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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과나 Sep 12. 2024

검도하는 사람들이 외모지상주의자인 이유

우리 학교 검도 동아리에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왜 하필 검도부를 선택했냐고 물으면 하나 같이 비슷한 얘기를 한다. 대학 가면 운동 하나 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마침 대학에 왔고, 검도복과 호구를 쓴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서라는 것.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겠지만 검도도 드라마나 광고에서 반할만한 순간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 때가 있다. 라떼는 모래시계의 이정재였고, 또 언젠가는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가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검도장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애시당초 검도복 입은 모습, 호구를 쓴 모습이 멋져서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검도 실력과 검도복의 매무새, 호구를 길들인 모양새도 검도 실력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생 때는 3만원대의 막도복으로 시작했다. 앞으로 검도를 얼마나 오래 할지 모르는 초심자들은 으레 그렇게 시작한다. 무조건 싼 것이 좋다. 그러다가 기본기를 익히고 나서 호구를 사야할 시점이 오면 미싱호구라는 걸 산다. 미싱호구의 반대편에는 수제호구가 있다.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춘, 게다가 멋있기까지 한 호구를 전문 장인이 한땀한땀 만드는 것이 수제호구이니 일단 엔트리 모델이어도 백만원은 넘어가고 몸통을 보호하는 갑의 소재에 따라서는 수백만원까지 가기도 한다.


미싱호구만 해도 30~60만원대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는 없다. 게획적인 사람이라면 검도장에 등록하는 순간부터 매달 10~20만원씩 적금을 드는 걸 추천한다. 


그렇게 운동을 하다가 초단을 따게 되면 다음 순서는 검도복 업그레이드다. 칠천번이니 만번이니 면사의 두께 기준으로 부르는 명칭의 도복을 입으면 검도실력마저도 그럴듯해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때쯤이면 검도복에 가능한 한 적은 돈을 들이려 했던 지난 날들은 전생인 듯 아득해지고 내 능력이 닿는 한 가장 좋은 것을 입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렇게 도복을 업그레이드하고 나면 다음은 호구 업그레이드 차례다. 그래야 밸런스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호구를 쓰고 운동을 하다보면 호구를 착용했을 때 호면 옆으로 떨어지는 날개부분을 어떻게 길들여야 더 멋진지, 갑상은 어떻게 길을 들여야 하는지를 의식하게 된다. 기존에 쓰던 호구는 대부분 초보자일 때 호구를 제대로 길들이지 못해서 뒤늦게 바로잡으려 해보아도 영 눈에 차지 않는다.     


검도계를 떠났다가 거의 20년 만에 돌아오니 도복 입는 방법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의 앞자락에 붙은 끈을 허리에 두 바퀴쯤 두른 후 뒤에서 리본으로 묶는 거였나 아니면 교차해서 탄탄히 둘러놓은 끈 밑으로 꽂아 넣기만 하면 되는 거였나 한참 헤맸다.     


처음 도장에 간 날 도복을 입고 나오자 사범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탈의실로 따라 들어오라고 하셨다. 상의를 더 단단히 여미고 주름이 잡히지 않게 하의에 잘 넣어줘야 한다고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급하게 여기저기서 수급해 온 호구를 썼을 때 매무새에 대해서도 6단 A 사범님에게 지적을 들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쭈꾸미 모양으로 호면을 썼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쓰지 않는다고 호면을 묶고 나서 어깨로 떨어지는 날개부분을 산자락처럼 비스듬히 흐르는 모양으로 길들여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하다하다 검도 호구 쓰는 매무새마저도 세월 따라 바뀐 것이다.    


하... 그랬지. 검도가 이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촘촘하게 챙겨야 하는 거였지? 생각이 났다. 나부터도 후배들과 대련을 할 때 눈을 마주보며 고개를 숙여 가벼운 목례를 하고 몸의 옆선에 붙여 내려 들고 있던 칼을 허리에 차고 상대의 눈을 보며 세 걸음을 크게 걸어들어와 칼을 딱 뽑았을 때 죽도의 끝(선혁)이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설 수 있는지부터 본다.     


그리고 칼을 뽑아 쥔 중단자세가 바른지도 살핀다.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머리를 지나치게 젖히고 있거나 상체가 뒤로 넘어가거나 앞으로 쏠려 있지 않은지 찰나의 순간에 파악한다. 단이 높은 분들은 칼을 한 번 맞대보면 상대의 죽도에 거스러미가 일어나있지 않은지까지 다 본다.     


검도를 수련해 가는 과정이 결국은 내 몸으로 검도의 정수에 가까운 동작을 구현해 내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이라고 한다면 내 몸이 그 훈련이 잘 되어갈수록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인 도복과 호구도 좋은 것을 쓰려고 하고 잘 관리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초보이면서 막도복을 입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아빠 도복 물려 입은 우리 아들 같은 경우) 단이 높은 사람이 도복이나 호구가 허름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운동을 마치고 씻으러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도복 바지를 벗어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접어놓는 일이다. 그러니까 검도를 한다는 것은 몸을 단련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도복의 주름을 살려 접을 줄 아는 일이기도 하고 호구를 썼을 때 멋드러진 자태가 나오도록 호구를 길들이는 일이기도 하고 죽도의 부러진 살만 빼서 교체한 후 등줄을 다시 매는 법을 아는 일까지도 포함되는 일인 것이다.     


검도는 멋진 도복핏으로 초심자를 유혹하고, 그렇게 검도장으로 흘러들어온 초심자가 검도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기도 그렇게 멋진 도복핏을 남들에게 보여주어 새로운 초심자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결국 검도는 외모지상주의자들의 운동이라는 결론인가...

검도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으니 우리는 외모지상주의자 커플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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