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ur Ros의 <Ágætis byrjun>
1994년 레이캬비크(Reykjavík)에서 결성한 Sigur Rós(시귀르 로스, 승리의 장미)의 <Ágætis byrjun>는 언제 들어도 시대를 초월한 청취 경험을 선사한다. 데뷔 앨범이었던 <Von>(1997)에서의 부진한 실적과 얼터너티브의 쇠퇴기가 겹친 시점에서 이들의 음악적 쇄신은 2세대 포스트록의 부흥과 역사의 흐름을 불러왔다. 아이슬란드의 배경에 힘입어 시네마틱한 사운드 연출도 그렇지만, 프런트맨인 Jónsi Birgisson(욘시 비르기손)의 신비로운 팔세토 창법은 독특하며 몽유병을 유발한다. 20주년 기념 발매에서 게오르그 홀름은 말한다. "Ágætis byrjun은 확실히 저희 삶의 전환점이었기에, 항상 마음속 특별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라이브 세트에서 그 앨범의 많은 곡을 연주한다는 것으로 두드집니다."(<undertheradar>) 세계적인 찬사와 더불어 비평 매거진인 피치포크, 롤링스톤에서는 각각 2000년대 최고의 앨범 8위에 올렸고, 29위에 올린 바 있다.
'Hjartað hamast (bamm bamm bamm)'에서는 "좋은 시작을 찾지만 이내 실망으로 돌아오고 만다"며 먹먹한 라이드 심벌과 플루겔혼으로 아쉬움을 표출한다. 그럼에도 동명의 타이틀 트랙에서 이들의 마음가짐을 잘 엿볼 수 있다. "Við munum gera betur næst (다음에는 더 잘할 거야)" 실제로 위에서 소개한 곡은 피치포크 미디어 2000년대 500곡 중 36위에 오른 만큼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언어인 희망어(Hopelandic)를 첨가한 'Olsen Olsen'의 알라포스 합창단의 목소리는 물론, 장엄한 스케일과 아르페지오를 펼쳐 보이는 현악곡 'Viðrar vel til loftárása(공습하기 좋은 날씨)'도 그렇다. 후자는 유고슬라비아 폭격 당시의 날씨에 대한 곡으로, 욘시는 "En það besta sem guð hefur skapað(하지만 신이 해낸 최고의 일은) Er nýr dagur(바로 새로운 날이 뜬다는 것)"라고 노래한다.
특히 'Svefn-g-englar(잠결에 걷는 천사들)'는 태아가 자궁 속에서 태동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그린 곡이다. Kjartan Sveinsson(캬르탄 스베인손)의 하몬드 오르간으로 시작하는 인트로는 우주 속을 유영하는 느낌을 실어주며, Spriti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를 연상케 한다. 실제 시규어 로스에 따르면 작업 당시 타이틀명이 '잠수함 노래'였는데, 앰프에서 뿜어내는 리버브나 아이바네즈 기타의 사운드로 무중력 상태에 놓인 듯하게 된다. 1분 30여 초에 터뜨리는 Georg Hólm(게오르그 훌름)의 베이스는 장장 10분에 달하는 거대한 음악의 장을 열며 청취자를 몽환감에 노출시킨다. 반복되는 후렴구인 'tjú'는 자장가처럼 아이들을 잠재우듯 탄생을 기리고 다독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MV에 나타난 다운증후군 연극 그룹인 perlan의 안무도 이를 잘 드러내지만 무엇보다 앨범의 아트워크처럼 욘시는 "En biðin gerir mig (leiðan)"라고 속삭이며 아기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듯 발로 차기 시작한다. 헤세의 <데미안> 실린 문장처럼 자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활로 기타를 연주하는 데서 나오는 불협화음과 파열음이 어우러지며 9~10분에서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심장박동으로 끝맺는다.
<Ágætis byrjun>은 Queen의 앨범 작업을 도운 프로듀서 Ken Thomas 덕에 형언할 수 없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로 메워져 있다. 사이키델리아와 스페이스 록, 앰비언트 등의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다. 'Flugufrelsarinn'의 드론과 오버더빙, 현악 8중주로 연주되는 'Starálfur'의 무그 신서사이저나 오토하프, 장파 라디오는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20주년을 맞이하여 발매한 기념 한정판에서는 라이브 및 데모곡을 포함 총 34곡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