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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메이트 Mar 29. 2021

정신과 심리학자 이야기_3

"내가 이것도 못하다니"


   열린 평가실 문을 넘으며, 반갑게 인사해주시는 한 노인 환자분을 만났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평가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한 뒤 검사를 시작했다. 검사를 하며 과제가 조금씩 어려워지자, 환한 미소는 조금씩 경직되었고 목소리도 떨렸다. 반복해서 틀리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과제 앞에서는 “내가 이것도 못하다니”라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환자분은 자신이 받는 검사가 치매 검사인 것을 알고 있었고, 본인이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닌지 크게 걱정하셨다. "oo님 많이 긴장되고 떨리시죠. 충분히 어려워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 어려워하십니다. 긴장 푸시고, 차분한 마음으로 해보세요” 라며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환자분의 굳은 마음을 풀어드리려 노력했다. 


   심리검사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 치매는 더욱 그럴 것이다. 본인이 하는 검사가 치매검사임을 알고 오시는 분들은 자신이 검사를 수월하게 하지 못할 경우, 치매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더욱 긴장하고 두려워하신다. 그리고 환자분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때가 있다. 검사를 마치기도 전에 불안한 마음의 짐만 더 무겁게 지고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정신과에 오셨을 텐데 아이러니한 면이다. 나 또한 다른 과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혹시 무슨 병이 있지 않을까’,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겁이 날 때가 있다. 그래서 검사 전날 괜히 잠도 더 자고, 몸에 안 좋은 음식을 피하게 된다. 


   이렇게 병원은 편하고 기분 좋은 것을 느끼기 위해 가기보다, 불안하고 두려운 것을 검증하기 위해 갈 때가 많다. 정신과는 이 과정에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과적 질병을 확인하는 과정이 충격으로 다가와 질병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내가 이것도 못하다니”라며 자책을 하게 되는 계기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심리적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되, “이것도 할 수 있구나”, “앞으로 이것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대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어쩌면 환자분이 정신과에 방문하여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들은 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끝이 아니라 시작과 또 다른 방향을 보게 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심리학자들이 환자의 증상을 판단하고 최종 진단 내리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고, 쉼표를 쓰고 새로운 대안에 대해서도 부단히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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