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선생님이 내 비밀 다 알아"
정신과 1년 차 2개월째, 병동에 입원하신 분을 검사하러 가는 날이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분인 것을 확인하고, 심리검사 도구를 싸들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오면서 긴장감이 밀려왔다. 대학원에서 조현병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내겐 여전히 편견이 가득했다. ‘무섭지 않을까?’,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면 어떡하지?’, ‘날 때리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이 먼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병동 면담실에서 앉아 걱정하며, 긴장한 채 환자분을 기다렸다.
환자분이 들어왔고,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머리를 감고 오느라고 늦었어요.” 웃으며 인사를 건네셨다. 기다리는 동안 염려했던 ‘공격’은 커녕,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셨고 덕분에 긴장감은 서서히 풀렸다. 그렇게 3시간 넘게 여러 가지 검사들을 진행하였고 환자분도 협조적인 태도로 임해주셨다. 그리고 면담을 진행했다. 그동안 살아오신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던 환자분의 삶은 차디찬 독립영화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다. 솔직히 듣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시간을 갖고 듣자’는 마음뿐이었다. 면담까지 마무리하고 병동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검사 전에 나의 편견이 준 걱정과 두려웠던 마음이 부끄러워졌고, 환자분이 들려준 이야기의 잔상은 마음에 먹먹하게 퍼졌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다른 일로 병동에 올라갔을 때 그 환자분과 마주쳤고,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며 크게 반겨주셨다. 나도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을 때, 뒤에서 환자분은 옆에 있던 사람에게 “저 선생님이 내 속 이야기 다 들었어. 내 비밀 다 알아”라며 마치 나와 가깝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자의적인 해석이지만, 그분 삶에 큰 도움은 아니더라도 검사 시간 동안 잠깐이나마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뭉클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했던 검사시간과 대화가 떠올랐고, 요약해준 삶이 또다시 지나갔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느꼈던 뿌듯함이고 먹먹함이었다. 잘 지내고 계실까. 요즘도 종종 생각난다. 오랫동안 힘들게 버텨온 불편한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한 마음이 자리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