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가 아름다운 B 씨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입니다.
글 쓰는 것을 몹시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요.
B 씨가 각본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B 씨가 글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부쩍 B 씨의 표정이 어두워 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부모님이 제가 하는 일을 반대하세요."
B 씨는 침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안 될 길을 왜 가냐고 자꾸 그러시니까 저도 기운이 빠지네요."
이전부터 B 씨의 부모님이 B 씨가 시나리오 작가를 준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근 마찰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이런 말들을 들으면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도, 버티기 힘들겠지요.
자신의 불안을 가지고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른 사람, 특히 남도 아니고 가족의 불안을 함께 떠안고 가야 하는 길은 그 무게가 훨씬 고될 겁니다.
B 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많습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길과 자신이 원하는 길이 다른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대 간 갈등은 다루기가 참 어렵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배경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B 씨의 조부모님 세대는 전쟁을 겪었고, 그때는 '위험한 것'을 잘 감지해서 피하는 것이 생존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었을 겁니다. 불안이라는 레이더에 날카롭게 날을 세워, 위협 요인들을 놓치지 않고 경보를 울려야 했겠죠.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그야말로 내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을 테지요. 저는 그 불안을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자녀인 부모 세대는 불안을 감지하는 레이더를 물려받았을 겁니다. 고도의 성장기와 IMF를 겪으며 남들과 비슷한 안정적인 길을 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을 살아가는 것이 생존에 가장 유리하다고 믿는 부모님들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에 자녀를 두기가 매우 두려우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또 다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의 삶은, 그 자신의 것입니다.
자녀의 실수와 실패는 자녀의 것입니다.
실수할 수 있는 권리,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실수하고 실패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으면, 자녀들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생에서의 수많은 좌절들을 조금 더 의연하고 즐겁게 헤쳐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걸음마를 배울 때 수천번 넘어집니다. 넘어질 것이 두려워 혼자 걸어보려는 아이를 계속해서 품 안에 품고 있기만 한다면, 아이는 스스로 걷는 법을 영영 배우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