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모험, 신순화
언젠가 나의 집을 가지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 방 하나는 푹신한 러그를 깔고 멋진 책상, 책이 가득한 책꽂이를 둔 서재로 꾸미고, 방 하나의 벽면에는 빔 프로젝터를 쏠 수 있게 만들겠노라 상상한다. 좋아하는 책을 언제든 집에서 읽을 수 있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다 언제든 잠이 들 수 있도록.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가구를 배치해보면서 취향에 맞게 꾸며보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저마다 가지고 싶은 집을 꽤나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어떤 친구는 멋진 요리를 잔뜩 만들 수 있는 넓고 쾌적한 주방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옷과 가방 등을 정리할 수 있는 드레스룸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동시에 다음 단계를 꿈꾸게 하는 존재가 바로 집이다.
내 집 마련. 가능성을 계속해서 점쳐보지만, 0에 수렴하곤 하는 단어이다. 최근 들어 집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내 집을 마련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내 집’이라고는 하지만 못 하나 박기 힘든 셋방이야말로 무서운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사실 내가 원하는 집을 그리는 건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이라는 모험]의 저자 신순화는 집을 꿈꿨다. 아파트가 아닌, 넓은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을 꿈꿨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집을 만났다. 신순화 작가는 말한다. 집을 바꿨더니 일상이 모험이 되었다고. [집이라는 모험]에서는 신순화 작가가 12년 동안 ‘집’으로 떠난 모험을 담고 있다. 조금은 소란스럽고, 조금은 불편하지만 매일매일이 즐거운 다섯 가족의 따뜻한 일상이 이 책에 전부 담겨 있다.
신순화 작가는 서울 근교의 어느 마을에서 기적처럼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았다. 오랜 아파트 생활을 거치면서 저자는 어린 시절 맡았던 흙냄새를 그리워했고, 벽난로가 있는 집을 꿈꿔왔다. 그리고 운명처럼 만나게 된 집에는 넓은 밭이 있는 마당, 벽난로, 통창이 있었다. 단번에 마음을 빼앗긴 저자는 단숨에 이사를 결심하고, 이사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저자는 옥수수와 감자, 부추가 자라는 밭과 닭들이 알을 낳는 닭장, 탐스러운 앵두가 열리는 앵두나무와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집이라는 모험]은 4단계에 걸쳐 신순화 작가의 모험을 소개한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12년간 함께한 집 자체를 소개하고 있다. 겨울에 급하게 이사를 하면서 겪었던 추위와의 싸움, 넓은 마당을 만난 이야기, 로망을 실현시켜준 벽난로와 모닥불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 벽난로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필자 역시 벽난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훈훈한 벽난로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 짓게 되었다.
두 번째 파트와 세 번째 파트에서는 다섯 가족이 살아낸 삶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서울 근교 마을의 전원주택에서 사는 건 정말 멋있는 일이다. 통창을 통해 사계절의 자연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고,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의 싱그러움도 맛볼 수 있다. 자연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곳에서 낭창한 달빛을 만날 수도 있다. 신순화 작가의 가족이 경험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펼쳐져서 자연 속의 삶을 동경하게 만든다.
그런데 신순화 작가는 고달픈 현실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수없이 마주해야 하는 벌레와 끝없이 자라는 잡초와의 싸움, 뱀이나 쥐를 마주하는 일과 같은 것들 말이다. 자연으로부터 겪는 어려움뿐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오는 고단함도 있었다. 주변 식당을 찾은 사람들의 매너 없는 행동에 피해를 보거나 생활 쓰레기를 태우는 주민들 때문에 겪었던 피해 등 저자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해야 하는 일들의 노동은 고단하고, 아이 셋과 개, 닭, 밭까지 돌봐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저자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 그 모든 힘든 요소를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일거리는 넘치지만 자연도 넘치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주한 건 오래도록 바라던 생활이었기에 신순화 작가는 성취감을 느꼈다.
마지막 파트에서는 그 자연 속 생활을 통해 저자와 가족들이 얻은 가치가 담겨 있다.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이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다니던 학교와 친한 친구들을 두고 이사를 오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편의점은 고사하고 시내에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언덕 위 집은 불편함이 많았다. 택배가 오기도 힘들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힘들다. 저자의 남편 역시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면서 새벽에 집을 나서야만 했다.
그러나 신순화 작가의 가족은 집과 함께 보낸 열두 달을 쌓아가면서 크고 작은 깨달음을 하나씩 얻었다. 또한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하며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혀나갔다. 막내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앵두와 달걀을 팔고 막내가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선물하는 건 도시에선 해보지 못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 시간들이 모여 저자의 가족은 끈끈한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 이야말로 자연이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집이라는 모험]을 읽으면서 생생한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됐다. 멋진 마당을 가진 전원주택이 내 눈 앞에 있는 것 같았고, 갓 딴 신선한 오이와 시린 추위, 포근한 벽난로 등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필자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생활이기에 약간의 동경은 덤이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집’이 아니었다. 바로 작가 신순화였다. 신순화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배려심, 낭만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주는 긍정적인 시선 덕분에 이 모험이 더욱 유쾌하고 즐겁게 느껴졌다.
필자는 벌레를 정말 싫어한다. 노린재부터 거미, 돈벌레까지 전부. 그러나 저자는 벌레가 많으니 그만큼 살기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다. 날벌레를 잡아먹는 거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돈벌레들이 노력하는 만큼 그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저자도 노력한다. 어쩌다 밤이라도 새는 날엔 풀벌레들이 함께 밤을 새워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뱀이 나오는 마당이 무서울 법도 한데, 그만큼 저자의 텃밭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받아들이고 뱀과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마당에 무단으로 들어와 몰래 앵두를 따고, 적반하장으로 역정을 낸 마을 주민과는 함께 싸우지 않고 일을 마무리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를 시내까지 태워드리기도 한다.
작은 만남 하나도 소중히 여기며 주변의 자연과 동물에 아이들과 함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주방에 나타나는 큰 거미에게는 아라고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집 근처 나무들에게도 하나씩 이름을 주었다. 동네에서 만나는 개들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저자는 자연과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가 된다.
가족과 친구들, 아이들의 친구들 등 여러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고 기쁨을 나눌 줄 아는 것은 물론, 저자는 작고 멋진 것을 알아보는 눈까지 가졌다.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는 길에선 목청껏 시를 외고, 동요를 부르면서 저자와 그 가족들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저자가 보여준 긍정적인 마음과 낭만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당연히 저자도 처음에는 벌레나 뱀을 두려워했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에 지쳐 쓰러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신순화 작가는 언제나 다시 일어섰다. 저자의 집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든, 저자의 성격이 집과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이든 신순화 작가의 마음가짐은 분명 인상 깊었다. 언젠가 문득 다시 떠오를 것만 같다.
신순화 작가가 [집이라는 모험]을 통해 전원생활이 준 기쁨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저자가 도심의 생활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저자는 오래 바라왔던 생활을 그 집을 통해 할 수 있었고, 집을 바꾸자 가족의 삶이 모험이 가득한 삶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지금 저자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마을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서면서 저자의 집 역시 집주인에 의해 매물로 나온 상황이다. 즉, 그 집과 함께한 오랜 생활을 정리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마냥 슬퍼하진 않는다. 그 집에서 만든 경험과 추억을 기억에 새겨 언제나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했다. 내가 거쳐 온 집 중 내 삶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집은 어디일까. 나도 언젠가 나와 꼭 맞는 ‘내 집’을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이야기일 것 같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이 기다림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다. 신순화 작가가 집을 통해 삶을 모험으로 바꾼 것을 보았으니, 충분히 가치 있는 기다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집이라는 모험]은 포근하고 산뜻한 사계절이 전부 담긴 책이다. 따뜻한 봄에는 봄바람이 부는 창가에서,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서, 차분한 가을에는 소파에 걸터앉아서, 지금처럼 추운 겨울에는 포근한 이불 속에서 읽기 좋은 책이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내 집’에서 읽어보며 집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필자는 뼛속 깊이 도시를 동경하는 사람이지만 신순화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주 잠시 전원생활을 상상해보았다. 저자와 같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언젠가 필자도 삶을 바꿔줄 ‘내 집’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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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집이 주는 가르침 - 집이라는 모험 [도서]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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