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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Jan 07. 2024

묘지를 거닐다

며칠 전 친구의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병원에서 판정을 받고 친구는 별이가 떠났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과 시차가 13시간이 난다는 것. 우리가 반대의 시간에 있다는 것은 늦지 않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친구집에 못 갔던 게 내내 아쉬웠던 것이 생각났다. 10년을 훌쩍 넘긴 고양이 두 마리를 위해서 친구는 열심히 일을 한다. 더 해가 잘 들고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그 마음을 보고 안고서 떠난 친구의 고양이를 생각했다. 낯선 내 무릎에도 잘 올라와주고 다리 사이를 부비적거리면서 오가던 친절한 고양이였다. 두 마리의 고양이 중 둘째였던 별이는 이름 그대로 별이 되었을 것이다. 새해에도 지인들의 털동물 친구들과 한국 본가에 있는 우리 집 강아지 모두가 건강하기를 기도했다. 종종 지인들의 반려동물들이 아프거나 먼저 떠날 때가 생겼다. 소중한 것이 떠나는 것 죽음에 이르는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불현듯 자주 찾아오는 슬픈 소식이 되었다. 내 오랜 친구들이 건너온 지난한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친구들이 먼저 떠나지 않아 우리는 만날 수 있었을 테고 지금도 내 소중한 친구로 살아남아주어 고마웠다. 어릴 때 누군가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어른들을 보면 참으로 생경한 어떠한 기분이 들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으로 장례식장에 갔었다. 상복을 입은 친구에게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와닿지 않았던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어릴 때 키우던 다람쥐가 죽었었다. 왜인지 어른들은 다람쥐가 들어있던 케이지를 추운 겨울 베란다에 두었고 다람쥐는 말 그대로 얼어서 죽었다. 어린 나는 죽은 다람쥐를 보고 방에 틀어박혀 내내 울었다. 온기가 있던 살아있던 존재가 한순간에 숨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죽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슬픔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 두 번의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식 이후 나는 다른 장례식을 다녀온 적이 없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부모님만 가셨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난 수학여행을 갔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작년에 난 한국에 있지 않았다. 나는 다른 가족들의 슬픔을 볼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어릴 적 내가 본 장례식장의 어른들처럼 다들 덤덤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나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는 스스로에게 금기시되는 조금은 무서운 단어였다. 하지만 그 일들이 조금씩 주변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흐르면 스르륵 사라졌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묘비들이 있던 곳이 있다. 각각 다른 묘비들 사이에 길이 하나 있다. 그 길을 가로질러 지나갈 수 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아주 큰 나무도 있다. 종종 아이들이 묘비 앞에 모여 있기도 했고 누군가가 해둔 낙서를 지우는 것도 보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공원처럼 있는 오래된 묘지를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오간다.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근처를 걷다 이곳을 보았다. 가로질러 있는 길로 가면 반대편으로 바로 갈 수 있었다. 건물들 사이에 있는 묘지가 생소했지만 걸어보고 싶어 그 길로 가로질러 걸어보았다. 제각각의 모양과 크기의 묘비를 보면서 걸었다. 묘지를 걷는 일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이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오래된 묘지라면 이곳에 잠든 사람들의 가까운 사람들도 이미 다 떠났을 아주 먼 시간이다. 이미 지구에는 너무나 많은 인간이 있다는데 우리는 모두 근사한 묘비명을 새길 묘비를 가질 수는 있을까. 참으로 쓸데없는 생각이다. 잊히는 죽음들이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사람들에게는 각자가 느끼는 거대한 나이가 있다. 나에게 스물다섯 그러니까 20대 중반을 넘길 때 성인의 나이로써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게 그리고 정말로 시간이 빠르다는 걸 실감했었다. 하지만 나의 20대는 너무나 지독했던 시간들이 쌓여 시간이 빠르다 생각하면서도 참으로 힘들어 허덕였다. 별자리를 보러 갔을 때 나에게 스물아홉까지만 참아보라며 그럼 조금씩 숨 쉴 수 구멍이 생길 거라던 점괘가 있었다. 20대 후반을 건너오면서 나는 자주 그 점괘를 생각했다. 정말로 스물아홉을 넘기자 아주 조금씩 나아졌다. 30대 초반에 한국을 떠나겠다 결심하고 이젠 후반의 끝자락이 되었다. 종종 나이 듦을 생각해 본다. 가장 오래된 친구 둘은 곧 20년 지기가 된다. 우리 집 강아지는 열 살이 넘었다. 친구의 고양이도 열 살을 훌쩍 넘었다. 인간의 시간이 이리도 빠른데 동물의 시간은 왜 더 빠른 걸까. 한국을 나와 살면서 나는 숫자로 새겨지는 나이에 대한 감각이 많이 무뎌졌다. 이젠 오히려 나보다 주변의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친구의 아이들은 훌쩍 자라 버리기도 하고 근속 기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싶기도 하다. 부모님과 우리 집 강아지의 시간이 너무 빠른 거 같아 가끔 슬프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서글픔보다는 주변의 시간이 더 빨리 돌아가 그제야 정신을 차려본다. 그럼 새겨진 숫자가 한 번씩 보인다. 이젠 잘 나이가 들어야지 하는 그런 걸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싶다. 더 나이가 들면 주변에 찾아오는 죽음들이 더 늘어날 텐데 나는 어떻게 나이가 들어야 그 시간을 온전히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라지는 존재들을 애도할 수 있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 아그네스 바르다 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 사진작가 JR은 그의 생일에 풍선을 가득 매달고 하늘로 떠오르는 아그네스 바르다를 만들어 영상을 올렸다. 가까운 죽음이 슬프지만은 않았으면 저렇게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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