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록 Jun 12. 2022

상수도관 터짐과 봉지 대탈출

“여보! 물 터졌어!!!”



“촤아아아아!!!”

싱크대 아래쪽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늦은 저녁이었고 샤워하고 나온 아이들의 머리를 말려주려고 드라이어를 들고 거실 소파에 막 앉은 참이었다.     


“여보! 물 터졌어!!!”

욕실에 있는 남편에게 큰 소리로 알린 후 싱크대 쪽을 다시 보니 싱크대 아래 찬장 문 사이로 물이 콸콸콸 새오나오고 있었다. 바로 옆에 전기선이 여러 개 꽂힌 콘센트가 있어 아찔했다.  

   

샤워하다 말고 뛰어나온 남편은 싱크대 찬장을 열고 무릎을 꿇은 다음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재빨리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들 중에 80프로는 내가 약 2년 동안 성실하게 쑤셔 박아놓은 비닐들이었다.      


건장한 두 팔을 앞뒤로 휘두르며 작게 구겨져 들어가 있는 그 많은 비닐들을 순식간에 파헤쳐냈는데 몇 년, 몇 달, 며칠 만에 자신의 원래 몸집을 되찾은 비닐들은 보란 듯이 기지개를 켜며 엄청나게 불은 상태로 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아... 아아악......'

나는 바로 옆에서 그 상황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들은 신나서 꺄아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웃고 있었다.     


사고의 원인은 철로 된 상수도관이 찢어지듯이 터져버린 건데 틈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물살이 얼마나 센지 그 소리와 모습과 불어나는 물의 양에 순식간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거기에 형형색색의 봉지까지 펑펑 쏟아져 나와 비현실적인 현실이 만들어졌다.      


“향이 언니한테 전화하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옆에 사는 집주인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 여기 싱크대 아래 물 터졌어요. 장난 아니에요! 언니! 언니! 여기 빨리 좀 와주세요!”


전화를 끊고 얼마 안 있어 물이 멈췄다. 남편이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가 온수 벨브를 잠근 것이었다.      

“휴우... 멈췄다...아우...”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온 주인집 언니와 형부는 어쩌면 좋으냐며 걱정을 했고 형부는 팔을 걷어붙이고 걸레질을 도왔다. 아이들도 작은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걸레질을 했다. 거실 면적의 3분의 1정도가 물에 잠긴 사고 현장은 열 네 장의 수건이 수 십 번 적셔지고 비틀어서 짜지는 과정을 통해 수습되었다.      


주인집 언니와 형부가 돌아가자 아이들은 오늘의 대혼란을 자기들 일기장에 새겨 넣느라 바빴고 나는 수습 과정의 잔해를 치우느라 분주했다. 그 때 남편이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한 마디 했다.     


“당신 솔직히 말해. 여기 물청소 하고 싶어서 일부러 선 자른 거지? 살며~시 살며~시 칼로 썰었지? 다음엔 그냥 얘기해. 걸레질 한 번 하라고. 그럼 내가 할게. 이렇게까지 안 해도 내가 하는데 왜~”     


이 상황에도 농담을 하는 남편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실컷 웃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바닥이 정말 깨끗해졌다. 구석구석 물이 침범해 들어간 곳들을 여러 번 닦아내고 나니 바닥에 윤기가 나고 뽀얘졌다.


제대로 한 번 닦고 싶었던 곳들인데 이렇게 확실히 작업이 되니 속이 시원했다. 솔직히 찬장 안에 그 비닐들도 한 번 다 끄집어내어서 정리하고 싶었는데 며칠 전에 문을 열었다가 엄두가 안 나서 다시 닫은 거였다.   

   

“그래, 결국 이렇게 깨끗해졌어. 좋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그 터져 나온 비닐들의 몰골을 주인집 부부에게 내보인 건데 그냥 빨리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들도 금방 까먹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비닐을 찬장 아래에 쑤셔 넣지 않는다. 잘 접어서 큰 봉지 안에 차곡차곡 넣고 상수도관이 또 터질 것을 대비해 정리 위치도 싱크대 아래의 오른쪽 찬장으로 옮겼다. 봉지 정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배운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기대되는 형제 치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