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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등판] 당사자가 풀어주는 '아무도 몰랐을 이야기'

by 칼과나

고3에 멈춰버린 아이를 보면서, 아이에 대해 쓰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와 함께 글을 써보겠느냐고 물었고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아이의 답글이다.




엄마의 글을 다 읽어보니 내가 엄마에게 다 말하지 않은, 내가 겪었던 많은 것을 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우리 엄마, 우리 가족은 몰랐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짝!” 마찰음이 들린 직후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뺨을 맞은 것이다.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빨갛게 부어올랐을 뺨에는 미미한 열기가 돌았다. 그 애가 뭐라뭐라 화를 내는 것 같긴 했다. 그러나 그때는 온 세상이 눈물로 흐릿하여 그 애의 말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야, 듣고있어? 네가 지금 뭔 짓을한건지 알기나 해?” 같은 말을 내게 좀 더 했던 것도 같다.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뒤에 내 얼굴이 왼쪽으로 돌아갔던 것만은 기억난다. 이번에는 그 애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본 직 후 눈을 질끈 감았지만, 뺨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같았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손으로 눈을 더듬어볼 새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늘이 깨어져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면 이런 기분일까. 갑자기 정신이 확 들고 시야가 또렷해졌다. 그러나 그 명확해진 시야가 확보됨과 동시에, 머리는 무수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한거지?, 나한테 지금 왜 이런일이 벌어진거지?,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등등. 생각에 사로잡혀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눈물로 흥건했을 눈을, 크게 떴을 내 모습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상상된다. 초등학교 4학년의 어느 여름날. 내게 문신같은 기억이 새겨졌다.


돌이켜보면 어린날의 나는 늘 긴장하고 있었다. 늘 눈치를 보고, 늘 불안해했으며 작은 실수 하나에도 과도하게,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몇 날 며칠을 불안해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성격은 사람을 잘 파악하고, 패턴을 잘 읽는 예민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나는 사람의 한숨에, 미묘한 표정 변화에, 공격적인 어투 하나하나에 모조리 상처받았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많이 어렸던 시절이니 눈물도 자주났다. 그래서 나 혼자 받았던 작은 상처에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도 눈물을 자주 흘렸으며 친구들의 “쟤 왜 저래?” “몰라.”라는 말에 더 상처받아 그저 가만히 눈물을 흘리며 이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나의 자기혐오는 그때, 그러니까 11살부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꽤 최근까지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자기객관화를 하고, 자기주관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나의 단점, 내가 부족한 점들, 내가 잘못한 점들을 복기하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냈다. 개중에는 꽤나 깊이까지 파고들어간 것도 있고, 심장이 아릴 정도로 아픈 것들도 있었다.


나는 그럴 때면 침대에 올라앉아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새벽녘까지 계속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러면서 또 나약한 자신을 탓하고, 나 자신의 한심함에 대해 생각하며 나를 비난했다. 11살에 시작하여 19살까지 이어져왔으니 자그마치 9년의 자기혐오였다. 어느샌가 나에게 남에게는 절대 쓰지도 않을 비속어를 쓰는 것은 일상이 되었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공부와, 자기혐오, 친구관계 등등이 합쳐져 팔, 다리 전체에 볼펜을 사정없이 죽죽 그어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을까? 나의 장점을 잘 발견하는 좋은 성격은 내게는 반대로 작용하여 친구들의 좋은 점만을 가진 완벽한 사람을 만들어 나와 늘상 비교했다. 나의 낮은 자존감은 그 완벽한 사람을 더욱 정교하고 진짜같아 보이게 만들었고, 그 반대로 나를 더욱 더 낮추어 나는 정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리고 나도 그런 모습에 가까워져야 한다며, 내가 바라는 완벽한 모습의 나를 설정해놓고 그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내가 폐를 끼쳤다고, 굉장한 무례를 저질렀다고 생각한 다음 나를 모질게 비난했다. 훗날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내가 프레임을 빙자한 고문을 했다고 말하셨다.


이러한 상태들이 계속 지속되어 심화된 것이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이었다. 정말로,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았다. 패배감도, 죄책감도, 자기혐오도. 이제 정말 느낄만큼 느꼈었고, 내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는 버거웠다. 점점 숙제를 하지않아 쌓여가는 문제집들과 문제들은 내 숨을 옥죄어 왔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했다.


그러한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스트레스성 위장염의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하지만 나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말 단 하나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걱정 끼치기 싫었으니까. 나라면 내가 열심히 키운 아이가 이런 고통을 느끼고, 자신을 깎아내리는데 자기 인생의 절반가량을 썼지만, 나는 그 사실을 정말,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트라우마가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 내 손으로 모든 학원을 끊으러 갔을때에도,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맞는 거라고 평생. 무덤까지 가져갈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곪고 곪은 상처는 터져나왔고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가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도 이렇게까지 자세히 말해본 적 없는 진짜 나의 이야기이다. 사실 더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위에서 말한 큰 주제들의 작은 덧붙임일 뿐이다. 엄마와 우리 가족, 내 친구들을 비롯해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을 나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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