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슈까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집 아이들이 100% 고등학생이 되면서 남편이랑 나랑 마음이 힘들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은 뭐 알바 아니고 그냥 어화둥둥 내사랑 모드였다면 고등학교의 성적은 바로 대학 앤다 미래의 직장과 직결되는 것이다보니 애가 성적이 안 나오면 자꾸 내 육아를 돌아보게 된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나름대로 한다고 했다, 다시 돌아가도 더 잘할 자신은 없다' 싶지만 그래도 육아리셋이라는 글자가 불쑥불쑥 올라온다.
육아리셋도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1. 같은 아이로 재도전인가? 2. 이 육아의 기억이 부모에게 남아있는가? 먼저 같은 아이인가?는 dna 뽑기부터 다시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외모로 압살해버리게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긴 해도, 전지구를 찜쪄먹을 수준으로 IQ영재 로또를 맞지 않는 한 dna 뽑기는 지금도 준수하다고 본다. 이 정도로 예쁘고 준수하고 건강한 아이들로 낳은 것만 해도 나와 남편은 늘, 연습도 한 번 안 하고 이런 결과를 얻은 우리 자신을 셀프토닥해주고 있다. (예문: 아유 이 눈썹 좀 봐. 아니 연습도 한 번 안 해보고 이렇게 그린 것 같이 예쁜 눈썹을 줬대~ 그래~)
두번째로 이 육아의 기억이 부모에게 남아있는가. 이 모든 기억을 다 지우고 다시 키운다면 아마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대로 일 것이기 때문에.이 모든 기억을 모두 가지고 다시 키운다면 그때야 말로 부모가 뭔가를 깨닫고 달라져서 다른 결과물을 기대해볼 수 있을테지만 그 세월을 다 기억하면서 다시? 엄... 필경사 바틀비처럼 I would prefer not to를 외치게 될 것 같다.
그러니 하루에도 몇 번씩 이게 맞아? 이대로 가다간 인ㅅ...도 어렵겠는ㄷ... 아 아닙니다. 했다가, 엇쩌라구, 상위권은 몇 명 안 되니까 상위권인 거라구, 공부 그까이꺼 잘 먹고 잘 사는데 별 힘 없다. 박사하고 교수 되기까지 남편이랑 나랑 ㄱ고생한 거 생각해 봐라. 돈은 돈이 벌리는데서 일해야 버는 거지, 공부랑은 상관없다 했다가,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 별 부침없이 살고 있는 내 공부 잘하는 친구들 생각하면 또 그래서 부모들이 공부공부 하는 건가 싶었다가 하루에도 마음이 열두번씩 널을 뛴다.
1970년대 생, 88서울올림픽할 때 전세계 사람들이 코리아? 그게 어디있는 나란데? 하던 시절에 국민학교를 나온 나와 2002년 월드컵을 지나고 태어나 전 세계를 돌아보고 와서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몇 없던데?'라는 자의식을 전국민이 가지게 된, K가 프리미엄 라벨이 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삶에 대한 자세가 같을 수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참 어렵다.
부부교사였던 부모님 덕에 큰 부자는 아니어도 세계경제, 한국경제의 풍파는 나와 별 상관 없는 안정된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1970년대 생인 나는 하루하루 내가 살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가 인이 박혀있는 듯하다. 그걸 절대선이라고 나도 모르게 규정하고 있는 나로서는 내일이 시험인데 일단 잠 좀 자고요, 일단 건드리지 말아봐요,라며 자기방에 들어가 침대에 들어가 눕는 아이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지금 내가 좋은 거,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면 그걸로 족한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을 잘못 키웠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생각은 성적이라는 결과와는 관계가 없고 그냥 하루하루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내 기준과 아이들의 기준이 안 맞는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부모의 삶의 자세를 아이들에게 전하는데 실패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는 거지. (뭐 대단한 삶의 자세는 아니지만 살면서 성실하고 책임감 있어서 믿을만 하다는 소리 들으면서 산 것이 작은 자부심이라, 가진 게 그것 뿐이라 그거라도 물려주고 싶었나 싶다.)
폭삭 속았수다,를 두 번째 보았다. 남편이 열심히 보길래 덩달아 두 번째 보면서 배 타려던 은동이를 말려서 결국 얼음공장에 취직했을 때 얼음공장 사장이 하는 말이 요즘 내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난 니가 명마의 자식이라 쓰는 거야. 경마 판에 명마가 한 번 나오면 억만금씩 해. 근데 그 명마의 후예는 더 비싸. 뛰어볼 것도 없이 억이라고. 소도 말도 사람도 격이 다른 게 따로 있더라. 요새 사람 성실한 거 고지식하다고 무시혀도 니 아버지 양관식이 성실한 건 감히 한 톨도 무시해선 안 될 급이더라고.
폭삭 속았수다, 14회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헬조선에서 살기 힘들다고 죽고 싶다는 청년들의 글에 달린 댓글에 '다시 생각해 봐,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날 확률, 그 다음에 한국인으로 태어날 확률을. 지구 인구분포 상 중국인 아니면 인도인, 남미인으로 태어날 확률이 훨씬 높은데 그들의 평균적 삶을 생각해보'라고 한다는 것처럼. 아인슈타인에게 마릴린 먼로가 당신이랑 나랑 결혼해서 외모는 나(마릴린 먼로) 닮고 머리는 당신 닮은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하니 아인슈타인이 외모는 나(아인슈타인) 닮고 머리는 당신 닮은 아이가 나오면 어쩌냐고 했던 것처럼 확률은 그야말로 랜덤하다. 그러니 dna는 이만하면 만족하자. 위를 보면 끝이 없다. 애들은 문제가 없다.
리셋은 없다. 그냥 아직 어리디 어린 새싹들을 달라진 내가 새롭게 대하면 된다. 부모가 다 아는 양 '엄마가 해봐서 아는데, 아빠가 그런 애들 많이 봤는데' 이런 소리 하지 말고, '너 그러다 나중에 내 탓 하지 마라' 이런 면피성 발언 하지 말고, '어린 놈이 이렇게 체력이 약해가지고 얻다 쓰냐' 이런 안 하니만 못 한 소리 입 밖으로 뱉지 말고. 해서 아이 귀에 안 들어가고 튕겨나올 말, 상처만 줄 말은 하지를 말자.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랬다고. 지갑은 못 열어도 입은 닫을 수 있잖아. 입은 이해당사자 아닌 사람들과만 열자.(중고등학생 엄마들 모여봐요.) 날씨 얘기 같은 스몰토크만 하자.
아침에 아이들 학교 차로 데려다 줄 때 '오늘도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매일 복창하는 것처럼 아이들 학교 보낼 때 '오늘 하루도 잘 지내고 와.' 덕담하는 것처럼 보드라운 말만 하자. '오늘도 힘들었지? 공부하느라 글 쓰느라 고생 많이 했네.'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말만 하자. 그 옛날 아무 것도 몰라서 기도밖에 할 수 없었던 부모님들처럼.
그러다가 애들 버릇 나빠질까 걱정된다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악담처럼 표현해서 얻어질 건 또 뭔지 싶다. 남편이 조수석에 앉아 운전하는 나에게 버럭버럭 화를 내며 '너 방금 사고날 뻔 했다. 너 그러다가 큰 일 난다.' 말하는 게 나에게 주는 유익이 없더라. '방금은 큰 일 날 뻔 했는데 이렇게 하는 게 좋아.'라고 다정하고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는 거라면 모를까.
시험 끝났다고 뚝섬유원지에 수영하러 갔다오더니 오늘은 친구집 가서 하루 자고 온다는 아들내미,
고3인데 여름방학에 1박2일 놀러가는 행사 냉큼 손들고 온 딸내미에게
재미 없는 일상 중에 재미있는 일 잘 찾아서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한 나를 칭찬하며.
나도 나 재미있는 거 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