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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Have A Nice Life의 <Deathconciousness>

by harmon

코네티컷 출신의 듀오 밴드 Have A Nice Life가 5년 넘게 공들인 작품 <Deathconsciouness>(2008)은 현재까지도 어두운 주제의식과 파괴적인 사운드스케이프로 마니아층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발매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이후 4chan의 /mu/, 레딧, 각종 음악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며 넷상에서 인기를 얻었다. Tim Barett의 솔로 프로젝트인 Giles Corey의 초창기 팬인 음악 비평가 앤서니 판타노(Anthony Fantano)의 'NO FUN. NOT EVER' 티셔츠 룩도 이들의 독특한 명성에 가세하였다. 기괴한 기타음과 다크 앰비언트의 'A Quick One Before the Eternal Worm Devours Connecticut'은 래퍼 LIl Peep의 곡 'Shiver'에 샘플링되어 장르적 입지를 벗어난 영향력을 증명하였다. 후속작인 <Unnatural World>, <Sea Of Worry>가 발매된 이후에도 $1000 이하의 초저예산과 홈레코딩, 오래 시간에 걸쳐 자체 레이블(Enemies List Home Recordings)을 통해 완성한 DIY 작품이자 Dan Barrett과 Tim Macuga의 걸작이다.


이들의 컬트적인 인지도는 '죽음의식(deathconcious)',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첫 번째로 녹음된 곡인 'The Big Gloom'는 강한 리벌브와 로파이한 사운드로 진행되며 4분 40초 넘어서면 사운드와 구별하기 힘든 보컬로 노래한다. "난 갇혔어, 이 화장실 바닥에 갇혀있어 / 그리고 더 이상의 희망과 자존감이 남아있지 않아 / 공기도 없고, 음식도 없지만, 내가 살아있는 건 확실해." 화자가 겪는 지독한 우울감과 무력함은 화장실 바닥의 정사각형 타일에 지독하게 박혀버린다. 직접적인 가사로 연결되는 헤비메탈 곡 'There Is No Food'에서는 사운드 자체가 발성과 함께 붕괴되며 드론음이 살아 있는 의식의 박동을 꺼뜨리는 듯하다. 애정이 가는 트랙 'Bloodhail'에서는 인간성의 한계와 피에 대한 갈망, 고독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며 진지하고 베이스와 강렬한 전자음과 리프레인의 수많은 '화살촉'이 비수처럼 꽂힌다. 부클릿에 담긴 중세의 허구적 인물 안티코우스(Antichous)을 중심으로 한 이교도 집단이나 커버아트의 적나라한 <마라의 죽음> 커버아트는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눌러 담는다.

hIHVcVU.jpg Dan Barrett and Tim Macuga

Barrett은 죽음을 배척하고자 하는 서구의 지배적인 태도에 대한 의문과 아버지의 죽음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세상에 대한 회의감을 뻗쳐 보이기도 한다. 극적인 신스와 요동치는 베이스 리프, 스네어 드럼으로 있는 힘껏 인류의 파괴적인 본성을 들뜨게 하고('Deep, Deep'), 보컬이 깊게 묻히는 슈게이즈 노이즈와 합창으로 저버린 사랑의 의무감과 외로움을 1,000만 톤으로 표현하며('I Don't Love'), 빠른 템포의 헤비메탈 사운드로 물질자본주의와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며 울부짖는다. (''Waiting for Black Metal Records to Come in the Mail') 이들의 마스터 녹음본은 분실되고 노트북 마이크를 활용한 동시녹음으로 믹싱이 완전하지 못하며, 잡음이 끼어 있지만 그렇기에 현장감을 느낄 수 있고 솔직한 점이 있으며, 지옥에서 건져 올린 듯한 사운드로 거대한 울림을 남긴다. 키보드 심벌즈 프리셋과 CASIO 샘플링 비트를 활용한 ''Holy Fucking Sh it: 40,000'에서는 3분 20초 즈음에 시작되는 인더스트리얼 업템포와 어쿠스틱 기타로 가볍게 처리해 내며 터미네이터의 소외와 고통을 잔잔하게 뒤틀어버린다. "그리고 지구가 입을 벌릴 때 오직 몇 마디만 튀어나오지, 우리 다 죽었으면 좋겠어." 어쿠스틱 스트러밍으로 시작하는 'Earthmover'에서 4분이 넘어가면 키보드, 기타, 비프음을 레이어링하며 크레셴도로 합창과 신스를 쌓아 올린다.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압도적이고 요란한 연주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Barrett의 보컬과 후반부 베이스 드롭은 지친 삶을 놓아버리고 서둘러 느낌이다.


그러나 십 년 넘은 세월이 흐른 지금 마흔 중반의 두 사람에게 <Deathconsciousness>는 니힐리즘이나 실존적 소외와는 다른 성숙을 위한 발판이자 일종의 시금석에 불과하다. Macuga는 농장 운영 및 교사, Dan Barrett은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부동산 마케팅 에이전시를 운영하며 팬데믹 동안 투어와 리허설, 사이드 프로젝트ㅡGiles Corey, The Flowers of St. Francis 등ㅡ로 말 그대로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Macuga는 말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있으며, 지금 우울한 성향이나 불안을 겪는다는 것은 20살 때 책임감이 적고 주말 내내 그런 꿈을 꾸던 때와는 다릅니다." (<REVO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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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 Quick One Before the Eternal Worm Devours Connecticut

2. Bloodhail

3. The Big Gloom

4. Hunter

5. Telefony

6. Who Would Leave Their Son Out in the Sun?

7. There Is No Food

8. Waiting for Black Metal Records to Come in the Mail

9. Holy Fucking Shit: 40,000

10. The Future

11. Deep, Deep

12. I Don't Love

13. Earthm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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