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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Jul 07. 2023

생각이 많은 사람

나는 유독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진 이 부분이 유독 도드라지게 느껴지게 되었다. 책이든 영화든 읽고 보면서 사유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 살면서 새로 알게 되었던 건 나 스스로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롯이 혼자 있어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집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그게 다시 회복되기까지 제법 오래 걸렸다. 그래서 난 그 흔한 내 방이라고 부를 공간이 없었다. 늘 가족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했다. 그렇게 내 사춘기는 알게 모르게 어떠한 예민함을 부릴 사이도 없이 지나갔다. 내 방을 꾸미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본 적도 없었고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기에 내 젊은 20대의 시절은 참으로 퍽퍽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지내던 본가로 이사하던 날 난 처음으로 내 방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나는 늘 언제고 이곳을 떠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어떠한 가구도 사지 않았고 꾸미지 않았다. 옷과 이불을 넣는 장, 밥상으로 쓰던 작은 상 하나 그리고 오래된 책장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유일하게 사모은 건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앨범과 좋아하는 영화 DVD 그리고 책들이었다. 물론 그 마저도 마지막에 대부분 처분을 했고 남기고 온 아끼던 것들은 어느새 다 버려졌다.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랫동안 나는 부유하는 사람이었다.

해외에 나와 살면서 모든 일들을 혼자 해야 하고 타인과 살아가는 삶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같이 살던 룸메이트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처음으로 누군가 떠나가 남겨진 허전함을 느꼈다. 재잘재잘 이야기 하던 사람이 없는 방은 조용했고 곧 다른 사람이 들어올터였다. 침구를 모두 벗겨내 세탁을 하고 집을 청소했었다. 부산하게 움직이면 조금은 괜찮았다. 한국에서 살면서는 언제고 사람들은 늘 곁에 있었는데 이젠 떠나가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이 쓸쓸해지는 건 어떨 수 없는 도리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도 이런 마음을 느끼는구나.

새로운 정착을 위해 떠나왔지만 여전히 난 언제고 떠나려면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왔으니 난 어느 곳이든 찾아야만 했다. 코로나로 락다운이 시작되던 즈음에 처음으로 모든 게 막막해졌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모두 잃었고 임시 비자 거주자인 유학생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큰집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짐을 쌌고 순식간에 집을 떠났다. 그들은 모두 되돌아갔다.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어떠한 방법이 없었다. 아침마다 내일을 그다음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저 막막했다.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는 우울함에 하루하루가 흘렀다. 당장의 생계가 막막했다. 한국에서 빌린 돈의 이자를 갚아야 했고 다음 학비도 모아야 했다. 방세를 내야 했다. 도무지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친한 동생이 글을 써보라고 했다. 사람들이 내가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테니 그걸 써보라고 했다. 소정의 구독료를 받고 메일링을 시작해 보라며 조금은 희망찬 이야기를 해왔다. 당장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간단하게 글의 표지를 지인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나는 할 일 없는 매일을 걷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그러니 좀 살 거 같았다. 재잘재잘 글로 떠들었다. 머릿속에 떠다니던 말들을 쓰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고 머릿속에 박혀있던 생각들이 흐려졌다. 끊임없이 머릿속을 헤집던 많은 말들이 사라져야 다른 말들이 들어올 수 있었고 그럼 난 또 글을 썼다. 종종 먼지 같은 생각들이 가득 쌓이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곤 한다. 그래서 그 생각들에 매몰되어 나는 또 나를 탓하거나 타인을 탓한다. 나는 이 어지러운 마음들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했던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나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 생각들이 많아지면 눌리고 눌리다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헤어 나올 기운조차 상실해 며칠을 갇혀있기도 한다. 얼마 전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열어보았다. 새삼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참 웃긴 게 그게 어떤 마음 이었던지간에 글로 남은 마음들은 다시 기억나게 만든다. 쓰지 않았다면 그저 다 어디론가 사라져 그 시절의 마음들은 결코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종종 나를 들여다보면서 자주 실망한다.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회피하고 살았던 내 모습이었거나 가만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밀린 숙제를 해나가는 기분이다.

전에 김승일 시인이 쓴 글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글을 어쨌든 쓰는 사람에게 있어 그저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기록에 불과한 것이다.

나에게도 글은 어떠한 시간에 내가 남긴 결국은 내가 믿는 것에 대해 쓴 글일 것이다. 결국 그 상태의 나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종종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다. 예전의 나는 좋은 상태의 나를 기록하고만 싶었다. 그런데 그 좋은 상태라 부르는 날 보다 반대의 날이 더 많았었다. 그래서 난 나의 상태를 기록하지 않았었다. 이를 악물고서라도 남겨야 했다. 불현듯 나는 너무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남기지 않은 기억은 그때의 어쩌면 좋았을지도 몰랐을 기억들도 조금씩 가져간다. 그래서 난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울면서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화를 내고 울어도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위로해 줄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내가 남긴 마음을 내가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조금은 생긴 거 같다.

오늘은 해가 눈부시다.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도 햇살도 가득하다. 사람이 다 떠난 집 거실 오래된 푹 꺼진 소파에 앉아 글을 쓰던 그날도 그랬다. 가만히 앉아 그리운 것들을 떠올렸었다. 다른 시절의 겨울을 그리워하던 그때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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