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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harmon Apr 03. 2024

여러 장르를 블렌딩한 쪽빛 그루브

[리뷰] 페이 웹스터의 [Underdressed at the...]

애틀랜타 출신의 페이 웹스터(Faye Webster)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심취해 있다. EP [Car Therapy Sessions](2022)에서는 전작 [Atlanta Millionaires Club](2019), [I Know I'm Funny haha](2021)에 수록된 세 곡을 어레인지하며 24인조 관현악단과 함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웹스터는 심포니 오케스트라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는 막판 몇 분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했던 적이 있다. 공연장에 꾀죄죄한 옷을 입고 들어갔다는 에피소드는 머지않아 앨범 타이틀인 [Underdressed at the Symphony]의 영감이 되었다. 그러나 5번째 정규 앨범은 장엄한 교향곡 묶음을 최소한의 접점으로 풀어내 영롱한 색감을 입힌 결과물이다. (동명의 트랙 1분 37초 참고)


"가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유머에 의지하는 분명하다"라고 말하듯이(<밴드캠프>), 웹스터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거나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을 원료로 삼는다. 월급을 받았으니 예쁜 쓰레기를 살 것이라며('Feeling Good Today') 보코더의 오토튠으로 가볍게 풀어내거나, 잠들기 전에 키스하고 싶은 레고 반지이자 무드 링을 중학교 동창인 릴 야티(Lil Yachty)와 갈구한다. ('Lego Ring') 전자의 기타나 후자의 베이스는 이런 엉뚱하고 유유자적한 면에 맞춤으로 제작된다. 삶에 독특한 물성과 경험을 불어넣기라도 하듯 야티의 피처링은 알앤비 스타일을 곁들인다. 무료하고 질박함을 달래기 위해 시간조차도(T-t-t-t-t-t-t-t-time) 길게 늘어뜨리는 걸 보니 생각보다 기발한 한국어 초성(ㅋㅋㅋ, ㅇㅅㅇ)을 떠올리게 한다.

Credit: Michael Tyrone Delaney

이별 후의 후유증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네 안에서 잠들고 싶지만..."에서 ".... 키스는 별로"라는 가사로 넘어가며 박차고 들어오는 피아노와 베이스는 의미심장하고('But Not Kiss'), 두 사람 사이의 공백을 글자 그대로 옮겨내어서 그런지 고독을 자장가처럼 부른다('Lifetime'). 웹스터가 다른 트랙에서 말한 대로 로맨스인 동시에 안티-로맨스 음악이기도 하다. 이전에 수록된 'Kingston', 'I Know You'와 무척이나 비슷한 분위기를 이끌고 가지만 동일 어구를 반복하거나 길이를 간소화시켰다. 웹스터의 퇴폐적이고 낮은 음조가 관계의 모호한 상태를 보존하고 있다.


확실히 중심을 장악하고 있는 건 카페에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멜랑꼴리한 무드이다. 자잘한 후일담은 뒤로 한 채 자잘하게 재즈나 알앤비, 얼터너티브 컨트리를 오가며 독특한 컨템퍼러리 포크를 내건다. 특히 윌코의 넬스 클라인이 참여한 'Wanna Quit All the Time'에서는 페달 스틸 기타는 휴양지에 온 걸 환영하며 몽환적이고 부드러운 하와이안 테이스트를 선보인다. 36분의 짧은 러닝타임조차 느슨하고 루즈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나른한 오후 서너 시를 닮은 음악이 우리를 유도한다. [Underdressed at the Symphony]가 옷감이나 원단을 고루 합성한 프리사이즈 의복이라면, 자신에게 맞게 재단하고 핏에 어울리게끔 입는 일이 리스너들에게 필요해 보인다.

1. Thinking About You
2. But Not Kiss
3. Wanna Quit All the Time
4. Lego Ring (ft. Lil Yachty)
5. Feeling Good Today
6. Lifetime
7. He Loves Me Yeah!
8. ebay Purchase History
9. Underdressed at the Symphony
10. Tttt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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