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체에 걸러지고 남은 사람들을 모으겠다는 앙큼한 나만의 계획
5월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으니 9월이 된 현재 시점에 5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그 사이에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죽도를 잡은 친구들이 기본기를 익히고 호구를 착용하는 호구식을 거쳐 진짜 검도부원이 되었다.(힘든 호구식을 무사히 치루고 나면 소속과 이름이 적힌 명패를 받게 된다.)
내가 새내기일 때 우리 검도부는 생긴 지 2년밖에 안 된 신생 동아리였지만 지금은 30주년을 맞이하고도 몇 년이 지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동아리로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우리 동아리는 학부생으로 이루어진 검도부와 검도부원의 자격을 유지한 채 졸업을 한 부원들이 가입하는 검우회라는 두 가지 층위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32주년이 지나 80여 명이 모여있는 검우회에서도 계속 운동을 하는 멤버는 그닥 많지 않다. 올해 5월에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나도 운동을 하지 않는 쪽에 속했었고.
서울시 대학 검도 연맹전을 구경하러 갔다가 선배들이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대학 동아리들을 보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후배들이 검도부의 명맥을 계속 이어나가 주었으면 하고 응원을 하면서도 막상 운동을 하는 선배는 별로 없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런 선배가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물러앉은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러니 이제는 회사 다니고 아이 키우는 일상에 검도 수련을 병행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이며 후배들 옆에 얼쩡거려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후배는 물론 학부생도 포함이지만, 이제 사회에 나가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졸업생, 이미 사회에 나가서 적응하고 있는 친구들 중에 마음 속에 검도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는 마음도 있었다. 나도 검도를 멀리하고 사는 동안 마음 어느 한구석에는 ‘검도를 다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차마 구체적으로 하지도 못한 채 마음속 방 한 켠에 몰아넣고 문을 들입다 잠궈놓고 있었으니까. 내가 40대 말에 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을 본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런 마음이 전염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졸업생들만이 검우회 멤버가 될 수 있으니 검우회 신입 멤버 리크루팅의 관점에서 보면 후자가 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말하자면 동아리 부흥 10개년 계획을 세운 셈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내가 50이 다 된 나이에 다시 검도를 시작해서 10년 열심히 하면 지금보다 더 검도 잘하는 60대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내가 열심히 검도를 하는 10년 동안 가능한 한 많은 후배들을 다시 검도장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다시 운동한지 5개월째 접어드는 현 시점에 원래부터 열심히 하던 후배 A 이외에도 A와 함께 임원진을 했던 후배 B와 C가 도장에 운동을 하러 왔다. 오랜만에 자기 몸도 잘 못 가누는 초보수준의 후배들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 많은 상황에서도 검도에 대한 애정만으로 열심히 운동을 해서 어느 수준까지 올라온 후배들의 면면을 알게 되니 반갑다 못해 고마웠다. 여태까지는 나와 대련을 해서 나의 머리를 칠 수 있는 후배가 없었는데 최근에 운동을 하겠다고 등록한 후배 C와 대련 중에 머리를 맞았다. 후배에게 머리를 맞아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후배들도 몇 기 주장이었고 동아리 연혁에서 무슨 대회 수상을 했다고 이름 석자로만 알던 사람이 자주 나와서 운동을 하니 좋았는지 같이 팀을 만들어서 얼마 후에 있을 대회 단체전에 출전해 보자고 한다. 32년 동아리 역사에 80명 정도가 남았다면 한 해당 3명이 안 되는 부원들만 남은 셈인데 남은 멤버들 중에서도 운동을 하는 멤버는 10명이 간신히 넘을까 말까 할 것이니 시간의 압력에 눌리고 세월의 풍파에 깎인 후 남은 보석 같은 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5월에 시작한 10개년 계획(남들은 아무도 모름 주의)이 5개월만에 이뤄낸 결과가 매우 고무적이다. 앞으로도 시간의 시험을 이겨낸 이 보석들과 재미있게 운동하면서 마음 속에 검도를 품고 살고 있는 다른 후배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작은 돌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잔잔하고 고요한 그들의 일상에 던져넣고 싶다. 그들 안에 있는 검도인의 본능을 일깨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