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 돌보기

by 구천개의 생각


한 해의 목표를 세울 때는 보통 실재하는 목표를 세운다. 운동하기, 독서하기, 돈 모으기, 여행 가기··· 하지만 최근 들어 꽤 많은 사람들의 목표에 포함되는 것이 있다. 바로 '행복하기'이다.


자고로 목표란 시간이 지나고 내가 다 이루었는지 확인해보기 마련인데, '행복'이란 추상적 감정의 성공 여부는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다. 직접 찾아보니 누군가는 혼자 기억을 더듬어보며 막연히 행복했는지 평가해보고, 누군가는 행복한 일을 떠올렸을 때 10가지 이상의 일이 떠오르는지 세어보는 방식으로 평가하는 듯했다.


그렇게 찾아보고 나니 대략적인 윤곽이 보였지만, 나는 그것을 내 새해 목표에 직접 포함하진 못했다. 여전히 막연하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저 나와는 맞지 않는 목표라 생각하며 여느 때와 같이 연초를 보내던 중이었다.


그러다 2월의 어느 날, 뜻밖의 깨달음으로 비슷한 결의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늘 좋은 기분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기분 좋은 하루하루가 행복한 평생을 만든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이야기였지만, 나에겐 참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어린아이들에게 '어른들도 엄마, 아빠가 있다'는 게 새삼 놀라운 사실인 것처럼, 나에게도 좋은 기분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만든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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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을 누가 성인으로 정했을까. 스무 살이 되고도 여러 해 지난 지금, 사회는 날 어른이라고 부르지만 난 여전히 나 하나를 알지 못하고, 나 하나를 온전히 건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깨달음을 초석으로, 좋은 기분 유지하기, 즉 '내 기분 맞춰주기'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위해 가장 먼저 다짐한 것은 '나 자신을 아기처럼 대해주자'는 것이었다. 아기를 돌보는 보호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그들은 아기를 늘 관심 있게 바라보고, 아기의 상태를 기민하게 받아들인다. 아기가 어떤 음식을 잘 먹고 어떤 음식을 피하는지, 어떤 때에 투정을 부리고 어떤 때에 웃는지··· 그리고 그 반응에 따라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그게 보호자가 하는 일이다.


어떠한 문제도 그것이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내 상태를 늘 관심 있게 바라보고, 변화가 있을 때 기민하게 알아채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또한 나 자신과 자주 대화하기로 다짐했다. 사실 이건 나의 오랜 습관 중 하나였는데, 나는 예전부터 마치 타인을 대하듯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대화, 그러니까 말을 주고받아왔다.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의 단편적인 행동을 보았을 때, 낯선 것을 처음 보아 드는 거부감으로 인해 "왜 저래?"라는 아주 원초적인 생각이 들면, 머리 한 켠에서 또 다른 '나'가 튀어나와 "네가 뭔데 저 사람을 판단해? 앞뒤 상황도 모르면서."라며 질책하는 식이다.


이렇게 내 머리는 매 순간 아주 원초적인 첫 번째 생각과 그걸 사회화, 문화화 시키는 두 번째, 세 번째 생각들의 격렬한 토론으로 아주 바쁘게 움직여 왔다.


어떤 이에겐 약간 미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과정은 내 자신의 의견과 신념, 그리고 관념을 확립하고, 나의 주관을 또렷이 하는 데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스스로의 시시비비를 이겨낸 마지막 결론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확신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도 수없이 많았다. 문제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이것에 대한 해결 방법으론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인데, 그 논제가 '나'이기 때문에 수많은 '나'와 의견을 나눠보는 것이다.


이 습관은 한 번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라 지친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얻는 장점이 더 많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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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돌봐줘야 할 아기라면, 돌봐주는 나는 또 누구일까?


나는 이제 '나'를 키울 베이비시터가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새로 고용된 베이비시터로서 같은 아기를 돌보던 전임 베이비시터에게 인수인계받을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이 있을까?


전임 베이비시터는 '지금까지의 나'를 의미한다.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알려고 하진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의 성격, 나의 취향, 나의 관심사를 알고 있었던 사람, 또 그 정보를 현재의 나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나'의 전임 베이비시터가 정리해서 준 기본 정보는 이랬다.


① 이 아이는 '해놓으면 좋은 일', '하다 보면 좋아질 일'이라는 막연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을 싫어해요.

② 이 아이는 재미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은 과감하게 치워낼 줄 알고, 하고 싶은 일은 빠르게 시작해요.

③ 이 아이는 정말 필수적이거나 꼭 해야만 하는 마지노선에 다다랐을 때 일을 시작해요.



이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렇다.


① '나'는 미래보다 현재를 산다.

② '나'는 재미와 흥미 위주로 선택하며, 좋아하는 일에는 행동력과 추진력이 있다.

③ '나'는 해야 할 일을 끝까지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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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에게 구체적으로 잘해줄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언뜻 충분한 정보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랜 시간에 걸쳐 대충 뭉뚱그려진, 축약된 정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개월 간 골머리를 싸매며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모든 방법들이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딱히 자랑할 만한 결과도 없고, 일정 부분은 얼레벌레 식이기도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나름 '시스템'이라고 부를 만한 방법을 찾았으므로 '나'같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나누고, 미래의 나에게 기억을 나누고자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