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차, 새로운 습관이 루틴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습관과 루틴은 어떻게 다를까? 습관과 루틴의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입되는 의지의 양일 것이다. 이를 닦는 행동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밥을 먹고 나면 거의 자동적으로 화장실로 가서 이를 닦는다. 이를 닦는데 의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막 양치질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이는 어떤가. 아이는 밥을 먹고 나서 이를 닦는 행동이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고 의지가 많이 들어가는 행동도 아니다. 선생님이나 엄마의 지시를 따라서 식사를 끝내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이를 닦으면 된다. 이게 루틴이다. 하루 세 번씩, 매일, 이 루틴대로 하면 ’이를 닦는 행동’은 습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어떤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루틴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만의 루틴을 설계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나의 뇌에 새로운 길이 생긴다. 그 길은 반복할수록 넓어지고 단단해진다. 처음에는 몇 사람만 다니던 샛길이 모두가 다니는 산책로가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니까 새로운 행동을 최대한 자주, 쉬지 말고, 반복하라! 그런데 얼마나 반복해야 새로운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질까?
‘성공의 법칙’의 저자이면서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인 맥스웰 몰츠는 새로운 습관을 몸에 배게 하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21일“을 주장했다. 1950년대에 맥스웰 몰츠는 환자들이 성형 후 달라진 자신의 외모에 적응하는데 최소 21일이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몰츠는 이번에는 자신이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을 재보았다. 역시 3주가 걸렸다.
그러나 ‘21일’은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21일은 새로운 행동이 대뇌피질(생각이 의심과 고정관념을 담당)과 대뇌번연계(불안과 두려움을 담당)를 거쳐서 뇌간(습관 담당)까지 가는 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을 의미할 뿐이다. 이 말은 새로운 습관이 몸에 완벽하게 배는 데 21일 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얼마나 더 오래 걸리는지는 알기 위해서 한 가지 실험을 더 살펴보자.
2010년 영국 런던 대학교 필리파 랠리 교수팀은 96명의 실험 참자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 행동들(예를 들어, 아침 식사 후 물 마시기나 점심 식사 때 과일 한 조각 먹기나 저녁 식사 전 15분 뛰기)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서 매일 반복하게 했다. 12주 동안 연구팀은 매일 실험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계획을 실천에 옮겼습니까?의무감과 의지로 했습니까?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했습니까?“ 이번에도 ”21일의 법칙“이 통했을까? 놀랍게도 참가자들은 18일에서 254일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어떤 사람은 3주 만에 새로운 습관에 완벽 적응했지만 어떤 사람은 8개월이 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66일이라는 숫자는 그 중간치인 셈이다.
사람의 행동 변화 기간은 18일~254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 식습관을 바꾸는 데는 최소 3년이 걸린다고 하니, 변화 기간을 최대 8개월에서 36개월로 잡아야 하나.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행동 변화 기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다. 습관의 강도와 복잡성, 각 사람이 갖고 있는 의지와 자기 통제력의 정도, 동기와 고통의 크기, 목표의 구체성, 각 사람이 처한 환경 등...이 모든 변수를 따지면 행동 변화 기간을 계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과학적, 논리적 근거가 있는 기준을 갖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일단 시도를 해야 나에게 맞는 기준을 찾을 수 있는데 ‘21일’이라는 숫자는 한 번 해 보고 싶은 동기,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21일’을 다 채우고 나면 행동 변화는 물론 뭔가를 시도하고 해낸 자신에 대한 뿌듯함과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보너스처럼 주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준을 갖고 행동 변화를 시도하면 나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66일 동안’이라는 기준을 갖고 ‘점심식사 후 바로 30분 걷기‘를 시도하기로 했다고 생각해 보자. 66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식후 걷기 30분‘이 힘들다. 나와 같이 걷기를 시작한 박팀장은 30일 만에 완벽 적응했는데 나는 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까? 전에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소외 받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나‘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어떤 행동에 중독되어 있는지,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습관을 나의 제2 천성으로 만들 수 있는지, 나를 관찰하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읽고 그것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나에 대한 이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나나 너나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잘 아면 타인의 생각과 감정도 잘 읽을 수 있게 된다.
기준을 갖고 계속 도전하면 나의 정체성이 점점 뚜렷해진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사람인가가 분명하면 기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다움을 회복할 때까지 나는 행동 변화를 포기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제임스 클리어는 말했다. “습관은 어떤 사람이 '되는' 일이다.”
2년 전, 글쓰기가 재밌고 좋아서 100일 이라는 기간을 설정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글쓰기‘ 계획을 세웠다. 100일이면 될 줄 알았는데, 1년이 넘어도, 2년이 다 되어 가도 글을 쓰는 게 너무 어렵다. ‘이것 말고도 할 일은 많은데 이제 그만 쓸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나는 나에게 물었다. ”넌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계속 하려고 하니?“
나는 계속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나만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드디어 답을 찾았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글을 써야 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글이 써지지 않아도 계속 쓰고 싶다. 고 이어령 선생님처럼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 이런 이유로, 나는 2년 째 글을 쓰고 있다. 힘들어도 매일 조금씩 이라도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글쓰는 사람인 나에게 ‘기간’은 이제 무의미하다.
어쩌면 글쓰기는 이미 나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에 써야 할 글을 쓰지 못해서 오늘은 안 쓰고 자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이 영 불편하고 힘들어서 저녁 산책을 포기하고 글을 쓰고 있다.
변화는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갈 때, 그 작은 걸음이 모여서 나를 바꾼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계속하면 된다. 최대한 자주 쉬지 않고 반복하라. 새로운 습관이 내 삶에 말뚝을 박을 때까지 정해진 기간은 없다. 반복해서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매일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야!” 라고 말해주라. 나의 뇌는 인지부조화를 못 견딘다. 결국에는 나의 뇌가 나의 정체성에 맞는 행동을 찾아 지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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