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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롤러코스터

by 칼과나


영국에 있는 상사(A)가 오랜만에 catch up을 하자며 나와 대리님이 좋은 시간을 알려주면 회의를 잡겠다고 몇 개의 시간대 선택지와 함께 메일을 보냈다. A의 부서에 오고 나서 내가 원래 하던 일 외에 A의 부서 메인잡과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서 준비할 것이 많았는데 하나도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A가 움직여줘야 진행이 되는 일인지라 아, 드디어 그가 조직개편 후 바쁜 게 좀 끝나고 우리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나보다 싶어서 얘기할 거리를 정리해서 들어갔다.


1535548.jpg?type=w966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 미팅은 한국인 부서장이 있는 새로운 팀(C)으로 소속을 옮기면 어떻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나와 대리님을 포함한 로컬라이즈 관련된 팀이 A의 소속이 된 것은 2월에 있었던 조직개편(이라 쓰고 집단 해고라고 읽는다) 후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의 직속팀이 된 것이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도 A의 팀에 속해있긴 했지만 아시아 전체로 20명이 넘던 멤버들이 있고 그 멤버들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 두 명이 있어 그 중간관리자들만 A에게 보고하며 팀을 이끌어가고 있어서 우리 같은 일반 멤버들은 A의 이름만 들을 뿐 A에게 닿을 일이 없었던 것.


그랬던 것이 아시아 4 + 일본 2의 멤버들만 남아 A가 이들을 각각 관리하게 된 것이다. A는 다른 팀들도 3~4개 맡고 있는데 각 팀을 각 한 명의 팀장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그의 메인잡을 3~ 4명 팀장들과 함께 운영하는데 그의 메인잡도 아닌 팀 6명을 직접 관리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오래가기 힘든 체제 같았다. 조만간 이 팀에도 팀장을 뽑거나 뭔 수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는데 드디어 그가 결론을 낸 것이다.


한편 나와 대리님은 올 2월 조직개편 이후 C팀과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 업계를 주관하는 정부 관계 기관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인 부서장이 필요했다. 그게 법 규정이어서다. 그런데 나의 상사는 한국인이 아니다보니 더 큰 우산 아래 속해 있는 다른 팀 한국인 부서장이 대외적으로 부서장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서류상의 부서장이지만 그가 우리 일을 알면 좀 더 같이 일을 하기 편하겠기에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관계기관의 평가를 받으러 같이 부산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처음 서류상으로 우리의 부서장이 된 직후 그 엄혹한 자리에 같이 갔다와 보고는 우리가 하는 일이 쉽지 않겠다며 자기 부서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 오피스 레노베이션 같은 경우에도 우리는 원래 고정자리가 없어지는 부서 중의 하나였는데 C팀은 고정자리를 배정받는 부서였다. 어차피 우리팀 팀장 A가 그의 팀 C와 같은 보스 아래 일을 하는 같은 팀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의 부서 내에 자리를 합쳐줄 수 있는지 타진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와 대리님도 자리를 배정받게 되었다. 자리를 배정받았다는 건 그만큼 자주 그 자리에 앉아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월1회에서 주 2회 정도로?)


이렇게 조직상으로는 A 밑에 있으면서 실제로는 C팀과 물리적으로도 가까와지고 업무적으로도 협력하게 되는 상황에서 A가 용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모국어 사용자들만이 할 수 있는 세세한 감정적 교류와 편안한 커뮤니케이션, 물리적으로 가까움으로써 제공할 수 있는 친밀감 같은 것을 자기가 제공할 수 없는데 너의 한국인 부서장은 너에게 그런 것도 제공할 수 있으며 C팀이 하고 있는 역할에서 너희들의 업무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앞으로 커리어 성장 측면에서도 시너지가 날 것 이라고 설명했다.


A는 그의 보스이자 C팀의 보스이기도 한 M에게 이 제안을 했고 M이 C팀의 한국인 부서장(S)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S도 매우 반가워하며 불감청이나 고소원이라며, 우리를 자기팀 내 어느 소그룹에 배정해서 각각의 역량에 맞춰 이러저러한 일을 맡기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A와 나와 대리님의 3자회담으로 시작되었던 미팅은 S팀장까지 4자회담으로 바뀌고 영어는 마이너 언어가 되고 S팀장님은 한국어로 모든 프로포절을 진행했으며 내가 간간히 A에게 지금 이런 얘기 하고 있다, 정도만 정리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하던 일에 새로 속하게 될 C팀 내의 트레이닝 담당부서에 배치될 것이며 리버풀에 있는 트레이닝 담당부서장과의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맡게 되었다. 핫씨. 직속 상관이랑 면담할 때 미리 말 할 거 생각 안해도 되는 건 좋네, 했더니 더 자주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게 생김. 올해는 어떻게든 영어 말문을 좀 더 틔워보는 걸루...


아침에 대리님에게 2월부터 우리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이직 안 했는데 이직한 거 같은 기분이라고.ㅋㅋㅋ 딱이닷ㅋㅋㅋㅋ.


나는 원래 영어와 일어를 적정수준으로 하고 한쿡어를 잘 해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것인데 23년 재직한 후 새로 속한 팀이 나에게서 쓸모를 발견한 역량은 영어 회화능력이라는 게 아이러니.


다른 측면에서 보면 원래 잘하던 것에 더해 하나의 역량을 더 끌어올린 것이니 2017년부터 BTS 덕질하느라 영어 많이(잘 아님 주의) 씨부리고 읽더니 회사에서 쓸 역량 하나 추가한 나를 칭찬해. 여러분 덕질이 삶에 이렇게 도움이 됩니(끌려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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