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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 노화, 시력 노화, 어느 게 더 무서울까?

by 칼과나

나이가 들면 세상을 받아들이는 여러 기관들이 녹슨다. 세상을 볼 수 있는 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차례로 낡은 티를 낸다.


중학생 때부터 멀리 있는 것이 잘 안 보이는 근시로 안경을 끼고 살아왔으나 노화와 함께 온 시력 저하는 또 달랐다. 젊어 시력이 나쁜 것은 먼 곳을 보려면 시력에 맞는 안경을 끼면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면 노화는 진퇴양난이랄까? 먼 곳을 보는 시력도 더 많이 떨어져서 그림을 보러 가서도 안경이 없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데, 먼 곳을 보는 안경을 끼고는 핸드폰 화면처럼 가까운 것이 영 초점이 맞지 않아 안경을 밑으로 내려 그나마 조금 더 잘 보이는 맨눈으로 보려한다. 그러다보면 나 어릴 적 외할머니가 안경을 코에 잘 걸었다가 더 내려 안경알을 통하지 않고 보려고 애쓰다가 이리저리 해보아도 영 초점이 맞지 않아 나에게 바늘귀를 꿰어달라고 하시던 생각이 난다.


눈을 찌푸려서 초점이 맞춰지면 양반인 거다. 안경 없이 먼 데 있는 것을 보려고 눈을 찌푸리면 인상 사나워 보인다고 남편한테 잔소리 듣는 게 싫었는데 이제는 인상 사나워도 초점이나 맞았으면 싶다. 먼 곳 볼 때 쓰는 안경을 끼고 핸드폰 화면을 보려고 하면 아무리 눈을 찌푸려봐도 초점이 맞아지질 않는다.


백내장 수술을 한 친구가 문화재를 보호하려고 조도를 몹시 낮춰놓은 전시실에서 유리케이스에 코를 박고 열심히 보았던 이유가 아무리 용을 써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그랬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안경을 끼고 핸드폰 화면을 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답답함일까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이야 가까운 곳을 볼 때 안경을 벗으면 되지만 어떻게 해도 초점이 맞지 않는 상황이 오면 어떨까.


렌즈를 껴보면 그 미래를 미리 경험해볼 수 있다. 눈이 0.2, 0.3 정도로 나쁜 편이지만 평소에는 운전할 때나 영화 볼 때만 안경을 낀다. 그러니 근시를 교정했을 때 가까운 곳이 안 보이는 노안 경험을 할 일이 별로 없는데 콘서트 가서 내 가수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려고 렌즈를 쓰면 확 느껴진다. 멀리 있는 가수를 또렷하게 보고 싶어서 낀 렌즈인데 공연장이 커서 가수는 면봉만 하게 보이고, 렌즈 낀 눈은 핸드폰의 초점을 맞추질 못해 사진을 찍어도 지금 초점이 맞는지 나갔는지 알 수가 없다. 렌즈야 공연 끝나고 빼버리면 되지만 내 눈의 시력이 빼박 그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삶의 질이 얼마나 떨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눈이 안 보이고 잘 보려고 애쓰다 보면 눈이 피로하고 머리도 아파온다며 책 읽는 거 좋아하시던 어른이 이제 책을 안 읽는다 하는 말씀을 들으면 나중에 오디오북으로 책을 들어야 할 때가 오더라도 지금은 열심히 읽어야지 싶고 눈 건강에 좋다는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일어나서 아스타잔틴을 비롯한 건강보조제 한 주먹 먹고 왔다.)


시력이 저하되는 것은 나에게 힘들어도 남에게 크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청력은 다르다. 청력이 떨어지면 다른 사람에게 아주 쉽고 크게 영향을 준다. 귀가 잘 안 들리니 집에 있을 때 TV 볼륨을 너무 크게 설정한다. 심지어 이웃집에서 TV 소리가 너무 크다고 항의가 들어올 정도로 소음을 발생시키게 된다. 연세 드신 어른과 같이 생활하는 젊은이는 귀가 따가워서 괴롭다. 대화가 잘 진행되지 않아서 불편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남편이 내가 뭐라고 하면 잘 못듣고는 자꾸 '뭐라고?'를 외쳐대기에 '별 대단한 말도 아닌데 뭘 자꾸 궁금해 해?' 혹은 '말해줘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뭘 자꾸 다시 말하래?'라고 궁시렁댔는데 잘 안 들리니까 내용의 경중을 가리지 못해 자꾸 궁금해하는 거였다. 별 거 아닌 얘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가 없으니까.


게다가 자기가 잘 못 들으니 남들에게도 큰 소리를 낸다. 얼마 전 버스를 타고 가던 날 있었던 일이다. 우리 동네 번화가인 노원역으로 가는 버스였다. 그 역에서 사람이 거의 반 이상이 내리는 터라 다들 내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하차 카드를 찍으며 내리느라 뒤쪽 사람들은 통로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이 나이드신 세대와는 달라서 대중교통 승하차 때도 각자의 퍼스널 스페이스 안으로 침범해 오는 걸 더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히 내릴 때도 탈 때도 앞 사람에게 붙어서 미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데 그 때문에 움직임이 없어 보이니 어르신 생각에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내릴 건지 안 내릴 건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하셨던가보다.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앞 사람을 거칠게 툭 치고는 "아 내릴거야?"하고 버럭 큰 소리를 낸 것이다.


그러자 앞에 있던 젊은이가 뒤로 돌아 어르신을 보고는 "앞.에. 사람이. 있잖아요! 앞에서. 내려야. 저도. 내리죠!"하면서 더 크게 버럭하며 씩씩대며 내렸다.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무안하고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당혹스러웠을 장면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젊은이가 좀 더 둥글게 말할 순 없었을까? 싶었는데 그 며칠 후에 슈와 얘기하다가 그 젊은이의 반응이 조금 더 이해되는 계기가 있었다.


슈가 학원 셔틀버스를 안 타고 싶어하는 이유가 학생 관리하는 아줌마 선생님이 자꾸 말을 시키는 게 불편해서라고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아니 셔틀을 안 타면 버스를 생돈 내고 타고 다녀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사람하고 대화하고 싶지 않은 게 요즘 젊은이들인 건가 싶어서 당황하는 한편 그런 젊은 세대에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그 할아버지의 몸짓과 큰소리는 얼마나 싫은 상황이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 젊은이도 언젠가는 조금 더 둥글어져서 그런 어르신을 만나도 씩 웃으면서 '저도 지금 내려요.'라고 할 때가 올테고, 또 언젠가는 자기가 그 할아버지처럼 큰 소리를 내야 들을 수 있게 되었구나 하면서 뒤늦게 죄송해하기도 할테고 또 자기 같은 젊은이를 만나서 노여워하기도 하겠지. 이것이 circle of life인곤가...


인간의 감각기관이 퇴화한다는 건 세상을 향해 나 있는 통로가 왕복 8차선 고속도로에서 1차선 비포장 국도로 바뀌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세상의 자극과 나의 반응이 오고 가는 길이 원활하지 못하고 자꾸 느려지고 때로는 사고가 난다.


아직까지는 노안이 와서 나 혼자 불편한 단계인데 청력 저하가 좀 더 천천히 오게 하려면 오또케 해야 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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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 이번 건강검진 때 청력검사 했나? 안했나? 기억이 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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