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한 미움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들 말하지만 그 땅이 굳기 위해서는 의외로 시간이 걸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가 온 직후의 땅은 정말 질퍽질퍽한 진흙탕이어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엄청난 폭우가 내린 후 다음날 출근길에서 몇 번이나 물렁거리는 땅을 밟고 꼬리뼈와 땅이 반갑게 인사를 할 뻔했다. 덕분에 잔뜩 겁을 먹고 우스꽝스러운 펭귄걸음으로 출근을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그런지 땅이 마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더더욱 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액체의 시간에서 고체의 시간으로 변하는 동안만큼이나 우리의 모든 마음은 적당한 거리를 항상 셈해야만 한다.
때로는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지저분한 마음을, 때로는 굳어버린 흙더미 덕에 단단함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피하고 싶어질 정도로 불쾌했다가, 누구보다 끈끈함을 느끼는 마음으로 외줄타기 하듯이 움직인다. 아슬아슬 한 외줄타기 속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할지라도 사실 어쩔 수 없긴 하다. 변화는 숙명과 같아서 우리는 변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을 꿈꾸더라도 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변하지 않는 건 어쩌면 시각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보고 싶은 대로 상대를 끼워 맞추고 재해석 하는 능력만 발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하니까.
그러나 마음이 이렇게 가변적인데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마음은 어찌나 한번 먹은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는지. 타인에게 미움을 갖게 되어도 호감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질문한다면 어떨까. 대체로 아닐 거라고 대답하겠지. 하지만 사실 사람 좋아 보이기 위해 ‘대체로’를 붙였지만(수용적인 사람이고 싶으니까) 꽉 막히도록 솔직한 대답을 하자면 절대로 아니다. 한번 미워하기 시작하면 쭉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모난 부분은 절대로 둥글게 보일 수 없는 것이다. 네모는 네모. 앞으로도 서술 하겠지만 내가 쭉 미워해온 한 사람이 나에게는 존재한다. 이런걸 보면 외골수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용하다는 곳에서 재미로 사주팔자를 본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외골수 기질이 있다고 했는데 그날 외골수부터 시작해서 형제관계 등 뭐 하나 맞는 게 없어서 돈만 버렸다 생각하면서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니 외골수 하나는 맞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고집이 있으면서도 고집스럽다는 말은 외면하고 싶던 게 아닐까. 한 사람을 오래 미워하는 것도 고집이고 아집이다. 미움의 발화가 타당할지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미움을 제대로 바라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미워하는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게 되는 그 느낌을. 오랜 시간 미움에 매몰되다 보면 도저히 미움이 미움 같지 않다. 어떠한 형체처럼 몸집을 부풀려 다가온다. 그것은 감정이라기보다는 덩어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의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컨트롤 할 수 없는, 컨트롤하기보다는 오히려 잡아먹힐까 겁이 나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너무 오래된 미움은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다르게 읽히곤 한다.
그리하여 가지런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정신과 약물처방 같은 도움. 미움이 너무 커져서 날 집어 삼켜 끝끝내 공황상태로 이끌 때, 회사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과호흡에 지쳐 정신을 놓으려 할 때 절실하게 약이 필요했다. 약 만이 나를 구원해주리라 믿었다. 이 지긋지긋한 두려움 따위는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상대를 미워하고 싶었다. 나는 가해자를 당당하게 미워하고 싶은데 이상하리만큼 가해자를 생각하면 내 삶이 송두리째 발발 떨렸다. 이상하리만큼 미움을 생각하는 게 두려웠다. 미움을 미움으로 바라보고 있지 못했다.
가지런한 것들을 좋아했다. 뭐든지 정렬하길 좋아했고 하필이면 수집벽이 있었던 그는 더욱더 가지런한 것들을 사랑했다. 각 나라의 화폐도, 알록달록 라이터도, 네모반듯한 엽서도, 이름 모를 술들도, 키가 작은 미니 화분들도 모두 그의 배열이었다. 이탈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가지런하게. 모든 것들이 가지런해서 나는 자꾸만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벗어나서 멀리 도망쳐온 탓일까. 이제는 가지런해지고 싶어도 자꾸만 모든 걸 알 수 없어 울고만 싶어진다.
앞으로 서술할 이야기는 미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움 받을 만한 사람을 당당하게 미워하고 올바르게 미워하는 것. 상처를 준 사람은 정신과에 오지 않고 상처를 받은 사람만 늘 정신과에 간다는 어떤 말을 빌려오고 싶다. 이 글은 정신과에 오지 않은 그 사람을 미움에 초대하는 일이다. 온통 검은 하늘에서 혼자서 주구장창 비를 맞는 것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에 있는 그를 여기로 데려와 얼마나 지옥이었는지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움을 미움답게 산뜻하게 미워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음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법 : 한 발자국 떨어져서 마음을 객관적으로 서술해보세요. 그리고 거기까지만 생각하세요. 꼬리의 꼬리를 무는 것은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