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생신을 까먹었다. 음력으로 쇠시는지라 미리 확인해뒀어야 하는데, 요 몇 년간 아버님 생신이 나랑 간장이 생일보다 뒤여서 올해도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7월 말 8월 초에 회사 휴가가 있으니 그때 쯤 찾아뵈면 얼추 맞으려니 했다. 그런데 올해는 윤6월이 있어서인지(모름) 8월이 되기도 전에 아버님 생신이었던 걸 당일에 아버님이 전화를 주실 때까지도 몰랐다.
남편과 해진 여름 저녁 경춘선 숲길을 걷고 있는데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내 생일이거든. 근데 니가 나중에 지나고 나서 생일 못 챙긴 걸 알면 얼마나 미안해할까 싶어서 전화했다. 생일 그거 별 거 아니니 미안해 하지 말아라."
남편이랑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곧 찾아뵙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이었나? 아버님이 전화를 주셨다. 간장이 생일이 되면 만으로 열아홉이 되니 성년이나 마찬가지다. 할아버지가 성년 생일을 챙겨주고 싶으니 같이 식사를 하자 하셨다. 가만히 앉아 자손들의 일을 하나하나 생각하고 계셨을 아버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약속한 날이 왔다. 아버님이 아침 근로를 끝내고 집으로 오셨다. 아버님을 역으로 마중 나가 그 길로 마트에 들렀다. 간장이와 아버님은 마트 안 커피숍에 계시도록 하고 얼른 트레이더스를 한 바퀴 돌며 수박 한 덩이, 치즈 케익 하나를 사서 집으로 왔다.
조선과 일본 근대사에 관심이 많고 지식도 많은 아버님을 위해 남편이 넷플릭스에서 오다 노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조명한 다큐를 틀어놓고 시간을 보냈다.
수박을 해체해서 내고, 식초에 담갔다가 씻어놓은 체리를 내고, 감자전을 부쳐 내드렸다.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해서 점심은 간단히만 떼웠다.
마늘갈비 500g씩 세 접시를 먹었다.
다 좋은데 양념된 갈비가 타지 않도록 구우면서 먹으려니 너무 바빴다.
된장 앤다 냉면으로 마무리. (사진은 없지만 된장이 맛있다)
집에 돌아와 케익에 초를 꽂고 아버님과 간장이의 생일을 같이 축하했다.
나는 너한테 고마운 거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는 고마운 것만 있는 거다. 미안한 건 없는 거다.
1930년대에 태어나신 아버님이 이런 마인드로 이렇게 건강하게 스스로를 잘 돌보시며 사시는 건 정말 나에게도 감사하기만 한 일이다.
아버님도 그러셨다. 변변찮은 벌이에 시댁 생활비 보태느라 고생한다고 미안하다고 하지 않으셨다. 항상 고맙다고 하셨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셨지만 고마운 일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일본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 사이엔 미안한 일은 없다고 고마운 것만 있는 거라는 아버님.
영화 러브스토리의 대사가 생각나는 밤이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 are so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