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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a Dec 06. 2023

"내가 공동체의 빌런이라고?"

사회 조직 관계 소통 공동체 뭐 이딴거

"나는 입바른 소리를 잘해"


나는 평소에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 어떤 사람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입바른 소리를 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런 사람에게 권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진짜 위한다면 이런 입바른 소리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주 미움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미움도 정의 앞에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감당할 것이다. 또한 입바른 소리 할 때도 나름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나도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누구든지 내게 입바른 소리를 하면 들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나름 괜찮은 사람이다. 


"아니, 미안한데 당신이 빌런이야"


당신이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고? 당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든 줄 알아? 조금이라도 당신 입맛에 안 맞으면 직설을 퍼붓더라고. 다 퍼붓고 나서는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한 말이야", "나는 뒤끝이 없어"라고 말했지. 받은 상처보다 다 풀고 개운해진 당신의 마음이 더 중요하지. 그래서 당신 앞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만 보면 주눅 들어서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아.  입바른 소리? 그건 말이야. 존중과 매너를 갖추어서 하는 거야. 밥이라도 사주고, 커피 한잔이라도 쥐어 주어야 하는 거고, 그 부족함을 도와줄 마음으로 말해야 하는 거라고. 당신은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것은 맞지만, 무례하고 교만한 사람이야. 그런데 당신이 그걸 모르는 거지. 왜 모르는 줄 알아? 아무도 말하지 않거든. 누가 당신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거든. 당신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 평소에 당신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해 주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기에, 당신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였어. 그거 알아? 당신이야말로 우리 공동체의 빌런이야!



"나는 입바른 소리 절대 못 해"


나는 절대로 입바른 소리를 못한다. 아무리 그 사람을 위한 말이라도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는가? 나는 다 받아 줄 수 있고, 다 품어 줄 수 있다. 사람이 다 똑같다. 당장은 내가 더 나을 수 있지만, 언제든지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그런 입바른 소리를 하겠는가? 그리고 내가 아니더라도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니 그 사람도 얼마나 힘들겠는가? 나까지 그렇게 할 소리 다 하면 감당이 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다. 내가 못 들으니까 내가 말을 못 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연약하지만 공감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나름 괜찮은 사람이다.  


"아니, 미안한데 당신도 빌런이야"


당신이 입바른 소리를 못한다고? 정말 그럴까? 앞에서는 못했겠지. 그런데 뒤에서는 하잖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을 비난하면서 뒷담 하잖아. 그런데 그 뒷담이 다 본인의 귀에 들어간 거지. 그래놓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척 당사자 앞에서 웃으면서 말할 때를 생각해 봐. 당신이 그렀다고. 입바른 소리? 그건 말이야. 앞에서 무례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나쁜 거지만, 뒤에서 뒷담 하는 것은 비열한 거야. 당신은 당사자 앞에서 친절했다고 생각했지? 표정에 다 나타나던데? 말은 안 하지만 표정에 다 쓰여 있어. 당신은 결코 감정을 잘 숨기는 사람이 아니야. 어떤 식으로는 기분이 안 좋은 것을 표현하지.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 기분 안 좋은 것을 다 알아. 그런데 당신만 몰랐던 거야. 당신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왜 말을 못 했냐고? 말하면 앞에서는 미안한 척을 하겠지만 돌아서서 또 뒷담을 할 거니까. 그래서 말하지 못한 거야. 알아? 착각하지 마. 당신이야말로 우리 공동체의 빌런이야.



"그게 나고, 그게 너야"


나? 우리? 사실 누구라도 이런 딜레마 속에 산다. 이 사람 앞에서는 내가 피해자이지만, 저 사람 앞에서는 내가 가해자이다. 입바른 소리 안 하는 사람 없고, 뒷담 안 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그런 상황들 속에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어떤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더 어른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빌런이라는 것을 알고 분노하고 복수하는 사람도 있지만, 돌아서서 억울하다고 울면서도 자책하고 조심하고 결심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런 멋진 사람들을 만날 때면 역시나 한 줄기 희망을 보게 된다. 그냥 완전하지 못하겠지만 그런 희망의 사람이 되면 좋겠다. 어른... 참 어렵지만 참 그립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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