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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lyrosophie

야행성 인간의 넋두리

Kinoko Teikoku의 <Eureka>

by harmon

'이대로 영영 잠들어서 깨지 않는 꿈을 꾸면 좋을 텐데.' 불면증과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아침저녁으로 괴로워하다가 내린 새벽형 인간의 우울한 결론이다. 잠은 현실에서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고 잊을 수 있도록 온갖 걱정과 스트레스, 전 연인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하나의 깨달음이라면 말이다. 내일을 꿈속에서 맞이하면 더는 아침을 맞이하지 않는 '유레카'가 될 수 있을까하고 슈게이징 밴드 Kinoko Teikoku는 고민한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그러니까 퇴색된 도시임이 분명한 그곳은 새벽보다 조용하고 아침보다 싱숭생숭할 테니까. 하지만 어김없이 소중한 사람의 한마디에서 피어난 감언이나 잊지 못할 추억에 눈을 뜨고야 마는 내 자신이 얄궃다. 버섯왕국 밴드는 <Eureka>에서 불면증과 우울, 그리고 번잡한 고민을 한데 모아 새벽을 거무튀튀하게 덧칠한다. 새벽을 들추고 나면 모든 것은 새까맣게 타버린 숯덩이 같은 추억과 생각으로 중구난방이었다.


새벽에 하는 후회 중 하나는 전에 사귀었던 사람에 대한 일이다. 앨범에서 가장 먼저 접했던 트랙인 '平行世界'에서 Sato는 가볍게 내뱉으며 곡을 시작한다. "잘못된 밤과 문제 하나. 일단 앉아서 커피를 마셔나 볼까." 베이스가 들어서며 이후 이어지는 벌스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ex-관계를 향한 회한과 슬픔의 감정이 합창에서 묻어난다. 평행세계에서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지 모르는 두 사람의 미래가 점멸하는 일렉기타의 독주로 점철된다. 리프는 바로 이어지는 '春と修羅'에서 이 모든 고민이 부질없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어우러지는데, 죽일 방법만을 궁리하는 화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준다. 여기에 미야자와 겐지의 <봄과 아수라>가 언급되듯 바로 다음 트랙인 246번 국도나 교실이 심상 스케치가 되어 재현된다. ('風化する教室', '国道スロープ') "3년 전 그날 네가 했던 말에 여전히 상처를 받아(3年前のあの日の台詞が / 傷つける傷つける)." 후자의 곡은 좀 더 펑크하며 빠른 템포로 쏘아붙이며 방지턱을 무시한 채 대담하게 진행된다. 기억은 풍화되어도 프레임 밖의 풍경이 보이더라도 화자를 아프게 한 말은 여전히 마음의 비늘을 찢어발긴다.

aramajapan.com-kinokoteikoku-art201808-fixw-640-hq.jpg Chiaki Satō, A-chan, Shigeaki Taniguchi, Kon Nishimura. © Kinoko Teikoku

반면 느리게 이어가며 센티멘털한 감성을 자극하는 'ミュージシャン', '夜鷹'는 진지한 톤으로 고충을 주욱 늘어뜨린다. 특히 후자의 곡은 앰비언트인적인 공간감을 선사하면서 까슬까슬하지만 부드러운 소음과 차분한 저음의 독백에 귀가 젖게 되는 편이다. "죽이는 것 외에는 살 수 없는 우리는 살아가는 것을 고통스러워하지만 / 살아가는 기쁨이라는 불확실하지만 따뜻한 말에 속아 넘어가 지금도 살아가고 있어." 마지막 후렴구에서는 사운드의 벽 기법으로 My Bloody Valentine, Ride 등의 초창기 슈게이징 문법과 타협하며 독보적인 사운드를 건져내었다. 말 그대로 세포 분열을 계속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수명이 짧은 별이나 잔해가 된 초신성이 될 운명을 향해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피력한다. 파이널 트랙인 '明日にはすべてが終るとして'의 희미한 보컬과 합창은 여명을 알리며 이후 3분 동안의 정적 이후 'Untitled'라는 히든 트랙으로 맞이하며 마무리된다. 진심으로 하루를 살아가지 못하는 오늘을 책망하지만 따스한 한마디에 그만 내일을 바라볼 수밖에 없음에 멋쩍게 웃어넘긴다.


2007년 결성한 키노코 테이코쿠(Kinoko Teikoku, きのこ帝国)는 Chiaki Sato(보컬), A-chan(기타), bassist Shigeaki Taniguchi (베이스), Kon Nishimura (드럼)로 구성된 일본 밴드로, 슈게이징 스타일을 탁월하게 표출하며 국제적으로 팬들의 소문을 불러 모은 인디 록 밴드였다. 미니 앨범 <渦になる>(2012)와 <フェイクワールドワンダーランド>(2014)에서 이후 대형 음반사 EMI와 계약하며 이후에 발매된 앨범인 <猫と アレルギー>(2015), <愛のゆくえ>(2016) 모두 대중적인 입지에 어울리는 드림 팝과 톤으로 인기를 얻었다. 마지막 앨범인 <タイム・ラプス>(2018)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며 상위 차트에 올랐는데, 2019년 베이시스트 Taniguchi의 사정으로 무한 연기 선언 및 해체가 기정사실화가 되었기에 큰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Sato만 솔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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