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 도착했더니 모리를 맡은 얀만 객석에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보통 시작 10분 전에는 거의 모든 단원들이 객석 또는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오늘은 얀만 있었다. 얀은 아침으로 반미를 먹고 있었고 날 보고는 인사했다.어제저녁 공연을 본터라 늦게까지 일하고 다시 일찍 나오느라 힘들었겠거니,그런데도 일찍 나와 있구나 생각했다.
얀에게 어제 공연 좋았다고, 참 잘했다고 칭찬했다.
얀은 내게 다른 배우들은 아래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알고 봤더니 배우들이 따로 자체 콜 시간을 정해 아침부터 연습을 진행한 것이다. 정시가 되기 전 배우들이 공연장에 올라왔고통역 단미를 통해 10분에 시작하겠다고 공지했다.
아직 책상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PD가 내게 책상이 필요하냐 물었고나는 여러 사람 번거롭게 하기 싫어 괜찮다고 했다.그랬더니 단미가 내게, "감독님, 그러지 마세요. 필요한 거 알아요.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정확히 요구하세요."라고 말했다.주변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날 돕는 사람들이 많다. 때로 갈구면서.
9시 10분이 되어 배우들이 모두 무대 위에 섰고,
난 배우들에게 몇 시에 모여 연습했냐고 물었다.
배우들은 아침 7시 반에 모였다고 했다.
토요일 아침부터 일찍 나와 연습해 고맙다고 했다.
배우들은 내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했다.
웜업 없이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우선 음악과 함께 출정을 시작했다.순서들은 알고 있는데, 아직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고노래 부분도 솔로파트, 합창파트 등의 원활한 큐가 연결되지 않았다.
안무가는 다시 배우들을 음악 없이 카운트로 합을 맞추며 동작과 큐를 정돈했다. 하기 전, 나는 주역 5명에게 노래 큐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이분들의 연습 방법은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인데반복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알고 하는 것.무작정 반복이 아니라 한 번을 하더라도 정확한 큐와 위치, 동작을 맞추는 것에 집중하는 것.안무가는 그것을 강조하며 새벽부터 나와 연습했던 배우들을 아침부터 힘껏 몰아갔다.
'출정 '연습을 반복하고, '캐츠파라다이스' 연습을 진행했다.마찬가지로 반복 연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 연습마다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그 목표에 따라 이번에는 노래 없이 춤을, 이번에는 노래를, 이번에는 노래와 춤을등 분명한 목표에 따라 연습을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그렇게 연습을 반복 후 배우들에게도 이후 자체 연습 때 그렇게 진행하라고 권유했다. 마지막 반복 연습을 하려 할 때 배우들에게 힘들면 한 번만 하자고 했더니
내일부터 안무가가 없으니 계실 때 잔소리 듣고 한번 더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오전 연습 후 통역 단미를 통해 11시에 마이크 착용할 인원 6명을 콜 했고11시부터 마이크 테스트, 11시 15분에 워크숍 발표를 공지했다.
11시가 되어 마이크 테스를 하려 하는데 무대 위에 음향 담당 직원이 없었다.내가 마이크를 채워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콘솔에서 음향 담당직원은
무대 위에 마이크 준비해 놨다고 했다. 6명의 배우들은 알아서 마이크를 착용했다.프레야를 맡은 뚜엣이 내게 묻기를 코비역의 팝은 가수가 아닌데 마이크를 착용하는지 물었고나는 주역 6명은 마이크를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마이크 착용을 마친 배우들을 프레야부터 무대에 불러 소리를 테스트했고전체 6명의 소리와 MR의 밸런스를 맞췄다.11시 10분부터 원장 시티엔, 무대기술의 빵, 연기 지도 쯔엥 등 단체의 어른들이 객석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나는안무가와배우들을 무대 위로 불러시작 전 간단한 노트를 했다. 안무가는 일주일간 너무 고생 많았다. 존경한다,라고 말했고나는 잘하려 하다가 다치지 말고, 즐기라고 말했다.
워크숍 발표
내 카운트에 맞춰 음악이 시작됐고, 무대 위 배우들이 최선을 다했다.<캐츠 파라다이스>를 잘 마쳤고, 그 후 <출정>을 진행했다. 워크숍 시연을 마치고 배우들에게 커튼콜 인사를 했고2층 객석에 있던 홍유선 안무의 이름을 부르며 배우들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배우와 극장의 지도자들, 한국팀 스태프들 모두 기쁘고조금 벅찬 인사를 서로 나눴다.발표 후 시티엔 원장에게 마이크를 건넸고, 원장은 배우들에게 조용히격려와 감사, 우리 한국팀에도 감사를 건넸다.
배우들이 점심 식사를 다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식사를 하려 계단을 내려가는데 수석 디자이너 빵이 나를 부르며 따라 내려왔다.이 극장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된 것이 너무 행복하고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너무 감사하다고, 너무 고생했다고 진심으로 기뻐하고 고마워했다.다음 주중 꼭 식사를 함께 하자고 깊게 인사를 내게 건넸다.
배우들과 우리는우리 팀 최고참 배우인 항의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기로 하고항의 준비와 대접으로 10여분 떨어진 시내 식당에서 식사를 나눴다.식사 후 프로듀서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자 했고단미의 통역으로 좋은 음식과 따뜻한 대접에 감사한다고,빚을 졌으니 갚겠다고 했다.
항은 절대 그런 거 아니라고, 수줍어하며 여기에 특별한 분들이 오셨는데한 번은 대접하고 싶었다고, 한국에 가게 되면 맛있거를 사라고 농을 쳤다.
오후 / 음악
이동시간 및 피아노 전원 문제로 15분 늦게 시작했다.이곳 연습실 바닥이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 스태프들이 신발을 신고 들어가고자 해서 벗으라고 했다.나는 연습화를 준비해 와서 신었다.학교 때부터 학생들은 연습실에서 신을 벗고 선생들은 신발을 신고 하는 것이 보기 싫었다.
여기서도 그 보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다.
M1 <이페르의 전설> 합창부분터 연습을 시작했다.
일주일간 이들의 연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배우들이 쉼표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오늘 아침에 뚜엣이 내게 팝에게 마이크 착용 여부를 물어 온 것도돌이켜 보면 이들에게는 아직 배우, 가수, 무용수의 구분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무용수들이나 배우들이 노래하려면 자신감이 안 붙고 소리가 뒤로 숨고소리값을 키워 올리면 악보의 디테일보다 소리를 내는 것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2박 이상 연음이 있으면 그다음 쉼표가 있어도 소리는 유지된다. 이들과 함께 작업하며 계속 상기시킬 것은, 전공이 무용이든, 음악이든, 연기든 관계없이이 작업을 하는 동안은 우리 모두는 뮤지컬 배우라는 사실.무용수도, 가수도, 드라마 배우도 아닌, 같은 작품을 하는 배우. 그것 하나에 대한 인정.그리고 노래할 때나 춤을 출 때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자신 없는 영역일지라도흥분하지 않고, 잘하지 못해 겁내고 불편해하며 뒤로 숨지 않고냉정한 머리로 차분히, 하나하나 습득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게 하는 것.
악보의 쉼표를 지키는 것도 그중 하나의 과정으로 이끌어가야겠다.10분간 쉬고 다음 노래의 진도를 나갔다.
워낙 오늘 연습은 아침 발표 후 종료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으나음악 진도가 2곡 남아 15시까지 연습을 연장해서 진행했다.
물론 배우들에게는 사전에 연습 종료시간을 공지하지 않았기에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
15시가 넘게 되자 음악감독이 남자 배우들을 먼저 퇴근시켰고여배우들은 13번 '미혹의 방' 기본 음정을 음악감독과 함께 익히고퇴근시켰다.
그 사이 난 10월에 있을 공연일로 인해 서울과 통화 중이어서남자 배우들의 퇴근과 여배우들의 퇴근 모두 온전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배우들과 헤어졌다.퇴근길에 음악감독게 문자를 보내 한주간 고생 많았음과다음 연습부터는 연습 종료 전 꼭 나와 대화를 요청했다.배우들을 보내기 전, 그날의 연습 분위기, 내일의 준비 등실제적 공지와 심리적 공지를 나누기위해서다.음악감독은 그리 하겠다고 문자로 답해왔다.
저녁 / 수상인형극
연습 종료 후 18시 30분에 수상 인형극을 보기로 했었는데그 시간대가 매진이라고 연락받았다. 그래서 다음 회차 공연인 20시 공연을예약해도 되겠냐고 PD로부터 연락이 왔다.원래의 계획이라면 나, 안무, 조연출, PD 이렇게 4명이 가려했는데20시에는 앞서 위에서 언급했던 10월 공연의 무대 미술을 위한 회의가혜진에게 남아있어, 헤진을 제외한 3명만 가야겠다고 답했다.우리를 위해 티켓을 예매해 주던 뚜안이 왜 20시 공연은 3명만 가냐고 물어왔고그러한 사정 때문에 그렇다고 했더니, 뚜안은 없던 표를해당극장 친구들에게 연락해유보석 4장을 마련해 줬다. 뚜안은 늘, 우리 모두의 일에 진심으로 대한다.
수상 인형극을 보기 전 17시 50분까지 개인 시간을 갖기로 하고 퇴근했다.난 어제 맡긴 빨래를 찾아야 했고, PD는 어제 못 맡긴 빨래를 맡겨야 했기에함께 세탁소로 향했다.세탁소는 옷의 벌 수가 아닌 전체 무게에 따라 세탁료를책정했는데어제 내 세탁물은 1.8킬로 여서 5만동을 지불했고오늘 PD의 세탁물은 1킬로 미만이어서 2.5만동을 지불했다.이 세탁소를 내가 가자고 했기에 PD의 세탁비를 치렀다.
한국에 비해 물가가 상대적으로 낮기에 차비를 낸다거나, 세탁비를 낸다거나때로 밥이나 커피를 먼저 계산하는 것이 부담이 없다.원 없이 사주고 싶고, 메뉴를 고를 때도 가격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으나몸이 기억하는 절약이 그러지 않아도 됨을 알면서도 머뭇 거리게 할 때가 있다.
숙소에 와서는 간단히 씻고 정비 후 잠이 들었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호텔 로비로 내려가 동료들을 만나수상 인형극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는 군악대가 무슨 행사인지 연주를 했고공연장 앞 호아낍 호수거리는 차량을 통제했다.인파가 호수 주변을 메웠고, 베트남 현지인, 인도, 중국, 유럽 등 각국의 관광객들이그 거리에 흘렀다. 곳곳에 가설무대에서 연주, 춤 등이 펼쳐졌고지역 특산품, 길거리 음식, 작은 기념품 등의 노점 판매상들이 곳곳에 있었다.사람들은 들떠있었고, 나 역시 여기 와서 처음으로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수상 인형 공연장은 관객 진출입 입구가하나였기에 앞선 공연을 관람한 관객이
계단을 내려와야 그 계단을 통해 다시 다음 공연 관객들이 입장할 수 있는 구조였다.여기도 내려오는 인파, 들어가려는 인파가 상당했다. 계단이 넓지 않아 그렇게 보였다.우리를 마중 나온 수상인형극장 관계자는 티켓 없이 우리를 로비와 객석으로 인도했고참 좋은 객석을 준비해 줬다. 뚜안에게 고마웠고, 극장 관계자에게도 감사했다.
객석은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만원이었고, 여러 인종의 여러 냄새가 에어컨에 섞여객석을 채웠다.
우리와 비슷한 악기들이 많았으나 현악기 하나가 낯설고 소리도 신비해뚜안에게 묻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공연은 약 50분간 진행됐고, 베트남의 전원생활, 건국 신화, 하노이의 전설 등을 각각의
수상인형을 통해 위트 있게 펼쳤다. 인형의 움직임, 그 양 옆 우리의 산받이처럼 악기와 악사를 배치하고극 중 인물들과 악사가 노래,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 등은 물 위에서 한다는 것 하나를 제외하면우리의 꼭두각시놀음과 형식과 정신면에서 유사했다. 다만, 왜 물에서 하는 연희가 시작됐을까.덥고, 물이 많은 나라이기에 그랬을까.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일 귀국예정인 안무가를 위해기념품 쇼핑을 함께 했다.
베트남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들의 회화, 그림이 참 좋다는 것이다.기념품 상점에 그들의 그림이 담긴 마그네틱이 예뻐엽서와 함께 충분히 구매했다. PD는 내게 노점에서 노란색 실 팔찌를 선물했다.안무가가 사주명리에 밝았는데,그제부터 나와 조연출, PD의 사주명리를
풀이해 주며, 내가 지니면 좋은 색이 노란색이라고 알려줬다.그래서 내가 노란색을 입거나 가지고 다니면 사람들이 날 게이로 볼 것이다라고
함께 농담을 했는데, 그 후로 사람들은 노란색을 볼 때마다 내게 저건 어떠냐, 저기도 노란색이 있다며 색을 향해 나를 겹쳤다.그러고 보니 관심 없던 노란색이 세상에는 지천이었다. PD의 귀한 마음이 고마웠고, 적어도 베트남에 있는 동안은이 실팔찌를 착용하고 다니겠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함께 식사하고, 호텔로 돌아와 씻지 않고
안무가의 안녕 귀국을 위해 과일을 함께 먹고는
늦은 밤 헤어졌다.안무가는 이곳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무언가를 먹이고 나누려고도 애썼으며 마음과 방향에 대한서로의 계획을 함께 확인했다.안녕 귀국을 위해 함께 먹은 과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