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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Mar 24. 2022

네 집처럼 편하게 지내.

집에만 있으려고 튀르키예까지 왔다.


정녕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건가.

애써 부정하며 - 흐아ㅏㅇ에취! - 아닐 거야 - 휴지 주섬주섬 - 에이 설마  - 퓅! - 그냥 약 먹고 지내야지 - 으ㅔ취! -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 흐르룰훌쩍 - 마스크나 써야겠다.


햇수로 7년째 우울증과 동거하는 언니에게 청소란 쉽지 않다. 아니, 그건 둘째치고 최근 3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한다. 자신보다 키가 커서 올려다봐야 하는 고등학생들을 "우리 아기들"이라 칭하는 언니는 3년 차 국제학교 선생님이다.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말에 세상이 무너진 듯 가치관 혼란을 겪기도 하고, 끔찍이 아끼는 학생들의 연극을 보고 펑펑 울기도 한다. 이번 졸업식 때는 울다 엉망이 될 거라고 (I'm going to be a mess) 미리 예고하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언니를 오래 봤다고 해도 우린 해마다 조금씩 바뀌고 있을 거라 장담한다. 단면적이겠지만, 내가 겪어본 언니는 "내 사람들"이라 지정한 자들에게 사랑이 넘치고, 지극히 헌신적이다. 자신만의 기준이 뚜렷하기에 토론하기 좋아한다.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자신의 모습도 사랑하고 돌보는 습관에는 아직 서투른 사람이다.


'적당히, 선을 지키며, 내 한계치의 75% 정도만!'을 외치는 내 눈에는 오지랖이 넓고, 그냥 잊고 넘어가지 못하고, 쓸데없이 일을 벌리고, 저렇게 살면 매일 피곤해서 어쩌나 싶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부럽기도 한 사람이다. 겁이 많은 나는 의미가 없어도 좋으니 그저 그런 하루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나도 언니처럼 사랑하고 좌절하고 도전하고 두 손 들어 항복하고 겨우 목숨 부지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다시 반짝거리는 눈에 "나 진심이야"가 뚝뚝 묻어나도록 쏟아붓는 사람이었다면 - 지금쯤 번아웃이 오고도 남았을 거야.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종이 접기부터 태권도, 발레, 미술, 인라인, 피아노, 비즈공예, 리본공예, 성악, 댄스, 네일아트까지 딱 한번 하는 수업이더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모시고 향수 원데이 클래스에 가는가 하면 공항에서 잠깐 경유하는 동안 목판화 체험을 하고 오지를 않나, 지치지도 않는지. 반면 나는 분야와 상관없이 뭐든 안 하겠다며 울고불고 반발했다. 독학이라면 모를까, 새로운 사람을 파악하고, 기대에 부응하고, 실수하고, 뜨거운 눈초리를 받는 경험 이후에는 항상 온 몸에 기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언니는 대학에서 안 해도 되는 부전공까지 하며 사진 수업을 들었고, 나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 1년 일찍 졸업했다.


2살 터울 언니와 같은 날 졸업하고 헤어진 지 2년 만인가, 같이 사는 건. 대학시절 같이 자취했을 때도 난장판이었다. 마지막 학기에는 둘 다 바빠서 싱크대에 라면 냄비가 썩어가고, 서랍장 앞엔 옷이 산처럼 쌓이고, 잡동사니가 번식을 하는지 바닥을 점령한 물건은 늘어만 갔다. 지뢰밭을 걷는 건지, 장애물 피하기를 하는 건지, 발 디딜 곳을 찾으며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언니의 자존감을 더 이상 깎아내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궁시렁궁시렁, 꿍얼꿍얼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 아니 바로바로 닦으면 나중에 굳은 기름때 지우는데 시간 쓸 필요 없잖아 - 집 청소를 시작한다. 언니는 그래도 나 온다고 음식물쓰레기도 버리고 설거지도 하고 냉장고 안에 오래된 음식도 처리했다며 - 아 근데 너 주려고 사놓은 무화과 얼리는 걸 까먹어서 상태가 안 좋은데…내가 확인하기는 무서워 - 멋쩍어한다.


설렁설렁 집을 둘러본다. 널찍한 현관, 오른쪽으로 화장실, 왼쪽으로 고양이 화장실 겸 창고가 되어버린 작은 방, 정면에 침실 하나와 거실 겸 부엌. 두 달 전 언니가 한국에 갔다 와서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짐이 침실에 널브러져 있다. 내 짐도 대충 욱여넣으니 바닥이 안 보이는 수준이라 당분간은 폐쇄다.


21시간 여행 후 아침 일찍 도착하자마자 하루 종일 청소를 했다. 중간에 드러누울 줄 알았지만 이 집을 구하러 왔다는 출처 모를 의무감 때문인지 아드레날린이 몸을 맴돌았다. 머리를 질끈 묶고 청소도구로 무장을 했다. 거실을 세 번 쓸고 물걸레질을 두 번 하고 배달음식에 딸려오는 물티슈로 창문틀까지 구석구석 닦으니 먼지 냄새는 좀 가셨다. 1인 가구 집에 8명이 앉을 수 있는 무거운 나무 식탁이라니, 가구를 고른 게 아니라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족족 들여놓은 걸 알지만, 손님 부르기 좋아하는 언니와 어울린다. 거실 한쪽 구석엔 캣타워, 반대쪽엔 텅텅 빈 책꽂이가 있다. 대체로 언니 집의 첫인상은 누가 방금 이사 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공허한 공간이다. 애정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거나 손때 탄 안식처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손님 신분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던 곳이 허락된다면 그다지 허전하지는 않다. 방문을 열거나 고양이 잠금장치로 닫힌 수납장을 개방하면 물건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다. 종이백과 비닐봉지, 택배박스는 종류별로 접혀서 가지런히 수납되어 있다. 스티커, 영수증, 사진도 빼곡히 쌓여있다. 높은 곳에 팔이 안 닿아서 애쓰는 언니를 보고 친구들이 선물해 준 시퍼런 2단 플라스틱 발판처럼 공간에 적응해온 흔적도 보인다.


방을 치우기 전까지 언니는 소파에서, 나는 매트리스를 깔고 잘 예정이다. 화장실과 부엌, 방을 치우고, 냉동고도 한 번 정리해야 하고, 빨래 양을 보아 네 번 정도 돌려야 될 듯 하니 쉬엄쉬엄 하면 이번 주 안에 끝내겠다. 그전까지는 집에 있는 걸로 대충 먹고... 장 보러 가서 먹을거나 잔뜩 사 와야지. 불쌍한 고양이, 집에 침입자가 들어와서 가뜩이나 심기 불편할 텐데, 심지어 집을 막 뒤집어엎고 있으니 성가시겠네. 넓은 아량으로 좀만 이해해주렴, 분명 너도 니 털이랑 먼지에 내리 뒹굴면 호흡기관에 안 좋을 걸.






"있잖아, 나 너무 기생충 같이 살고 있나? 언니 집에 딱 붙어서 돈도 안 내고 쪽쪽 빨아먹고"


"뭐래. 요리랑 청소랑 하고 있잖아."


"오, 그럼 우렁각시에 가깝나?"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우렁각시 하려면..."


"아 모습이 안 보여야 되는구나. 언니 집에 올 때 숨어있을까?"


"뭔 소리야."


순간 한복을 입고 청소하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라진다. 버스 창문에 기대어 아무 말이나 하고 있지만 여기서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은 안도감을 준다. 내가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언니가 시킨 적도 없지만 일이 생길수록 좋다. 모임에 쿠키 들고 가야 하는데 한 접시만 구워 봐, 방학하는 날 수업 중에 핫초코랑 먹을 간식 나눠줄 건데 뭐 좀 만들어줘, 이런 부탁이 귀찮지만은 않다. 내가 시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주문한 적도 없는데 항상 세트로 나타나는 열등감과 체념이 스멀스멀 차오를 때쯤 임무가 주어지면 손을 움직일 수 있다. 취업준비를 다시 시작할 시기에 넌 쉬어도 된다는 가족의 말을 위로 삼아 도망 온 사람치곤 자기 계발도 안 하고, 하고 싶다고 했던 공부도 안 하고 있지만 청소하고 밥 하느라 바쁘다고 둘러데고 싶다.


다들 내가 여기까지 와서 뭘 할 예정인지 궁금한 듯하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딱 찍어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굳이 씨름하지 않으려 헤벌레 웃으며 아무 생각 없다고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얼마나 있을 거냐는 물음에는 그것도 모른다고 했다. '일단 거기 가는 티켓만 끊었어요. 내년 여름쯤이면 돌아오지 않을까요?' 원래 뭐든 대책 없이 얼레벌레 시작하곤 하지만 요즘은 대책 없음이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나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이 상태도 괜찮은 것 같다. 잠깐동안 이 상태로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언니와 나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으니, 모종의 거래를 한 거다. 언니는 시간도 체력도 동기도 없지만 나는 있다. 가사노동을 하고 언니 약을 챙겨준다. 장을 보고 가끔 학교로 배달도 간다. 언니가 손님을 부르면 손님 치례도 한다. 고양이가 외로울 틈은 주지 않는다. 대가로 언니는 집을 내주고 통신비와 교통비를 제외한 생활비를 부담한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언니는 생활비를 대주었을 것 같다.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청소...?'라고 하면 언니 친구들은 동생한테 그런 걸 시키냐며 약간 놀란 눈치지만. 그들은 내가 심심하진 않은지 걱정이 많다. 집에만 있어도 눈 감았다 뜨면 하루가 지나간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처음 며칠 이후로 소위 '집안일'에 시간을 그렇게 많이 쓰지도 않지만 청소 이야기를 계속 꺼내는 이유는, 옆에서 언니가 "얘는 자기가 그거 하러 왔데~ 내가 돈은 다 내고 있어," 라며 한 마디씩 끼어들기 때문이다. 언니가 생색도 틈틈이 내고 미안함 없이 요구하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떳떳하게 지내고, 가끔 투덜거리고, 언니 카드로 커피 보상도 받아낼 수 있으니. 여하튼, 할머니가 나에게 '네가 고생하네, 신부 수업한다고 생각하고 언니 잘 챙겨줘' 같은 뉘앙스에 말을 하실 때 설마 언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진 않을지 걱정돼서 그런 거다. 언니 삶에 내가 끼어들었으니 더 불편한 건 언니지 않을까. 난 언니 도와주러 온 게 아니라 나 좋자고 마침 멀리 사는 언니를 이용한 건데.


그러니까 나는 3개월 동안 서로 희생한다고 생각하지도, '때문에' '덕분에' '위해서' 같은 말을 쓰지도 않을래. 우리 둘 다 2년 전과는 다른 모습이고, 앞으로도 변화할 테지만, 여느 때처럼 투닥투닥 같이 사는 거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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