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록
수상록이나 명상록으로 알려진 책들이 있습니다. 유명인사들의 어록도 있지요. 어떤 인물들의 어록은 정리되어 경전이 됩니다. 여러 인사들의 명언들을 모아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 화자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속담이나 격언집도 있지요. 한 사람이 다양한 방면에 대한 글을 쓴 것들도 있죠.
지혜의 단편들이 들어있는 것이죠. 예지(叡智영속적이고 보편적 지혜)의 비중이 큰 것들은 경전이 되기도 합니다.
모두 인간들의 지혜가 반영된 것들입니다. 나름의 예리한 통찰력이 깃들여 있죠. 대부분 수필 형식이긴 하지만 그러한 통찰력이 우화나 소설형식의 글에 들어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논문형식의 것들은 어록이나 수상록과는 다른 성격의 것으로 분류됩니다. 문학적 성격이 글이 집중된 것들도 달리 분류되죠.
이러한 것들도 정신적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신을 기름지게 하는데 도움이 되죠. 논문 형식이 것들은 ‘지적’이라 하여 ‘정신적’과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독자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것들이죠. 그건 것들은 나름의 짐작으로밖에 말할 수 없죠. 그러나 실제로 영계와의 통신으로 전달받은 것들도 있죠.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확신을 가지고 기록되겠죠.
전도서 12장 10~14절입니다.
회중을 모으는 자는 기쁨을 주는 말을 찾고 진리의 정확한 말씀을 기록하려고 애썼다. 지혜로운 자들의 말은 소몰이 막대기 같고 그들이 수집한 말은 단단히 박힌 못 같으니, 한 목자에게서 주어진 것이다. 내 아들아, 이 외에도 조심할 일이 있다. 책을 많이 쓰는 것은 끝이 없고, 너무 책에 빠지면 몸이 지친다.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 결론은 이러하다. 참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참하느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모든 감추어진 것이 선한지 악한지 판결하실 것이다.
자신이 쓴 기록을 읽는 사람을 아들과 같은 친밀하고 강한 애착으로 결합되어 있는 관계라는 전제를 깔고 있죠.
기쁨을 주는 말, 진리의 정확한 말씀임을 어필하기도 합니다.
결론으로는 창조주에 초점을 맞춥니다.
단지 하느님이라고 하지 않고 참하느님이라고 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독자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못하죠. 66권은 성서는 그런 말씀에 대한 기록입니다.
단지 정신적 양식 이상이 것이죠.
그러나 성서자체에서도 그것이 영원한 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천년통치 기간에는 새로운 책이 인류의 영적인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계시 20:12)
지금 인류가 겪는, 질병과 노쇠를 포함한 모든 재앙과 같은 현상들은 참하느님을 두려워히지 않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결과입니다.
모든 다른 경전들을 포함하여 인간의 어록들은 이점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랑가운데 영원히 살고 싶어 합니다.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해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큰 첫째 계명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둘째 계명은 이러합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40 이 두 계명이 율법 전체와 예언서의 바탕이 됩니다.”(마태 22:37~40)
율법에 정통한 어떤 사람이 그분을 시험하려고 일어서서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분은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읽었습니까?”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대답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해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또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올바로 대답했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누가 10:25~28)
생명을 얻으려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결론이죠.
이 간단한 말은 다른 어떤 인간의 어록이나 경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독자적으로는 알 수 없죠.
성경은 일시적이지만 이 원칙은 영원합니다.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죠.
인간의 자유의지는 절대적입니다. 어떤 원칙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도요. 결국 생사도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것도 생명을 결정하라는 격려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