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선택적 함구증 증상을 보이는 한 아이가 왔다.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아이였다. 검사를 준비하면서 아이에 대해 자료를 살펴보았고, ‘검사를 진행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매일가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내가 뭐라고, 내 앞에서 말을 하겠는가? 3시간이 족히 넘는 검사 시간 동안 계속 말을 해야할 텐데. 막막했다.
기다리던 아이가 왔고 열어둔 문 안으로 들어와 쭈뼛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있는 힘을 모두 끌어올려 내가 할 수 있는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을 아래로 떨군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나이를 물어봐도 전혀 말하지 않았다. 눈맞춤을 요구하자, 아주 짧게만 쳐다봐주고 시선은 다시 아래로 향했다. 나와 있는 공간이 아이에게는 매우 낯설게 느껴질 것이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기다릴테니, 편해지면 말해달라’고 한 뒤 가만히 기다렸고, 그렇게 10분이 지나갔다.
아이는 거의 미동조차하지 않았고, 보호자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보호자에게 부탁을 드렸고, 부득이하게 보호자를 동반한 채 검사가 진행되었다. 나의 질문을 보호자가 대신 해주자, 겨우 조금씩 말해주었고 그렇게 검사를 진행하고 마무리를 하였다.
검사동안 침묵하는 아이가 답답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어서 말해줬으면 좋겠고,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한편으로 엄마를 통해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아이는 왜 침묵할 수 밖에 없었을까? 당사자가 직접 말해주기 전까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저 내 삶을 통해 추측만 해볼 뿐이다.
개인적으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맥락에서 나타내는 침묵을 제외하고, 갈등이 있는 상황에 드러나는 침묵은 약자가 강자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책이 된다. 이대로 빨리 지나가길, 나에게 오는 피해가 여기까지이길,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을테니 그만 넘어 가길 바라며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위해 소리없이 분투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내 입장을 말하여도, 문제가 해결되거나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하는 사람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깊은 좌절과 무력함을 먼저 헤아려야 하며, 차분히 기다려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리고 말을 해도 충분히 안전하고 괜찮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지금과는 다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