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엄마가 힘들다.

by 바라움

30대 여성인 A 씨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내원하셨습니다.

어머니는 A 씨가 예민하고 자주 우울해하는 것 같아 걱정되어 병원에 데리고 오셨다며, 본인께서 직접 A 씨의 증상들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는 A 씨를 단독으로 뵙기로 하고, A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A 씨는 초반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했고,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진로를 결정하고, 헤어스타일도 남자친구의 뜻에 맞췄으며,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도 과도하게 신경을 썼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것에 맞추기 위해 애쓰느라, 사람을 만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습니다.

따로 면담한 A 씨의 어머니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습니다. 말 잘 듣던 착한 딸이 갑자기 짜증을 내거나 방에 틀어박혀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딸과 서로 의지하며 지냈는데, 딸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 두렵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몰라 답답하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A 씨의 이야기가 자신처럼 느껴지는 분이 있을까요?

사실 A 씨는 한두 분의 사례가 아닙니다. A 씨는 저를 거쳐 간 수많은 환자분들을 토대로 만든 가상의 인물입니다.

이 사례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아직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 단계를 거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인간은 자라면서 각자의 자아를 존중받고,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치 엄마가 젖먹이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것처럼, 부모와 자녀 사이에 심리적인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경우 부모도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자녀 역시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자존감 저하로 이어지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의 실패를 자신의 실패처럼 느끼며 과도하게 간섭하게 되고, 자녀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느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공허하고 허무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각자의 인생은 고유한 자신의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실수와 실패까지 욕심내서는 안 됩니다.

자녀를 평생 품 안에 안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곁에서 지지해 주며 스스로 걷는 법을 터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그러려면 적절한 훈육과 함께, 넘어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심리적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