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 폭력은 권리가 아니다.
이유도 모른 체 일방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감정적 또는 신체적으로 전달되는 폭력에 혼미한 정신을 붙들고 있는 그에게 ‘둘은 그냥 안 맞는 거다’ 혹은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따위의 말이 피해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혹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웃긴 저 말은 바람피운 옛 전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에도 위로랍시고 자주 건네 듣던 말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연인 간의 성격차이를 부정한 적이 없었음에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에 대해 마치 사랑에 눈멀어 맞지 않는 퍼즐을 힘으로 끼워 맞추려는 사람 같은 취급을 당했다. 억울한 내가 그 사람의 잘못을 토로할 때는 애초에 그런 사람을 만난 내 잘못으로 몰아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의 배신으로 깨져버린 신뢰가 ‘맞지 않아서’ 따위로 싸잡아 말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라는 내 호소는 잠깐의 맞장구로 묵살되었다. 미안하지만 맞지 않으면 헤어지는 거다. 배신을 하는 게 아니고. 이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내 경우엔 둘의 관계에 포함되서는 안 될 제삼자가 끼어들면서 생긴 표면적인 이유보다는, 그것이 합의된 관계 종결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치명적이었다.
나의 권리이자 주체적인 선택일 수 있었던 ‘이별’을 간과한 그의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용서할 수없었다. 관계에 또 다른 주체인 나에 대한 존중이 철저히 배제된, 그의 일방적인 폭력이었으니까.
사람은 자기감정에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누구에게나 본인만의 이유로 사람을 싫어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려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안 맞는 느낌을 느낄 자유’에 대한 반박이 아닌, 본인만의 그 알량한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고의적으로 행해지는 ‘지속적인 감정 폭력’에 대한 고찰이다. 싫으면 깔끔하게 관계를 끊으면 된다. 끊임없이 너를 싫어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무언의 제스처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희열 하는 일이 심각한 폭력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은 반박의 여지없이 처벌받고 지탄받아야 할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도.
‘네가 그 사람과 만나지 않았다면 상처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 이면엔, ‘네가 칼 들고 다니는 미친놈을 골목에서 마주치지만 않았더라도 피 흘리며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와 같은 철저한 가해자 관점의 해석이 깔린다. 피 흘리고 있는 피해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는 새 피해의 대상이 원인제공자가 되거나, 피해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 상황이 그럴 만도 했다는 일로 둔갑해버리는 2차 피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건엔 가해자/피해자 이외에도 방관자가 존재한다.
어느 입장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이 방관자가 되기를 결심할 때, 결코 그것이 예리한 칼로부터 영원히 안전함을 보장받는 선택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피해자와는 별개로 칼 든 놈에게 죄를 묻고 처벌하는데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도. 평범한 어느 날 골목 모퉁이를 돌고 있던 당신이 칼 든 그 미친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 것이란 법은 결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