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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17. 2024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선악은 중력처럼 자연에 내재된 법칙으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선언으로 정해지는 것이죠. 이를 거스르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입니다. 


미가 6:8입니다. 

사람아,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분이 네게 알려 주셨다.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단지 공의를 행하고 충성(헤세드 : 충성스러운 사랑의 친절)을 소중히 여기며 겸허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겸허하지 않음 즉 주제넘음은 자연법칙을 범하는 것이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도해 보는 것이 대표적인 주제넘음입니다. 


속성적으로 타인에 대한 통치능력과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들이 이점을 무시하고 그런 시도를 해온  역사는 범죄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로움의 극치이죠. (전도서 8:9)


인간의 통치아래서 진정한 공의라는 것이 시행되는 것을 보기 힘듭니다. 공의의 개념 안에는 필요한 만큼 공급된다는 점이 포함되죠. 세계적인 빈부격차는 경제적으로도 공의가 실행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남아서 버려지기도 하고 모자라서 죽기도 하는 현상은 공의의 극단적인 불이행의 현상이죠. 


사랑의 친절(헤세드)이라는 면에서는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이웃에게 원칙에 입각한 충성스러운 친절을 나타냅니까? 상업적, 관료적, 이기적 친절 같은 것이 있기는 하죠. 친절 그 자체를 소중히 여겨 자신의 인격의 주요 특성이 되게 합니까? 


전글의 시편 36편 1~4절에서 악인들이 변할 수 없는 원인을 지적한 바로 다음 5~10절에 다름과 같이 시술되어 있죠.  


오 여호와여, 당신의 충성스러운 사랑(헤세드)이 하늘에 이르고 당신의 충실함이 구름에 이릅니다. 당신의 의는 웅장한 산들 같고 당신의 판결은 광대하고 깊은 물 같으니, 오 여호와여, 당신은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십니다. 오 하느님, 당신의 충성스러운 사랑이 얼마나 귀중한지요! 당신의 날개 그늘로 사람의 아들들이 도피합니다. 그들이 당신 집에 있는 풍성한 것을 실컷 마시니, 당신은 그들에게 당신의 기쁨의 강물을 마시게 하십니다. 당신에게 생명의 근원이 있으니 당신의 빛으로 우리가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을 아는 자들에게 당신의 충성스러운 사랑을, 마음이 올바른 자들에게 당신의 의를 계속 보여 주십시오.


창조주가 인간에게 요구하고 있는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그분 자신이 완전한 본이 되죠. 공의(의)와 사랑의 친절이 그것이죠. 그런 것이 시행되고 나타날 때 삶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주는 겸허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에게만 요구되는 것이죠. 창조주 자신은 누구보다 겸손하여서 자신을 낮추어 온전히 인간에게 눈높이를 맞추죠. 


그러나 그분은 한계가 없으므로 겸허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의롭고 친절해야 하며 그리고 겸허해서 타인을 주제 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는 생명도, 풍성함도, 기쁨도 누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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