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배우 준비생입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찾아오셨습니다.
비만하신 분들을 건강하게 해 드리는 것과는 달리, 보통 체중의 분들에게 더 체중을 감량하게 해 드리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배우나 아이돌, 무용수분들은 직업상의 이유로 체중을 정상체중 이하로 만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A씨도 다른 분들과 비슷하게, 살면서 식욕을 많이 참아오신 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먹을 것에 대해 집착하고, 신경을 온통 식욕을 억누르는데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에너지가 빠지면, 눌러왔던 식욕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A 씨를 괴롭혔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화가 난 채로 냉장고 문을 열고, 배달음식을 시켜 2~3인분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음식을 먹으면 먹을 때도 기분이 좋지 않지만, 먹고 나면 자괴감에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폭식과 절식을 반복하면서 남은 건, 쉽게 살찌는 몸이었습니다.
(폭식의 메커니즘은 정신과에서 중요하게 다룹니다. 이것에 관한 글은 다른 편에서 좀 더 깊숙이 다루겠습니다.)
저희 병원에 온 A 씨는 우울감과 불안, 불면의 증상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강박도 강하게 있어서,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먹을 것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위험하다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도 복용해 봤지만, 먹는 동안 기분이 들쭉날쭉하고 잠을 잘 자지 못했으며 약을 끊으면 약을 먹기 전보다 살이 찌는 부작용들을 겪었습니다.
저는 A 씨의 폭식 패턴을 파악하고, 중독이나 의존의 위험성이 없는 약들로 함께 해나가자고 설득했습니다.
A 씨는 증상은 위험한 약 없이도 금세 좋아졌습니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줄고, 스트레스받으면 당겼던 달달한 음식들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우울, 불안, 불면이 나아지자 몸 컨디션도 좋아졌습니다.
그러자 A 씨는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싶어 하셨습니다. 기질 검사상 A 씨는 도파민적 성격이 강한 편이라, 더 빠르고 좋은 성과를 원하셨습니다. 제 권고 이상으로 급격한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 했지만 저는 A 씨를 설득했습니다.
"A 씨, 우리가 급하게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급격한 변화보다는 조금 더 템포를 늦췄으면 좋겠어요. 급격한 체중 변화가 있으면 그만큼 우리 몸은 거기에 대항하려고 하고, 또다시 식욕이 튀어 오르고 요요를 반복할 수 있어요. 이미 지친 우리 몸을 천천히 달래가면서 체중을 줄여 봐요."
A 씨의 다이어트는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근육은 손실 없이 체지방만 빼며 목표 체중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요요 없이 잘 유지하고 계십니다.
간혹 입시가 코앞이거나,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 급하게 살을 빼드려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빼드려도, 그 이후에 그 체중을 길게 유지하실 수 있도록 후기 치료를 길게 가지고 갑니다.
왜냐하면
손쉽게, 금방 얻은 것은 아직 진정한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 되는 것은, 천천히 꾸준히 스며드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요.
저는 위험한 식욕억제제를 쓰지 않으면서도, 환자들의 빠른 감량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폭식의 이유를 잘 들여다보고 거기에 맞는 치료를 하면, 대부분의 경우 놀랄 정도로 폭식이 좋아집니다.
실제로 인바디를 보면, 3~5달 만에 몸무게의 10%를 체지방으로만 감량하기도 한다.
이 수치는 언뜻 들으면 대단하지 않을 수 있지만, 50kg의 여성 기준으로 체지방에서만 5kg을 감량하면 실제로 보이는 것은 체중의 20%를 감량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감량하시는 분들에게 저는, 오히려 속도를 좀 늦추자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빠르게 감량할수록 요요가 오기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폭식 치료를 하며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체중감량뿐 아니라 "건강한 식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시간과 꾸준함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요.
정신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항우울제를 쓰고 빠르게 효과가 나타나시는 분은 특히 더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조증의 위험성이 있을 수도 있고, 너무나 빨리 좋아지는 바람에 단약 후에 잠시라도 기분이 다운되면 너무 쉽게 투약을 재개하는 것을 원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빠르게 회복하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울, 불안이 이유 없이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몸에서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것도 함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좋아진 기분, 만족스러운 상태"가 진정한 내 것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