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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harmon Apr 07. 2024

영묘한 음파 사이를 떠도는 '포에버 언더그라운드'

[리뷰] 줄리 바이른의 [The Greater Wings]


루이스 A. 타타글리아의 <>(The Great Wing)에는 '큰 마음'을 품기 위해 끝없는 자기 의심과 비관을 맞닥뜨리는 기러기 고머가 있다. 그 옆에는 멀리 비상(飛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랜파와 그랜드 구스가 있다. 이들은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법"이라며 고머가 날지 못할 거라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위대한 날개'의 본성을 일깨워주고, 서로를 격려하며 회복 탄력성을 높이고자 한다. 책이 우화라는 걸 생각해 볼 때 6년 만에 돌아온 전업 예술가 줄리 바이른(Julie Byrne)의 3번째 정규 앨범인 [The Greater Wings]와도 접합점이 있다. 타이틀은 조금 다를지라도 성숙한 의식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함께 나아가겠다는 소망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바이른의 옆에 그랜드 구스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 존재는 에릭 리트먼(a.k.a Steve Sobs)였을 것이다. 리트먼은 2021년 예기치 않게 세상을 떠났으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로 활동해 오며 소포모어 앨범 [Not Even Happiness](2017)의 중심축이 되었다. 바이른은 자신을 지속적으로 지지해 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리트먼을 언급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를 위해서인지 타이틀 트랙 'The Greater Wings'에서 속삭인다. "넌 항상 밴드에 있는 거야, 영원한 언더그라운드에."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가 떠오르나 뜻깊은 애도에 더불어 훨씬 심금을 울린다. '영원히 언더그라운드(forever underground)'는 리트먼 중심의 음악 공동체 팬텀 포셰의 좌우명이자 앨범명이기에 기념비적인 구호가 된다.


[The Greater Wings]는 현악기의 앙상블을 눌러 담는데, 여름의 햇빛을 반사하여 눈이 부시기보다는 곧 저물어버릴 것만 같은 노스탤지어의 감각을 자아낸다. 'Summer's End'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을 돌아다니며 녹음한 하프의 향연을 선사하고 풍성하고 밀집 있는 앰비언트 모먼트를 선사한다. 이를 백업하는 'Summer Glass'의 신시사이저가 압권인데 신비로운 사운드의 자태에 효과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레이어링했다. 전자는 묵언수행이나 명상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라면, 후자는 천체의 운행을 멀리서 감상하는 듯하면서도 다른 차원의 세상에 머물어야 할 것만 같다. (세 번째 벌스 후의 인터루드는 잠깐의 휴지 기간을 주며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Tonje Thilesen/Courtesy of the artist

특히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트랙인 'Hope's Return'은 레데스마와 작업했던 콜라보 싱글 [Love's Refrain](2020)를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바이른의 코러스 보컬이 이를 심화시킨다. 컬래버 멤버 소머스와 팔비의 기타 보잉(Bowing), 레데스마의 모듈러 신스는 감정의 불순물을 정화한다. 바이른은 작업 과정이 신비롭기만을 바라는 마음가짐에 빠져 지내던 때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했으나, 이런 몽환적인 사운드의 기반이 헛되고 두리뭉실한 일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Lightning Comes Up From the Ground', 'Moonless' 역시 감정을 우아하고 비현실적으로 형해화하나 백일몽으로 자각되게끔 하는 차분한 보컬이 틈입한다. "당신에게 환상이고 싶어, 그리고 환상이 일어나는 중이지 / 당신에 매번 가까이 올 때마다 바닥에서 빛이 나와."


달빛 없는 하늘과 황금빛을 내뿜는 폭포, 365일 뜨고 지는 태양의 모습처럼 자연을 닮은 음악도 누락시키지 않는다. 목가적인 'Portrait Of A Clear Day'에서는 섬세하게 몰입하는 바이른의 이미지를 서두에 제시하며 US 포크를 깃들이는데 특유의 핑거 피킹을 활용한 'Sleepwalker'를 떠오르게 한다. 1분 30초가량 배경음에 머무르다가 피아노로 옮겨가고('Death Is The Diamond'), "태양의 불길이 치솟는 지금 나와 있어 줘"('Flare')라며 황혼이 지나 누군가가 떠난 여명의 순간을 신스로 표현한다. 공원 관리원으로 일하거나 미시간 호를 따라 거닌 아티스트의 경험들 고려해 볼 때 심층적인 사운드로 서라운드를 조성하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줄리 바이른이 들려준 대로, [The Greater Wings]는 "가족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공동의 미래에 대한 헌신의 깊이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더욱 눈부시다. 천상에 가까운 사운드를 건져냄으로써 상실과 애도를 표현하는 동시에 리트먼의 족적과 우정, 또 자신과 세상을 관용하기 위한 차분한 산울림이다. 바이른은 향후 활동에서 단독 비행으로 나가떨어지는 일 없이 대형을 갖추고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The Greater Wings]는 처음으로 미국 차트에 들어선 작품이자 영국 독립 앨범 차트 6위까지 오른 바 있다.

1. The Greater Wings
2. Portrait Of A Clear Day
3. Moonless
4. Summer Glass
5. Summer’s End
6. Lightning Comes Up From The Ground
7. Flare
8. Conversation Is A Flowstate
9. Hope’s Return
10. Death Is The Dia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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