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여우 Nov 30. 2023

정윤선&클로이, <초록의 시간>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출중한 소재는 초록빛이나

추천 지수는 ★★★ (6/10점 : 그림 작가님 진짜 재능 있으시다)

   ★ "클로로가 나 같은 사람을 말해요? 나처럼 남들과 다른 사람이요." (p.37)


   ★ "넌 내 작품이야." (p.119)


   ★ "그 밖에 또 뭐가 있는지 아주 궁금해. 해야 할 연구가 많단다." (p.138)


   우주 바이러스로 지구상의 식물이 모두 멸종된 미래.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식물을 되살리려 했으나 실패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병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없는 열두 살 아이 '림'은 자신을 키워준 '서리' 박사님의 곁에서 멸종된 식물을 복원하는 연구를 돕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의 추격에 의해 거처를 옮기게 된 림은 서리 박사의 인도 하에 단델리온으로 향하게 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자신의 비밀에 다가서게 되는데...


   초록빛이 맴도는 소재들

   정윤선, 클로이의 <초록의 시간>입니다. 처음 서평단을 신청했을 때는 표지에 마음이 사로잡혀서 신청하게 되었는데요. '식물이 사라진 지구'라는 설정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명확한 동기를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해 큰 사건이 벌어지는 전개도 인상적이었으며, 주인공이 앞으로의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출중한 소재를 담아내기에는 플롯이 많이 옅다고 느껴졌습니다.


   출중한 소재를 적절한 플롯에 녹여내기 위해서는

   우주 문제, 인공 배양 문제, 환경오염 문제 등등 출중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초록의 시간>입니다만, 플롯에서는 이러한 소재들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해 어느 부분에 집중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하나하나 따져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서로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주에 대한 집착으로 환경이 오염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희생을 낳으면서까지 인공 배양 연구를 진행해 왔으니까요. 그러나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하나의 문제에 다른 문제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식물의 멸종'이라는 중심 키워드 하나에 집중해 스토리를 진득하게 밀고 나가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원인은 플롯 자체에도 있습니다. 주인공 '림'에 대한 복선이 작품에 고르게 분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초반부에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숨기고 있고, 중반부에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추격전과 옅은 인물로 (여기서 옅은 인물이란, 딱히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도 큰 스토리에 지장이 없는 인물을 의미합니다) 플롯을 메우고, 후반에는 서사 전반으로 풀어나가야 했던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단델리온에서 한꺼번에 전달해 버립니다. <초록의 시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만큼, 서사 전반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했던 이야기는 후반에 밝혀지는 초록 프로젝트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중반의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 대신 이 부분에 초점을 두셨다면, 적어도 주인공이 고군분투한 끝에 엔딩을 맞이하는 모습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기본 중의 기본, 문장에 대해

   이렇게 주제가 분산되는 책에서 제가 가장 문제 삼고 싶은 부분은 바로 '비문'입니다.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한 이 도서는 어른이 읽기에도 어색한 문장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미니는 미리 서리가 입력해 둔 밥 주소의 경로를 보여 주었다.'(p.75)

   여기서 '밥'은 사람의 이름이고, 우리는 누군가의 집 주소를 언급할 때 '영수 주소', '상철 주소'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정 이야기한다면 '미니는 밥의 집으로 가는 경로를 보여 주었다. 미리 서리가 주소를 입력해 둔 덕분이었다'와 같은 식으로 풀어써야 적절하겠죠.

   '내가 미니 이야기를 듣도록 미리 손보지 않았으면 (...) '(p.127)

   '미니'는 지능형 스마트 밴드이고, 주어인 '나'는 '림'이 차고 있는 스마트 밴드를 통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미니 이야기를 듣도록'이 아니라 '미니를 통해 너희 상황을 알 수 있도록'이라고 해야 의미가 통합니다. 아니면 아예 '미니의 마이크를 내 기계랑 연결해놓지 않았으면'과 같은 식으로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괜찮고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함께 갈 시간이 안 되지만 이렇게 위급할 때 올 수 있지 않았겠니?'.(p.127)

   주체인 '나'는 이전에 일이 있어서 주인공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미니'를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므로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을 구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함께 가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해둔 덕분에 위급할 때 올 수 있지 않겠니?'와 같은 식으로 바꾸어주어야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어른들은 잘못된 문장을 보면 잘못되었다고 인지하고 저자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보통 잘못된 문장을 접했을 때 자신의 독해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책을 쓰는 작가는 더더욱 신경 써서 문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서 내용뿐만 아니라 문장의 형식까지 학습하니까요. 자신의 문장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항상 고려해야 하는 것이 어린이책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식물이 멸종한 세상에 대해 상상하고 이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분명히 유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미래를 주도할 아이들에게 뜻깊은 주제를 전달하려면 좀 더 세밀한 고찰과 디테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애초에 지구에서 식물이 전부 사라졌다는 설정 자체가 과하다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랬다면 지진은 약과로 느껴질 정도로 큰 재앙이 불어닥쳤을 테니까요.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가 코앞에 있는데도 드론으로 변신하는 스마트 밴드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최첨단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 가능은 할까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러는 한편, 그런 최첨단 기술까지 등장한 마당에, 어째서 서리 박사님이 아끼는 아이에게 가발도 안 만들어주었는지 의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아이가 후드 뒤집어쓰다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박에스더, <정원의 계시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