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은 살인마
예술가는 예술을 한다. 그것은 당연한 말이다. 에술가가 에술을 하지 그런 무엇을 한단 말인가 에술을 하지 않는 에술가는 그저 허풍선이일 뿐이다. 그리고 잭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았고 곧바로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작품으로 표현하려 행동하여고 그것을 일반인의 말로 바꾸면 연쇄살인의 두번째 희생양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2nd incident:아둔한 여자, 더 아둔한 경찰 그리고 '비'
자신의 두번째 '예술'을 위해 두번째 희생양을 방문한 잭. 잭은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서 어떻게든 희생양을 끝장내고 싶어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잭은 어떻게든 사냥감을 유인하기 위해 온갖 말들로 꼬드기지만 그 사냥꾼의 수법은 어설프기 그지없다. 처음엔 경찰이라 하더니 배지를 보여주라고 하자 거짓말이었다고 하고 이제는 자신을 보험 판매원이라 한다. 앞뒤도 맞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더듬어 대화가 매끄럽게 되지도 않는데. 그런데 잭이 말을 마치고 약간의 적막 이후 여자는 이러한 잭의 속임수에 넘어간건지 일단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정말로 악마가 그를 돕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사냥감의 둥지에 들어온 사냥꾼은 침착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서성거린다. 하지만 사냥꾼은 아무리 어설프도 사냥꾼일뿐, 사냥감이 차를 준비하겠다며 등을 돌리는 순간. 사냥꾼은 사냥감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발버둥치는 여자, 너무나 꽉 움켜쥐어 핏줄이 드러난 손, 영화는 몇 분 동안 이어지는 폭력과 살인의 연속극을 그 어떤 배경음악도 없이 덤덤하게 담아낸다. 이제 사냥감은 정신을 잃어 최후의 살고자 하는 몸부림만을 계속할 뿐이다. 가진 칼로 마지막 숨통을 끊자 나오는 피는 첫번째 사건에 나온 시뻘건 잭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잭의 그 강박증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청소상태에 극도로 민감한 그는 사건현장에 몇시간이고 남아 청소를 하고 해가 저물고 나서야 희생양을 실고 냉동 창고로 향한다. 그렇지만 잭의 강박증은 그를 물고 놔주질 않는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지우려 해도, 아무리 무시하려 하여도. 더럽고,지저분하고,정리되지 않은 핏자국이 그의 머릿속을 무참히 난도질한다. 결국 끓어오르는 강박 충동을 참지 못하고 정말로 멍청한 짓이지만 사건현장에 살인마는 다시 나타난다. 거기서 모든 걸 확인하고 이제야말로 도망치려는 순간. 그의 눈앞에 경찰이 나타난다. 여기서 예상해본다. 과연 잭은 자신의 잔악무도한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인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화는 그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행운의 여신은 무슨 심정인지 그의 손을 들어주어 경찰은 단순 정신이상자의 난동으로 치부하고 그 어떠한 조사나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가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 잭이 여전히 밴에 실어둔 시체가 마치 자신의 한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트렁크 밖으로 묶인채 반쯤 삐저나오게 되었고 시체가 쓸리며 나온 핏자국은 마치 잭의 '죄의 족적'을 나타내는 듯 하다. 냉동창고 문 앞까지 와서야 자신의 뒤에 펼쳐진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본 잭은 망연하게 서 있다. 누군가 그 핏자국을 보고 용의선상이 좁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런데 그 순간, 침묵하던 검은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진다. 차갑고 액체 형태인 무언가. 그렇다 비가 내린다. 그것도 보슬보슬 내리는 정도가 아닌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내린다. 검은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는 정말 작정이라도 한 듯 잭이 남긴 죄의 족적을 말끔하게 지워주었다. 난폭하기만 하던 그 폭우는 잭에게는 인생 그 어떠한 순간에도 없었던 축복 그 자체였다. 그 순간 잭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반쯤 확신하게 된다. 무언가 절대적인 존재가 잭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을.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를 담담하게 비추며 만족스럽게 팔을 벌리는 잭의 모습속에 버질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현실에서 자네는 끔찍하게 비틀린 사탄에 불과 하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당신같을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을, 자네는 스스로가 '사이코패스'스라는 것을 아는가?'
'거짓말','이기적임','매력적','화려한 언변' 영화는 참 친절하게도 잭이 스스로 팻말을 들어 설명하는 메타픽션적 용법까지 사용하면서 잭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잭 스스로 말하길,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
그는 살인을 시작한 뒤로 '감정'을 알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린 표정을 보며 표정을 '모방'하는 잭의 모습은 인간적인 모습이 아닌, 그저 사냥감의 행태를 분석하는 사냥꾼의 모습으로 비춰져 보인다. 다시 냉동창고의 모습이 비춰지고 배인지 무화과인지를 먹고 있는 잭, 한 입 베어문 배를 보고는 있는 힘껏 집어던진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나뒹구는 배를 보며 잭은 무엇인가를 꺠닫는다. 더 이상, 강박이 그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를 미친듯이 난도질하고 속박했던 '강박장애'라는 주박은 '살인'이라는 (그의 딴에서는)거룩한 예술로 인해 부숴지고 그는 해방된 것이다. 만족스럽게 잭은 웃는다. 마지 올무에서 벗어난 짐승이 날뛰듯, 미친듯이 문을 걷어차고, 쌓여있던 피자를 마구 집어던졌다. 아! 무질서여!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함이여! 혼란이여! 이리도 홀가분하다니! 잭은 그날 해방되었다. 그가 이전에 어떠한 존재였든 상관없다. 그는 다시 태어났고 절대적인 존재마저 그를 보호하고 있다. 그래 이것은 계시인 것이다! 절대적인 무언가가 나를 점지한 것이야! 잭은 아마 이리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습게도, 그의 해방의 기쁨은 그가 앞으로 만들 '작품'들에게는 속박과 죽음의 불행이라는 양면의 동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