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쓴 글을 읽고 한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거라고, 사교육이다 뭐다 유난떨지 말고 그냥 학교 다니면서 책 읽고 자기 힘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는 그저 곁을 지키면 되겠지 정도만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아이 엄마들이 심사숙고하며 학교를 고르고 노심초사 하며 학원을 고르고 놀이친구를 만들어줄 때 집 근처 학교에 당연히 보냈고 학원은 아이가 보내달라고 할 때까지 보내지 않았고 보내달라고 할 때 가장 가까운 곳을 골랐다.
단짝친구가 없어서 약간 겉도는 것 같다는 말을 초등 고학년 내내 담임선생님과 상담할 때 들었으면서도 '그랬구나, 학교에서 좀 겉도는구나', 했다. 나도 초등학교 내내 소심하고 조용하게 단짝친구 하나 없이 지나왔기 때문에, 존재감 없는 아싸였던 내 경험을 반추해볼 때 반길만한 일은 아니지만 대단히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뺨을 때린 그 아이는 태권도에서 만난 아이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성실히 운동을 했던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잘하는 아이였다. 몸으로 익히는 수련이 저 정도로 되어 있다는 건 저 아이의 성실함을 말해주는 것이라 여겨 나는 지레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싹싹하고 예의 발랐기에 아이들끼리만 남았을 때 하는 행동을 전해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딸에게는 그 무리의 아이들 말고 다른 친구가 없었어서 크게 문제제기를 하면 사이가 틀어질까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했다고 들었다. 제일 먼저 태권도장 관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가 운동도 잘하고 계주 선수를 할 만큼 다른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아이인데 관장님이 무예를 가르친 아이가 이런 식으로 그 능력을 쓰길 바라지는 않으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아이를 가르치실 때 염두에 두어 주십사 부탁드렸다. 학교에서는 반이 다른 터라 담임선생님도 다른 상황. 딸의 담임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도 이 사실을 알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학년 올라갈 때 같은 반 안 되도록 해달라는 얘기도.
다만 며칠 지나 얘기를 들었던지라 그 아이의 부모에게까지 연락하지는 않았다. 또라이 아이에게는 또라이 부모가 있기 마련이라 섣불리 건드리기 보다 증거를 더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아이는 다음 해인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렇게 무난하게 마무리 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7년 여의 세월이 지나 그것이 아이에게 남긴 트라우마에 대해 들으니 내가 그때 이 구역의 미친년이 되어 학교를, 태권도장을 떠들썩하게 뒤집어 엎었으면 그 아이에게 사과의 말을 듣고 반성문을 받았으면 좀 나았을까 후회가 되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뭔 일만 있으면 민원을 제기해서 교감선생님을 우울증에, 공황장애 걸리게 만들고, 담임선생님을 여럿 갈아치웠다는, 시사프로그램에 나온 여자처럼 했으면 내 아이가 상처를 덜 받았을까? 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아이 키우기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1970년대생인 내가 자라왔던 것을 기준으로 편하게 지내온 날들의 청구서가 지금 날아오는 것인가 아득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애초에 상처를 받지 않게 만들어줄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미친년은 되지 못할 팔자다. 결국은 아이가 받은 그 상처라는 경험을 어떻게 잘 극복하도록 도와주는가인데 그 역시 잘 해내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아이에게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 무심해서 너무 둔감해서 아무것도 몰라서.
아이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런 시간이 있어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 괜찮다고 한다. 아이는 중학생 때 음악에 빠져 살았다. 음악이 주는 즐거움, 기쁨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 아이에게 음악에는 정말 특별한 힘이 있지만 음악동네에서 먹고 살려고 하다가 음악이 싫어질 수 있다고 먼저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전공하자고 권했었다. 아이도 동의했고 공대쪽 전공으로 대학 진학을 하기 위해 공부를 했었다. 그런데 자기혐오와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전혀 노력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그런 아이를 보고 놀라 안전장치 운운할 정신이 없어진 우리 부부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게 되면서 비로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겪어온 모든 고통들이 합심하여 선을 이루었다고 결론내렸다는 얘기인가보다 짐작해본다.
아직 아이도 우리도 그 길 위에 서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알지 못한 채로.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아서 다시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요즘이다. 다만 인생에는 도돌이표가 없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좋은 선택을 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내가 한 선택을 좋은 것으로 만드는 일에 매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아이와 2인 3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