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취향에 대해서

음악 취향과 정체성 이야기

by harmon

"아, 예전 음악이 더 좋았던 것 같은데. 안 그래?" 당연하지만, 개인의 추억이 크게 관여하는 음악은 결국 취향의 영역이기에 쉽게 변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헤즈먼드핼시는 <음악은 왜 중요할까?>에서 음악을 통해 삶의 연속성과 발전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삶의 연속성은 기억과 강하게 연결돼 특정 리듬이나 짜임새가 통합되어 일어났던 일이나 느꼈던 경험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의 음악 청취 경험은 학급활동이나 직장 등 기억 및 감정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므로 더욱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반대로 말하면 중장년층이 되었을 때는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향수에 젖어 과거의 자신에게 투사할 수 있다. '자물쇠 효과'와 투자비용의 한계로 새로운 음악에 흥미가 저하되는 일은 늘어나는 나이에 비례한다. 실제로 데이터 엔지니어 아제이 카일라의 연구에 따르면, 청취하는 음악이 30대 중반부터 고착화되며 주류 대중음악으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은 남성들에게서 훨씬 두드러졌다(1). 미국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문화권역별 통계는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인 통념으로 여겨진다.


음악 취향이 사회적인 흐름에 의한 것인지 개인의 호오 때문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데, 음악적 취향이 결정되는 방식은 환경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취향이 뚜렷하더라도 경험 및 외부환경, 문화 적응도에 따라 유연하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조시 맥더멋을 중심으로 한 신경과학자 및 문화인류학자 연구진들은 볼리비아 원주민인 치마네족을 찾아가 음악적 쾌/불쾌의 경험이 보편적인 것인지 문화적 학습의 산물인지를 연구한 적이 있다(2). 원주민들은 협화음과 불협화음 등에 대한 자극을 받은 후 쾌적도를 평가하였고 조화음과 비조화음을 구별할 수 있는지, 순음에서 주파수 간격별 선호도를 확인하였다. 결론은 협화음과 불협화음에 대해서 아무런 선호도 차이가 없었으며 조화음도 마찬가지로 구별 가능했지만 선호 반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미학적인 판단이 문화적 산물의 결과라는 것을 드러내는 실험이며 화성과 합창이 존재하지 않는 치마네 마을이 외부와의 접촉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 음악적 노출이 없었다는 걸 반증한다. 가끔 구글링을 하다 보면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정립한 '아비투스Habitus'가 등장하는데, 이는 ‘사회적 무의식으로 체화된 성향'을 의미한다(3). 화음과 노랫가락을 보편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과 취향은 사회 통념과 체험 속에서 확장 방향이 조절되는 것은 다르다.


사회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인들은 음악 취향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수동적인 청취 방식이 공존하고 있다. 문화예술 플랫폼 ANTIEGG에서는 음악 매개자(추천자)의 중요성과 벅스 운영 채널 [essential;] 플레이리스트의 급부상을 언급하였다. 음악만을 감상하기보다 음악 청취와 다른 업무 처리를 병행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63.1%). 이는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쏟아지는 음악을 다 들어볼 수는 없으니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향성을 찾기 위함이기도, '방향제'와 편안한 분위기와 휴식에 대한 욕구 역시도 반영돼 있다. 음악이 실용적으로 여겨지는 반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음악 이용자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개별 취향을 반영한 플리가 주를 이루는 모습이 관찰된다(4). 새로운 장르나 음반을 접하게 되면서 얻는 개인적 쾌감을 얻고, 타인의 음악 취향과 관심사와는 또 다르게 듣고 싶은 음악을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편리하게 아카이빙 및 이용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팬데믹 이후 개인 중심의 소비 생활 변화와 덕질 소비 등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정서가 바뀌었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등하굣길 등 음악을 주로 청취하는 시간대에 개인이 원하는 음악을 청취하고 가치 있는 걸 선택하는 과정이 취향을 재확인하는 방법이 되었다. SNS와 같은 소셜 앱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공유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음악은 젊은 세대의 자기표현 욕구에 불을 붙였다고 본다.


스트리밍 서비스 이야기를 하자면, 가볍게 듣는 플레이리스트나 인기 싱글 목록조차도 취향 발자취이자 통계가 된다. 구체적으로 스포티파이는 일정 청취 기록이 쌓이면 데일리 위클리, Wrapped 기능을 제공하거나 음악 청취 스타일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에 대한 판단 기준 항목은 F/E(친숙성과 탐험성), T/N(영원성과 유행성), L/V(충실성과 다양성), C/U(보편성과 특이성)으로 나뉜다. 청취 유형(Listening Personality)에 따라 유저 맞춤형 알고리즘이 작용되어 개인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고 철저한 스트리밍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청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취향 프로필을 연구한 스포티파이 이외에도 2000년대에 음악 취향을 수작업으로 빚어냈던 '뮤직 게놈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해당 프로젝트는 Pandora radio로 불리는, 특정 음악을 검색하게 되면 음악 DNA를 분석 및 DB화하여 유사한 곡을 추천하는 라디오 스테이션 서비스이다. Pandora는 2019년 Sirius Xm에 인수되었고 미국에서만 운영 중이지만 음악 장르에 따라 약 150~500개의 '음악적' 유전인자로 세분화하여 조직 및 매칭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여태까지 전통적인 음악 비평이나 동료의 귀띔, 음반사의 광고에서 비롯된 음악 청취 방식은 음악을 '코드'로 식별하고 메타데이터화하여 대중이 아닌 개인을 중심으로 구성하도록 하였다. 덕분에 개인의 호불호와 메타정보를 통해서 쉽게 취향을 발견하고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깊게 들어갈수록 성향과 장르 및 청취 방식 사이에 연관성이 생긴다. 국내의 경우 애니어그램 성격유형 검사도구인 KEPTI를 활용하거나(5), IBM SPSS Statistics 27 통계 측정으로 성격과 음악의 연관성을 파악한 사례가 있다(국제인문사회연구학회, 강민영, 김현정). 특히 MBTI는 음악수용 방식과 관련된 연구에 자주 엮이는데, 전자의 청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컬의 유무 선호도'나 '음악을 청취하는 시간대', '가사가 미치는 영향'과 관련된 응답의 분포가 유형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해외에서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데이비드 그린버그 박사가 해당 연구를 이전부터 선행하였다. 2020년, Greenburg 박사는 3개월 동안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친화성, 정서적 안정성을 측정하는 44개 문항으로 구성된 설문지 Big 5 인벤토리(Big Five Inventory)를 작성하도록 했다. 해당 연구는 음악 선호도와 개인의 정체성을 연관 지을 수 있는 경향성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 예를 들면, 컨트리나 재즈를 듣는 사람들은 성실성 평가에서 양의 관계를 보이는 반면 메탈이나 얼터너티브를 듣는 사람들의 경우 외향성 평가에서 음의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박사의 동일 연도 논문에서도 Study 3 케이스에서도 회귀계수와 유의확률의 값을 통해 자기 일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6). 이는 음악 예술이 정체성에 얼마나 밀접하면서도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Big Five Inventory Anaylsis

잠시 벗어나 특정 장르에 대한 선호도가 미술이나 영화 등 다른 문화예술의 선호도와 연결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스키를 즐기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사이클보다 스노보드를 탈 가능성이 높듯이, 음악도 유사하거나 비슷한 장르를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례로 슈게이징 장르를 선호하는 분이 인상주의 화풍을 좋아하고,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도 취향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에 관해 리서치 토픽으로 다뤄진 정체성 미학에 관련된 연구 내용 중 음악-시각예술 사이에서도 '교차 모달 대응'이 활발하게 일어나 취향 연관성을 드러낸 바 있으며(7), 미학과 정체성 사이에는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였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또 다른 장르나 미적 관심으로 옮겨갈 때에도 우리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분야로 넘어갈 수 있겠다.

국내 음악 연구소인 LAB CHASM(랩 캐즘)에서 Valence–Arousal 모델을 활용해 주제 및 정서의 시대적 비율을 분석했듯이 동일한 정서가 투영되어 비슷한 감정 스펙트럼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8). (위에서는 강렬한 정서와 노스탤지어, 몽환적이라는 키워드를 꼽을 수 있겠다) 미적 정체성이 보통 음악뿐 아니라 다른 문화 매체로도 취향을 표현할 수 있으니 특정한 취향과 미적 정체성을 떠나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된다.


개인의 음악 취향이 정체성에 뿌리를 둔다면 스트리밍 플랫폼의 추천 음악은 과연 우리 자신을 대변할 수 있을까. 스트리밍 데이터는 취향 발견의 뒷받침이 되는 증거이자 산물이지만 개인은 선별된 개체화를 거쳐 음악 콘텐츠와 함께 대상화된다. 대중음악부터 인디음악까지, 취향을 발굴하고 조작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객체화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오브젝트가 되었다고 해서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않는 것은 아니다. 알고리즘을 통해 세분화된 디지털 자아는 소비하는 이들에 재흡수되기 때문이다. 특정한 대상이나 사물에 과몰입하거나 동일시하는 행위를 일컬어 '자아의탁'이라고 하는데, 지나치게 취향에 집착하고 기댄 나머지 의식적인 주체성을 상실하는 일이 생긴다. 또는 SNS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반향실 효과로 인해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정시키고 옭아맨다. 실제로 찜을 누른 콘텐츠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음악이나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문제를 겪어본 적이 있다. 의도치 않게 개인의 의사결정을 제한하는 느낌이 든다거나 지나친 최적화로 인해 독립된 프레임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특정 곡이 추천된 이유를 제대로 규명해 줄 수 없으며 개인은 취향 프로필에서 유리된 채 존재하므로 음악 취향이 우리의 자아 이미지를 왜곡할 수 있다. 개인은 플랫폼 상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자아가 '알고리즘적 개체화' 상태로 맴돌기만 할 뿐이다(9). 운동할 때와 술을 마실 때, 처지는 기분일 때 등 상황과 맥락, 관계에 따라 잠재적으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알고리즘 위에 있는 한 자아 정체성은 분류와 범주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


몇몇 이들은 알고리즘적-개체화와 취향 파편화(혹은 게토화)로 인해 공유 경험이 축소되었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는 1)인터넷 때문인데, 음반에 대한 진지한 토론 문화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인터넷의 특수성으로 감상적인 측면이 와해되었다는 것이다. 대면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대화 자체가 단절되거나 소통이 저해되는 일이 잦다. 비판적이고 투명한 식견을 담은 댓글이나 리뷰도 종종 확인할 수 있지만, 보통은 관심이 없거나 익명성을 무기로 타인에게 인신공격을 휘두르기도 한다. 온라인 음악비평가 앤서니 판타노는 유머와 밈으로 소비되는 저렴한 미디어 플랫폼의 매커니즘과 비상식적 대화가 지나치게 반복되고 있음을 토로한 적이 있다(10). 구체적인 담론이나 맥락을 전혀 찾을 수 없다면 아무리 청취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스갯소리에 파묻히게 되고 진정성은커녕 건설적인 대화가 중단되고 만다. 팬덤이나 특정 모임에서 펜타포드 정보 공유, 라이브 경험담 등을 공유하므로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할 있으나 콘서트 후기는 오프라인 토론이 아닌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위주이며 대면 소통으로는 피상적으로 이어지기 쉽다. RYM 사이트나 유튜브 콘텐츠, 카페에서 제공받는 정보로 마음껏 소통할 수 있는 21세기에 아이러니한 현상으로 느껴진다.


다음은 2)음악 평론의 부재이다. 음악 평론이나 비평은 음악 자체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취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 음악 취향이 애초 비판받아야 할 대상인지에 대한 의문심을 더한다고 말하며, 불특정 다수 앞에서 담론을 형성하고 토론해야 할 필요성 자체가 없다고 한다. Kelefa Sanneh의 칼럼대로 노래를 듣는 게 이에 관한 글을 읽는 것보다 '쉽고 빠르고 저렴'하기 때문이다(11). 담론은 '취향인데요'라는 한마디에 반기를 들 수 없었고, OTT와 전자책과 더불어 소비 방식이 개인화되면서 공동체적 인식이 약화되었다. 작년에 있던 피치포크 인수 관련 소식이나 '팝티미즘(Poptimism, 팝과 옵티미즘의 합성어)' 현상, 한국 음악계 발전의 특수성 모두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열의와 노력은 과거에 멈춘 채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 같다. 미국 평론가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최근 기고글에서 비평의 가능성과 존재 의의 소멸을 언급하였고, 2년 전에는 캔슬 컬처, 워우크 운동(정치적 올바름)이나 예술-관료주의적 정책 등의 폐해가 진지한 문화를 파괴하였다고 꼬집었다(12). 평론이 없다면 대중과 의제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상업성과 바이럴 및 싱글위주에 치우친 음악시장이 지속되고, 건설적이지 않은 비판의 촉매제가 될 뿐이다.


청취자들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복잡할 수도, 그렇게 와닿지 않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 데레저위츠의 말대로 '나르시시즘', 문화예술이 대중의 입맛을 반영하여 우리 자신이 지루해져서, 더 이상의 생각과 소통이 단절된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에고의 안위에 유해하고 욕구와 정서에 거스르는 일은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도 저 한편에 존재하기도 한다. 먹고사니즘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왜 고민해야 하는지 말이다. 또한 음악 취향만으로는 생산적인 대화를 이끌어나가기에는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감이 기저에 있다. 음악 청취가 지극히 사적인 취미이며 유흥과 자기만족에 그치기 쉬워서 그럴까. 그럼에도 음악에 관한 대화가 늘어나면 많은 이들이 집착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프라가 도서관이나 영화관만큼 제약이 줄어든다면, 음악카페나 레코드샵에서 진행하는 모임이 활성화될 수도 있겠다. 자기계발이나 교육 목적(작곡 방식이나 기법, 논의 쟁점 등)에 꼭 맞추어져 있지 않더라도 단순한 취향 이야기나 공유에도 그쳐도 유익할 수 있다. 소속사의 뉴스나 라이브 무대 등의 경험부터 시작해 펜타포드 페스티벌 관람, 이따금씩 <케이팝 데몬 헌터즈> 덕질이나 굿즈를 꺼내본다면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꼭 전문적인 비평이나 고차원적인 예술 행위 감상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예술 작품에 있어서는 감상자의 몫이 절반이기에 받아들이는 건 오로지 개인의 몫일뿐이다.

어떤 예술작품이 나에게 작동하는지 아닌지는 오로지 내가 그것을 이미 내 안에 가지고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언뜻 새로워 보이는 것도 실은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의식되기 시작했을 뿐, 예전부터 어둠 속에서 졸고 있던 내면의 영역에 돌연 빛이 닿았을 뿐이다. 내가 느끼고 보고 듣는 것은 내 안에 이미 있는 것뿐이다. 그것이 나 자신의 일부인 경우에만 예술작품은 나에게 생생한 의미를 띠게 된다. 그것은 잠재적인 감정가의 각성이지 결코 절대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파울 베커, Kritische Zeitbilder, Berlin, 1921, p.21-22.

음악 취향 이야기로 돌아와서, 특정 사운드에 대한 관심과 생각은 곧 흡수되어 자기 정체성을 재구성한다. <음악은 왜 중요할까?>와 <음악을 듣는 법> 모두 인용하자면 전자에서 데이비드는 누스바움의 주장에 반하여 음악이 고급문화와 자기 수양에만 머무르지 않고 접근하기 쉬운 대중음악으로도 자아실현에 일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음악 가사는 음악 그 자체보다 감정적 자기 풍요를 고려해 공명할 여지가 크며 관조나 성찰을 넘어 정체성 및 공동체적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꼭 스트리밍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라이브 콘서트나 페스티벌, 연주회 등 행사는 모든 걸 잊을 만큼 무아의 경험을 맛보기도 한다. 후자에서는 피에르 바야르의 '내면의 도서관'을 언급하며 여태까지 쌓인 책과 음악 등 이력에 의해 내가 규정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타인의 '내면의 도서관'과 충돌 생기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모두 개인의 자아 이미지와 협응하게 되며 정체성의 변화를 암시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가진 음악 취향을 통해 완전히 다른 관점을 배우고 간과했던 부분에 대해서 재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음악도 우리 자신의 논리와 말하고 싶은 주제를 보강할 수 있는 자원이 되어 개개인에게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아크앤북 부산광안리점 _ 취향을 큐레이션하다

음악이 정체성과 엮인다는 건 뇌과학적으로도 확인된다. <당신의 음악 취향은>의 수잔 로저스와 오기 오거스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경험하는 미적 즐거움은 개인의 정체성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개된 연구 사례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Robin Wilkins 연구팀이 진행한 음악 선호도와 뇌의 기능적 연결성 실험이 있다. 해당 실험은 fMRi 스캐너로 랩, 록 등의 장르를 헤드폰으로 들었을 때 나타나는 설전부와 멍 때리기 연결망 사이, 청각 피질-해마 사이의 연결성 정도를 분석하는 것이었다(2). 특히 '좋음' 곡을 들을 때는 쐐기앞소엽에서 네트워크 연결망 사이의 활동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으며(p=.017), 선호하는 음악을 들을 때는 해마가 청각 피질로부터 기능적으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작동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연구팀은 우리의 기억 회로가 암호화 모드가 아니라 회수 모드로 들어가 노래와 연관된 기억과 장소, 사건의 기억을 자동으로 재생한다고 추측하였다. 이는 고유한 음악 취향이 개인의 자아감과 공명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자기인식과 통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곡은 소음이나 잡음에 가깝게 느껴지는 반면 어떤 곡은 그렇지 않다면, 정체성과 엮여 꽤나 교묘하고 까다롭게 작용하는 것이다(13).


여태까지 음악 취향을 이야기했지만, 취향과 호불호가 음악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음악을 듣는 법>에서 오카다 아케오는 “상성이니 기호니 집단적 가치관의 차이니 하는 것을 가로지르는 불문곡직 절대적인 가치의 계시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런 음악적 체험은 흔히 말하는 품평과 감동을 넘어선 ‘누미노제(외경심을 일으키는 체험)’이며 인생관이 송두리째 바뀔 정도의 감각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런 경험은 보통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체적으로 소름이 돋거나 전율을 동반하는 것이며 영혼과 ‘Click’하는 상태에 돌입한다고 개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미지와의 조우'라고 설명하는 이 신학적 체험이 어쩌면 청취의 궁극적인 본질일 수 있다고 하나, 이런 음반을 찾기란 매우 어려우며 음악은 생리나 신체 반응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각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발견만 하였다면 자신이 선호하는 음악이나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생 앨범'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클래식이 될 수도 있고,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유명 밴드의 록 음악, 혹은 재즈나 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리송 참조)

확실한 것은 음악에 있어서 선험적인 지각과 의식은 청취 경험 없이 존립할 수 없으므로 온전히 겪음으로써 알 수 있다. 특정 음반을 들을 때 우리는 의도치 않게 몰입 상태를 이어갈 수도 있고 희열감이나 의문의 안도감, 혹은 거부감이라는 주관적 인식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질문을 멈추지 말자. Topster로 명반 이미지만 나열하기에 멈추지 말고, 적극적으로 내 취향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이 앨범이 왜 좋으며 어떤 음악 스타일인가? 인생 앨범이라면 비평을 떠나서 이 앨범에 관한 추억이나 경험담이 있을까? 이를 누구에게 추천할 수 있으며 모르는 사람한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타인은 이를 어떻게 여기며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음악 취향은 여기서, 비로소 시작된다.


(1) “Music was better back then”: When do we stop keeping up with popular music? . (2015). https://skynetandebert.com/2015/04/22/music-was-better-back-then-when-do-we-stop-keeping-up-with-popular-music/.


(2) McDermott JH, Schultz AF, Undurraga EA, Godoy RA. Indifference to dissonance in native Amazonians reveals cultural variation in music perception. Nature. 2016 Jul 28;535(7613):547-50. doi: 10.1038/nature18635. Epub 2016 Jul 13. PMID: 27409816.


(3) 덧붙임 : 아비투스는 사회 계급 구조 및 재생산이 포함된 개념이기는 하나, 문화적 취향에 의한 계급 영향이 점차 소멸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기에 계급 구조의 영향이 퇴색되었다고 해석하였음. / 양종회. (2009). 문화적 취향의 분화와 계급 - 음악장르를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43(5), 170-209.


(4)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2024). 2024 음악 이용자 조사. ISBN 979-11-6677-257-3(93600).


(5) 강신정 and 한경훈. (2024). 성격유형(MBTI)별 음악수용 방식에 관한 연구 - 청년 대상 설문조사를 중심으로 -. 문화와융합, 46(1), 1111-1126.


(6) Anderson, I., Gil, S., Gibson, C., Wolf, S., Shapiro, W., Semerci, O., & Greenberg, D. M. (2020). “Just the Way You Are”: Linking Music Listening on Spotify and Personality.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12(4), 561-572. https://doi.org/10.1177/1948550620923228 (Original work published 2021)


(7) Fingerhut, J., Gomez-Lavin, J., Winklmayr, C., Prinz, J. (2021). The Aesthetic Self. The Importance of Aesthetic Taste in Music and Art for Our Perceived Identity. Frontiers in Psychology. Volume 11 - 2020. JOURNAL ARTICLE.


(8) 데이터로 분석해 본 한국 인디음악의 가사 . ( 2025). https://www.labchasm.com/article/9.


(9) Prey, R. (2017). Nothing personal: algorithmic individuation on music streaming platforms. Media, Culture & Society, 40(7), 1086-1100. https://doi.org/10.1177/0163443717745147 (Original work published 2018)


(10) Seriously? . (2024). https://theneedledrop.com/opinion/seriously/.


(11)How Music Criticism Lost Its Edge. (2025).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5/09/01/how-music-criticism-lost-its-edge.


(12) We’re All Bored of Culture. (2023). https://www.tabletmag.com/sections/arts-letters/articles/bored-of-culture-william-deresiewicz.


(13) 멍때리기 연결망은 DMN 네트워크 회로를 말하며, 목표 작업을 수행하고 있지 않을 때 주로 활성화된다. <네트워크 사이언스와 음악 선호도가 기능적인 뇌의 연결성에 미치는 영향 : 베토벤부터 에미넴까지>, Robin W. Wilkins, Donald A. Hodges, Paul J. Laurienti, Matthew R. Steen, Jonathan H. Burd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