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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Jul 13. 2023

넝쿨

넝쿨째 굴러온 한마디

여름이 시작됐다. 가장 지치는 계절 여름. 이유없이 피곤하거나 이유없이 가슴이 답답하다. 머리가 휘날릴정도로 시원하게 런닝을 할 수도 없다. 너무 더운 날씨는 너무 쉽게 나를 무력화 시킨다. 핑계를 댄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여름이 오면 나는 가장 불행해진다. 불행하다 불행하다 주문을 외우면 정말로 불행해 질까봐 겁이나는 계절. 여름은 내 끔찍한 그림자 같다. 나의 음의부분, 빛을 잃어 앙상한 부분, 가장 숨기고 싶은 어둠. 그러나 숨길수도 없게 졸졸 따라다니는 그런것 말이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나는 두 배의 에너지를 쏟는다. 빛을 잃지 않은 척, 어둠이 찾아오지 않은 척 그렇게 기쁜척을 해댄다. 억지로 한바탕 웃고 돌아서는 날이면 조금이라도 웃음이 비집고 나와야하는데 미련하게도 불안이 침입한다. 그렇다 나는 애를 쓰고 있다.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


오랜만에 만나는 대학 동기였다. 이젠 친구도 나도 서로 각자의 일에 치이다보니 학생 때 만큼 자주 못만나는데, 마음은 늘 그때와 같은 그런 친구. 금쪽같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길 내내 불안감에 휩싸였다. 요새 나는 다시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심리적 장애는 왔다가도 떠나가고, 떠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온다. 내 마음이 바다라면 그들은 파도와 같다. 큰 해일로 나를 덮칠때도 있고, 잔잔한 물결로 반겨줄 때도 있다. 파도가 언제 주기를 갖고 우리를 왔다가 떠난적 있는가. 나의 마음 역시 주기성을 잃은 채 파도가 되어 넘실거린다.


친구와 함께 종로를 걷는데, 그 좋아하는 종로를 걷는데도 기쁘지가 않았다. 기뻤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기쁨이 불안감이라는 파도에 밀려 백사장에 쓴 글씨처럼 밀려가버렸다. 그래서 기쁜지도 즐거운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바보가 되어 하루종일 친구를 맞이했다. 그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 한 걸 친구는 모를것이다. 바보처럼 보이면 안돼. 불안한 티를 내서도 안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걸 숨겨. 속으로 몇번이나 외치고 혼자 화장실에 들어갈때마다 한숨을 뱉었다. 한숨과 함께 이러다 공황이 오면 어쩌지? 불안감은 배가가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늘 내가 상상한 최악은 오지 않는다. 오늘의 밤이 끝일것만 같아도 내일의 아침해를 맞으며 눈을 뜨듯이. 심장이 이러다 터지는거 아닐까 생각했지만 터지지도 않았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거나, 최악으로 과호흡이 오지도 않았다. 평탄하디 평탄한 서울의 저녁이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걸 바라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쩌면 나는 마음이 자주 걸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체기가 더부룩 한 사람 처럼 마음이 늘 마음대로 안되서 걸려버린다. 걱정도 걸리고, 미래도 걸리고, 생각도 걸리다 보니 결국 급체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나의 모습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며 친구와 아무렇지 않은 척 광화문 광장을 걷는다.


그래도 계속해서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그니까 사라지지 말자구. 혼자만 가지고 있는 추억은 너무 슬프잖아. 우리가 우리 일 때 추억이 비로소 추억 다울 수 있는건데, 혼자 있으면 추억이 아무 쓸모가 없어지잖아. 그러니까, 우리 오래오래 살자구.

알 수 없는 말들은 여름처럼 나를 무력화 시킨다. 바로 이런말들이다. 친구의 말은 마치 네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는 말로 들렸다. 세상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어쩌면 잘 살고 싶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그랬고. 그래서인지 친구의 말에 다시 한번 심장이 넘실거렸다. 불안이 아닌 무언가 벅참으로.


때로는 알 수 없는 말들이 누군가를 붙잡는다. 해변위에 널브러진 튜브처럼. 평소에는 아무 힘이 없어보여도 바다 위로 던지면 그 힘을 발휘하겠지. 친구는 알까 그날 하루 나를 살린 말을 했다는 것을.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 하루에 지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나를 아주 가볍게도 구해준 것을. 오늘의 고마움을 추억으로 두고두고 기억할 때까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내가 했다는 걸. 친구에게 먼 훗날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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