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만물은 시작이 있었습니다.
무시무종 즉 시작도 끝도 없다는 종교성 주장도 있습니다. 결코 현실을 만족스럽게 설명해 주거나 실용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물론 시작이 있습니다. 무형의 것들도 포함해서요. 모든 사람도 그 생명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시작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죠.
다른 모든 생명체도요. 모든 천체도 우주 전체도 시작이 있었다고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시초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시간의 시작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빅뱅 때 시간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일종의 종교성 억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것을 인간이 지금 단계에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부정적으로 단정하는 주제넘음에 빠지지 않으면 됩니다.
영원 전이라는 개념은 성서에 언급됩니다. 영원 후도요. (시편 90:2)
만물이 생기기 전까지 영원 전부터 홀로였던 존재가 있는 것이죠.
홀로가 전체였으며 모든 것이었죠. 어쩌면 지금도 홀로 모든 것일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주의를 끄는 것은 홀로 지혜롭다(로마 16:27), 홀로 선하다(마가 10:18), 홀로 높다, 홀로 거룩하다, 홀로 충성스럽다 등등과 같은 표현들입니다. 다른 의식 있는 피조물에도 그런 표현을 붙일 수 있다 해도 그런 면에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현저한 차이, 그 완전성, 절대성 같은 면에서의 차이를 알려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것들의 표준을 정할 수 있는 유일한 근원임을 알려 주죠.
피조물이 뛰어날수록 창조주는 그만큼 더 뛰어난 것입니다. 피조물은 무엇이 지혜로운 것인지 선한 것인지를 임의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은 서로 다른 것들이 일시적으로 공존하고 있죠. 전투적인 공존이죠. 제각기 자신의 생각이 지혜롭고 선하다고 하면서요. 적어도 다름을 인정해 달라고 하면서요. 지극한 참람됨이며 반역이며 무도함입니다.
진선미성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서 3:14입니다.
참하느님께서 만드시는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사람들이 그분을 두려워하도록 참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
인간은 전자 하나도 없애거나 만들 수 없습니다. 시간을 1초라도 만들거나 없앨 수 없고 공간을 1mm 라도 늘이거나 줄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선악에 대해서도 더하거나 뺄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인간이 임의로 그렇게 하는 것은 참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물의 기본법칙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주가 홀로 가진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