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아시아 각국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같은 마케팅팀이라도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폴에 나눠져서 일하고 있어서 같은 팀이라는 의식을 만들고 고양시키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일단 소속 팀이 다르고, 사무실이 여러 개로 나눠져 있고, 게다가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같은 K 직원이라는 소속감도 갖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직원들이 서로 잘 알고 잘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한 달에 한 번씩 회사에 모여서 직원 생일이나, 승진, 회사가 개최하는 이벤트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같이 피자나 샌드위치, 치킨 같은 걸 함께 먹는 친목의 날이 있다. 그리고 연 1~2회 정도 야유회도 가고 연말 연시 파티도 하는데 이걸 인사부에서 다 하기는 너무 업무 부담이 크다보니 이런 일들을 같이 할 멤버들을 어찌저찌 충원해서 진행하고 있다.
지금도 그 멤버들을 충원하는 기간인지 '자원하실 분? 아무도 없어요?' 라는 리마인드 메일이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계속 오고 있다. 그런데 이 친목행사를 진행하는 게 자기 KPI도 아니고, 업무 평가에 좋은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사람들 다 구조조정해버리고 업무부담이 과중한 와중에 누가 나서서 그런 엑스트라 업무를 하냐고. 회사에서 한 달에 저녁 식사 두 번만 잡아도 업무시간 외에 왜 자꾸 내 시간 뺏느냐고 항의가 들어오는 마당에.
예전처럼 직속상사가 지목해서 시킨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초거대 볼드 대문자 E성향을 가지고 사람들과 사귀고 부대끼는 일을 좋아하는 희귀한 인재가 계셔야 될까말까한 일인데 나는 원래 I(오늘의 TMI: I 중에 제일 E, E 중에 제일 I 같은 너낌이라고)이기도 하고 할 일 하고 운동 가고 애들 챙기기도 바쁜 사람이라 강 건너 불구경 같이 지켜보고 있다. '아유, 애쓰시네...' 하면서.
그런데 오늘 그 애쓰시는 분이 보낸 메일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었다. 회사나 기관들이 뭔 행사를 하면 꼭 하는 게 설문이다. 우리 회사도 그 친목모임을 하고 나면 꼭 설문을 한다. 이번에 뭐가 좋았냐, 뭐가 안 좋았냐, 다음에 뭐 했으면 좋겠냐, 기타등등. 해줄 게 없으니 설문에서 꼭 '아주 만족했다' '고생 많으셨다' '덕분에 즐거웠다'고 써드리는 것만은 아끼지 말자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까맣게 잊은 질문 중 하나가 다음에 이런 친목행사 코디네이터로 지원할 의사가 있니? 라는 거였나보다. 담당자분이 '지원할 의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No라고 거절한 비율이 한국이 가장 낮고, Maybe라고 여지를 남긴게 33%, Yes라고 답한 사람이 무려 57%로 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높은데 왤케 지원 안 하냐'고 애처롭게 항의 중.
이 수치를 보니 홍콩, 대만, 싱가포르 같은 중화권에서는 No라고 이렇게나 확실하게 답을 했구나. 특히 대만은 yes를 3%밖에 안 했구나 하는 걸 보고 너무 재미있었다.
업무분담하는 회의를 해보면 대만쪽 친구들은 절대 Yes를 안 한다. 어차피 논리적으로도 업무흐름 상으로도 지금 이 업무분담 회의의 결과는 한국과 대만이 OK를 해야하는 것이고 그게 그렇게 대단히 부담이 큰 일도 아닌, 그래서 이 업무분담 회의는 그냥 이거 이제부터 너네가 해,라는 설명을 하는 자리일 뿐인데도 말이다. 우리(한국)팀은 '그래 알았어. 대신 잘 도와줘야 돼?' 이 정도 하고 끝나는데 대만팀원은 '이게 이래서 힘들고 저게 저래서 힘든데 이걸 꼭 내가 해야 해?를 a버전, b버전, c버전 진짜 3절 4절까지 간다.
나중에는 일을 넘기려던 본사가 콧방귀를 뀌면서 '니가 말하는 그거 다 내가 하던 거고 너네 걸 내가 해주던 건데 이제 너네도 잘 하니까 이제부터 너네가 하라는 거잖아. 넌 그냥 받아들이면 됨.' 대충 이렇게 끝이 난다.
그렇다고 대만 사람들이 일 못하고 별로냐? 그건 아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조금씩은 있어도 다들 책임감있게 잘 해낸다. 또 친한 직원 경조사가 있으면 얼마나 국경 너머에서도 챙기려고 애를 쓰는지 모른다. 대만에 출장 갔던 직원들은 그들이 어찌나 대접을 극진하게 하던지 감탄하고 오기도 했고. 다만 Yes,를 쉽게 말하지 않는 것 뿐.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한국 사람은 나도 한국사람이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ㅋㅋㅋ 그러면 앞으로 한국 사람의 Yes와 maybe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거지? 한국 사람이 이렇게 No를 잘 안하는데 No라고 말했으면 그건 진짜 No라는 건 확실해진걸까. 저 표에 일본의 답이 있으면 진짜 재미있는 인사이트가 나왔을 텐데 아쉽다.ㅋㅋㅋㅋㅋ
*덧: 일본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더 No를 안 하는 것 같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일본 방송인이 방송에서 '맛있다'하면 맛 없는 거고,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 다 떨어줘야 진짜 맛있는 거라고 했던 케이스나, 일본 회사에서 일본 주재원과 중국 직원 사이에 낀 한국인으로 회사생활 했던 분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