 대 중반이 된 '나'는 도시에 들어가게 되고, 규칙에 따라 자신의 그림자와 작별합니다.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로 일하게 된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인 '너'와 재회하게 되는데.......

 

  다소 흐릿한 색채로 자기 세계를 반복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입니다. 전작인 <기사단장 죽이기>가 발간되고 약 6년 만의 신작인지라 기대가 많이 되었는데요. 저는 사실 중학생 때부터 하루키의 팬이었던지라, 책을 잘 못 읽는 시기임에도 팝업스토어까지 가서 이 책을 충동구매 해버렸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다소 심심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전 작품들에서 나온 소재들이 상당히 많이 반복되었기 때문일까요?

   물론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 (p.766)이라고 저자가 밝힌 것처럼, 그간 작품들 간에 서로 공통된 모티프를 자주 사용해 온 것이 하루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 '자기 복제'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저는 작가가 같은 모티프를 여러 작품에서 이리저리 다른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제시되고 있는 소재들은 생각보다 싱싱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기사단장 죽이기>가 이데아와 메타포를 아예 인물로 등장시켜 버리는 등 나름 과감한 시도로 작품의 활력을 돋우었다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는 이름이 없는 '나'와 '너', 그리고 별로 독특하지 않은 '도서관', 추상적인 '도시'들이 계속 반복되어 작품의 색채가 흐릿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야기의 색채를 지우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저자의 의도라고 한편으로는 생각합니다만, 이야기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짐으로써 본래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어 아쉬웠습니다. 그나마 제일 색채가 뚜렷했던 것은 침대에 놓인 대파 두 뿌리. 고야스 부부가 고민한 자식의 이름 두 개를 연상하게 하는 이 대파를 목격한 순간, 저도 고야스가 된 것처럼 섬찟함을 느꼈습니다.


   몇십 년만의 리메이크, <상실의 시대>와의 유사성

   그러나 이 책은 기존 하루키 작품의 '확장판'이라는 느낌도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홍보 문구에서도 밝히고 있듯 43년 전에 내신 동 제목의 글을 장편화한 작품입니다. 또한 이 작품을 기반으로 1985년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도 내셨기 때문에 새로운 요소들도 몇 가지 있지만 리메이크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해 보입니다. 그런데 설정 자체는 두 작품의 것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저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주제가 1987년에 내셨던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와 더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격렬하게 사랑했던 대상을 상실하고, 그로부터의 '삼십년 가까운 세월은 그저 공허를 메우는 데 소비해온 것이나 다름없다'(p.254)고 평가할 정도로 방황합니다. 그리고 사십 대 중반에 갑작스럽게 구덩이에 빠져 도시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분리해 낸 후 도시로 들어갑니다. 도시에는 시간이 존재하나 그것을 표현할 필요가 없으며, '너'가 이야기한 것처럼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떠한 소재에 대해 '이런 의미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다소 위험한 행위입니다만, 일단 개인적인 감상과 추리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나'가 상실을 겪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면, 작중 등장하는 '도시'는 무의식의 깊은 곳, 바꿔 말하면 '나'가 '너'의 추억을 영원히 회상할 수 있는 관념적인 공간을 상징한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상실과 그에 따른 공허를 겪어 본 사람이라면, 진짜 나는 다른 곳에 있고, 여기 있는 나는 껍데기 같다고 이야기하는 '너'의 말이 마냥 공감할 수 없는 말을 아닐 것입니다.

   관념의 울타리 속에 틀어박힌 '나'는 그 속에서 추억을 더듬으며 '너'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추억은 매번 같은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분명히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나'는 도시에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너'를 포함해서 도시의 모든 것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좋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 장면은 항상 변함없이 좋은 향기를 풍기고, 그 추억에 깊게 빠지다 보면 현실은 더더욱 매정하게 느껴집니다. 요컨대 작품의 전반부는 소중한 것을 상실한 사람이 자신의 공허를 끝내 메꾸지 못하고 관념 속으로 틀어박히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보았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이 작품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설정이 많이 겹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상실의 시대>의 등장인물들을 쉽게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상실'에서 '현실'로 오는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에서 대학생이었던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알 수 없어한 반면, 이 작품에서 마흔다섯 살의 '나'는 여전히 공허에 허덕이면서도 최후의 순간에는 자신이 만든 관념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다짐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도시에 소년이라는 변수가 등장하자, '나'는 무의식 중에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고 동시에 '너'와 도시의 모습에서도 변화를 느낍니다. 영원한 것은 없음을 직감한 그는 제어하지 못하는 마음을 어쩔 수 없어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자신이 만든 울타리로부터 탈출하기로 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격정적이지는 않습니다. <태엽 감는 새>처럼 옷에 피를 묻히지도 않고, <1Q84>처럼 모종의 세력으로부터 추격을 당하지도 않습니다. 1부에서 그림자와 함께 도망가던 '나'는 끝내 도시에 남기를 택했고, 그런 그가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촛불을 불고 믿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실제로 생각해 보면, 도시는 '나'가 관념으로 만들어낸 세계이기 때문에 '나'가 부정해 버리면 그 자리에서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는 거거든요. 이렇듯 간단하게 도시를 벗어나는 과정은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심심합니다만, 오히려 공허를 극복해 내는 과정이 사실 어렵지 않은 것임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 저자는 43년 전에 쓴 동명의 중편소설을 떠올리며, '세월이 흐르고, 작가로서 경험을 쌓아가며 나이가 들면서 (...) 적절한 결말을 냈다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p.764)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작가의 나이는 30대 후반이었고, 작품에서 도시로 들어간 '나'의 나이가 정확하게 마흔다섯 살이라고 제시된 것을 보면, 그가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얻은 경험들이 기존의 작품을 미완성된 것으로 인식하게 하였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렇다면 일흔 살이 넘은 작가가 이제야 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간단한 일임을 인생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달관은 분명 젊은 나이에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나이가 들고 나서야 작가는 이러한 깨달음을 몸소 터득했고, 그렇게 이 책은 <상실의 시대>에서 상실을 겪은 이십 대 청년이, 시간이 지나 '상실'에서 '현실'로 이동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처럼 연상하게 하여 개인적으로는 책을 훈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어렴풋하여 메시지가 잘 와닿지 않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말이에요.


   ★ 내가 좀더 강하면 좋을 텐데. 좀더 힘주어 너를 안고 좀더 믿음직한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단 한 마디로 그 자리에 걸린 나쁜 주문을 확 풀어버리는, 올바르고 정확한 말을.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사실을 슬프게 생각한다. (p.88)


   '나'가 '너'를 옆에서 지켜보며 내뱉은 이 문장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한 번쯤 가지게 되는 소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의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우리는 자신에게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매번 정확한 위로를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당연하게도, '정확한 말'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었다면 '상실'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번 작품 또한 '올바르고 정확한 말'을 전달하기에는 소재나 방식이 너무 옅다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상실로부터 벗어나는 일을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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