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는 기준을 표시하는 눈금 같은 것,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6월에 참석해야 할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만들고 있다. 그런 내가 바빠 보였는지, 아니면 가내수공업 공장이 아닌 진짜 공장에서 만든 옷이 입고 싶었는지 아이가 여름 티셔츠를 사달라기에 주문해 주었다.
평소 아이에게 옷을 만들어줄 때 L 사이즈로 했었기에 별 생각없이 L 사이즈를 주문한 게 화근이었다. 기본적으로 크게 나온 티였던 것을 모르고 L 사이즈로 골랐더니 중1 남아에게는 비옷을 뒤집어쓴 것 같은 핏이었다.
"엄마 이거 너무 큰 것 같은데요?"
"그러네. 어쩌냐. 바꿔야겠다."
옷의 세부 사이즈를 확인해 보았다. 아이가 가장 잘 입는 옷을 들고 오게 해서 어깨너비, 품, 길이를 재어보게 했다. 확인해보니 사야 할 사이즈는 M이었다. 반품을 접수하고 물건을 회수한 후 반품배송이 완료되고 업체가 제품을 확인해서 교환된 옷을 받기까지 1주일이 넘게 걸렸다. 편하자고 옷을 샀는데 결과적으로는 만드는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옷을 만들 때는 옷을 입을 주인이 평소 잘 입는 비슷한 종류의 옷을 가지고 나와 새로 만들 패턴과 비교해 본다. 셔츠를 만들 거라면 셔츠를, 티셔츠를 만들거라면 티셔츠를. 그러니 아이의 티셔츠를 살 때도 S니 L이니 하는 사이즈 명칭을 볼 것이 아니라 실제 옷의 치수를 확인해보고 맞는 사이즈를 선택했어야 한다.
바느질쟁이들에게 S, M, L 같은 사이즈는 내가 원하는 곳에 닿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표시하는 눈금 같은 것이다.
몸판은 S 사이즈지만 팔뚝이 두꺼워서 S 사이즈 소매를 붙였을 때 부대낀 경험이 있었다면 다음에 만들 때는 소매가 붙을 암홀을 조금 더 파주고 M 사이즈 소매를 붙이는 식으로 패턴의 사이즈를 나에게 맞게 조정해서 만든다.
만들 때는 그런 과정을 거쳐 어떤 사이즈로 만들지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길이도 늘이거나 줄이면서, 옷을 살 때는 그런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L 사이즈를 누른 것이다. 교환된 사이즈의 옷이 마침내 배송되었을 때 아이에게 얘기했다.
"클릭 몇 번이면 2~3일 내에 옷이 도착한다고 쉽게 생각했는데 옷을 만들 거라면 확인하고 넘어갔을 사이즈 확인을 안 하고 샀더니 만드는 것보다 더 오래 걸렸지? 우리 다음에는 옷을 고를 때 '나는 지금부터 옷을 만드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치수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사자."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는 모든 조종사에게 맞는 완벽한 조종석을 만들고자 했던 미 공군의 시도가 실려 있다. 1940년대 말 미 공군이 잦은 전투기 추락 사고를 줄이기 위해 조종사의 신체 치수를 평균 내어 모두에게 적당한 평균적인 수치를 찾아내기 위한 대대적인 조사를 했다고 한다.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등 조종석 설계에 관련이 깊을 것이라고 생각한 10개 항목에 대해 조종사들의 치수를 재고 각 항목의 평균치를 낸 후 '평균 조종사'의 신체 치수를 도출해 내었다.
조사의 담당자는 조사 대상이 된 4063명의 조종사들 중에 이 '평균 조종사'에 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았다. 조사 결과 도출된 키의 평균값은 175센티미터였지만, 키가 170센티미터에서 180센티미터 범위라면 평균에 해당한다고 간주하는 식으로 범위를 설정한 후 10가지 영역에서 모두 이 평균 수치에 해당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확인해 본 것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0이었다. 조종사들은 선발할 때 이미 특정 신체조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키가 지나치게 작거나 큰 사람은 조종사가 될 수 없어 비교적 균질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10가지 영역에서 모두 평균값을 충족하는 조종사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미 공군은 조종석을 설계할 때 주요한 수치들을 조종사에 맞게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고 한다. 자동차도 남편이 운전할 때 설정해 둔 운전석의 위치와 높이로 내가 운전해야 한다면 운전이 얼마나 불편하고 위험할지 상상해보면 아찔하다.
옷을 입을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허리와 골반이 거의 일자인 사람, 허리와 골반의 크기가 많이 차이 나는 사람, 말랐는데 키는 큰 사람, 키에 비해 팔이 짧은 사람, 체형은 인구 수만큼이나 다양한데 옷의 치수는 기껏해야 S, M, L, XL, 55, 66, 77, 88 몇 가지 되지도 않는다.
내 몸은 잘못이 없다. 옷의 사이즈에 나를 맞출 게 아니라 옷을 내 몸에 맞게 입어야 한다. 55니 66이니 하는 것은 사람들의 신체치수를 부위별로 묶어서 허리 둘레가 이 정도인 사람은 팔 길이와 가슴 둘레가 이 정도일 것이라고 가정해서 만든, 불특정 다수에게 옷을 팔기 위한 의류산업의 고뇌의 결과일 뿐이다.
우리의 몸은 그런 식으로 생기지 않았다. 옷을 만들면서 사이즈에 대한 생각을 '(넘기 어려운) 장벽'에서 '눈금'으로 바꿔 장착하기 전까지 '나는 왜 상체는 44와 55 사이고 하체는 55와 66 사이인가'를 고민하며 내 몸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상체를 키워서 55로 만들고 하체는 빼서 이 또한 55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옷을 만들면서는 기본이 되는 패턴을 두고 다리 품은 허벅지를 약간 늘리거나 무릎 밑에서는 조금 붙게 만들고, 밑위 길이는 이렇게, 전체 길이는 저렇게, 하나하나의 요소를 적절히 조절해서 내 몸에 맞게 만들다보니 55라는 사이즈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55든 66이든 내 몸에 맞는 것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 올림픽 메달리스트 양궁 선수가 나온 걸 본 적이 있다. 바람이 불지 않는 실내에서 쏘는 것이다보니 10점 만점을 쉽게 쏘리라고 모두들 기대하며 화살 쏘는 시범을 보고 있을 때 그 선수가 말했다. 첫 발은 기대하지 말라고 첫 발은 감으로 쏘는 거고 두 번째 발부터 첫 발을 쏜 감각과 실제 화살이 꽂힌 곳을 기준으로 조정해서 10점을 쏠 수 있는 거라고.
옷을 만들 때도 그렇다. 새 패턴으로 처음 만들 때는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각오한다. 소매 길이나 다리 길이 같은 것은 대충 가늠해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만들어 입었을 때 소매가 조인다거나 허벅지가 크다거나 이 디자인에 이 길이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은 만들어서 입어봐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처음 만드는 옷은 원본 패턴 그대로 만들어본 후 옷을 입을 사람에 맞춰 수정한다.
내가 가진 스키니바지 패턴은 S 사이즈로 만들면 작고 M 사이즈로 만들면 커서 예쁜 스키니 핏이 나오지 않는다. 처음 한 번 만들 때 그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55 사이즈에 1.5센치 시접을 두고 재단한 후 1센치 간격으로 박아 여유분을 만들거나 66 사이즈에 시접을 조금 줄여서 만드는 식으로 나에게 맞는 핏을 찾아냈다.
물론 적절한 분량을 알아내기 위해 박았다가 뜯었다가를 반복하는 수고를 했지만 그렇게 내 몸에 맞는 변형 방법을 알아두면 다음에 그 패턴으로 옷을 만들 때 실패하지 않는 경험치가 된다.
옷을 살 때도 그렇게 하면 실패가 줄지 않을까 한다. 먼저 나의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내 몸에는 문제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몸을 알아가기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 시작으로 내 몸의 수치를 머리에 넣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그런 후 나에게 잘 어울리고 편하고 멋진 옷을 찾아보는 것이다.
내가 정복해 나갈 나의 세계를 내 발밑에서부터 단단하게 구축해간다는 감각으로 처음에는 많이 입어보고 재어보고, 그러다 시행착오를 만나면 귀찮아하거나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해서 나의 경험치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그것을 기준으로 '이 정도면 나에게 잘 맞아'라고 확신할 수 있는 아이템과 브랜드를 하나씩 확보해 가면 좋겠다.
어떻게 해도 내 몸과 의류산업의 사이즈 체계가 좀처럼 타협이 안 되는 경우라면 의생활에 중요한 몇몇 아이템은 맞춰 입는 것도 방법이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찾아 먼 길을 방황해야 하는 분들 중에 뜻이 있는 분은 옷을 한번 만들어보는 경험을 하는 것도 괜찮다. 만들어 입는 가장 큰 장점은 이때 나타나니까.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