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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저널 Dec 23. 2022

보이지 않는 위험, 새로운 희망, 깨어난 포스

마인드저널 탄생스토리

보이지 않는 위험



지난 6개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고요한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살면서 다양한 사건사고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일어났지만

이번엔 나에게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며

누구와 경쟁이 아닌 나 자신에게 치열한 삶을 살았다.

세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나의 성장도 집중하며 직업은 투잡을 뛰었다.

새벽에 확언과 매일 아침 산책을 하고

긍정적 미래를 바라보며 원하는 성공을 바라보고

시간의 루틴을 계획하고 습관화하며

최선의 노력을 쥐어짰다.


건강을 위한 운동

재정을 위한 일터

관계를 위한 소통

미래를 위한 지식

마음을 위한 명상까지


세상의 모든 지혜와 통찰을

나의 뇌 속에 

나의 몸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어느 날 나는 현실 세계에서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가 모든 검사 이후

뇌종양으로 확인되어 대수술을 받았다.


두 달 정도 현실과 정신세계를 오고 갔다.

모호한 꿈과 이상이 보였고

현실의 고통과 통증 감각으로

신체에 갇혀 있는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뇌 수술 이후 두 달 정도면 일상생활을 회복할 거란 의사 말을 믿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석 달이 지난 후에도 나의 체력은 이전의 활동을 따라가지 못했다. 조금만 침대 밖을 나와도 움직이기 힘들고 어지러웠다. 집안일하기도 잔일도 힘들었다. 청소기 한번 작동시키고 방을 돌아다니면 진땀이 뻘뻘 흘렀다. 나의 신체는 아직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수술 후 진통과 움직임이 둔해진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두 눈의 초점이 다르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거울 속에 나는 두 눈의 크기가 짝짜기였다. 방향도 하나는 정면 다른 하나는 옆을 바라보았다. 머리에 들어온 내가 바라본 시야는 두 개였다. 피카소의 그림 속 여인이 정면과 측면을 동시에 느끼듯 어지러이 움직였다. 괴기 영화의 괴물처럼 얼굴도 붓고 눈 크기도 제각각이며 눈동자 방향도 다른 것이다. 


뇌 수술 상처는 왼쪽 눈썹 위 이마에 머리카락 난 곳으로 시작이며 둥글게 반원을 그리고 왼쪽 귀 윗선까지 물음표 모양을 그렸다. 상처 부위만 머리카락을 밀었기에 벌겋게 상처 라인이 보였다. 두 주가 지나고 병원을 퇴원해 치유 시간을 보낼 무렵 이상하게 뇌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더 쑤시고 아파졌다. 누렇게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응급실에 실려갔다. 뇌 개복술 이후 봉합술에는 두개골과 두피 사이 접촉을 완화시키려고 실리콘 같은 물질을 넣는다. 대부분의 환자는 체내 수용되어 녹아 흡수되는데 나에겐 이물질이 되어 봉합 사이를 뚫고 누렇게 젤리처럼 흘러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누런 고름이 체내 밖으로 나오는 게 옥죄이는 두통을 완화시켜주는 것이다. 다리나 팔 부위 피부에 상처가 생겼다가 벌겋게 부어오르면 아프다가 고름이 된다. 피부 밖으로 나오면 고통이 완화되는 것과 같다. 몸속에 들어온 외부 바이러스 등이 백혈구가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고 그 사체들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 고름들이 얼마나 고귀하고 신성한 전쟁 후의 희생들인가 깨닫게 해 준다. 나의 몸은 수많은 시간 동안 전쟁을 치르고 희생물들이 나오고 눈의 작동이 다차원인 이상 신체 작동을 하다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눈이나 머리 상처만이 아니라 뇌의 회전이 늦어져 말하고 싶은 단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고 혀가 굳어져 발음도 어눌했다.


주변에선 아픈 치유의 기간 동안 그동안 쉬며 하고 싶은 것을 하라 했다. 읽고 싶던 책 따위는 맞지 않는 초점 때문에 윙크하듯 한쪽 눈만 뜨고 보는 것이 어지간히 힘이 들었다. 멍하니 TV를 본다거나 창밖 풍경도 바라볼 수 없었다. 시신경은 두 개의 다른 시각이 이중으로 겹쳐져 인식하기에 어지러웠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머릿속 진동을 넣어 아픈 뇌를 흔들고 두드리는 것과 같았다. 눈을 감고 고요한 곳에서 조용히 묵상하는 것이 가장 잘 보내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희망


침묵의 시간에서 

빛이 없는 공간에서

나는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나의 지나간 과거가 스르르 흘러 들어왔다. 어린 시절의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의 늦은 귀가에 컴컴해진 방안도 떠오르고 나쁜 일을 당했던 학교 운동장도 떠올랐다. 지나간 상처들이 떠오르자 눈물이 뜨겁게 차올랐다.

대학 원서 쓰던 시절 상담하던 엄마에게 냉대했던 담임샘이 떠올랐다. 선생님께 올려드린 박카스를 무시하고 내 뒤에 백화점 선물 박스를 들고 온 다른 부모님껜 벌떡 일어나며 밝게 웃던 담임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난한 배경도 억울했지만 성적이 월등하지 못해 원하는 대학을 지원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쏟아지는 감정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으로 저장된 나의 아픈 고통들이었다. 밖으로는 못 느꼈지만 해결하지 못한 채 숨어있었던 무의식은 이성으론 감당 못하게 가끔 도화선에 걸려 불쑥 튀어나오곤 한 것이다. 미래에도 가난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두렵고 지혜롭고 똑똑해지려 공부와 학습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난 6년간 마음공부와 심리학과 정신세계를 공부한 것이 그 모든 것을 하나씩 꿰뚫어 보고 통찰하게 만들었다. 


우선 지난 감정을 건드리는 과거를 차분히 바라보고 정리하였다. 

미래 계획에 집중되어 메여있는 생각과 행동도 바라보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을 현재에게 부여하고 또 부여하여 과부하 되게 만들었다.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의 나를 관찰하고

현재 내가 한 일도 천천히 관찰하게 되었다. 

미래 목표를 향한 일로 해야 할 일이 아닌 

지금 하고 싶은 일로 천천히 허락하고 

해야만 하는 의지를 내려놓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눈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간에 쫓기어 보는 것을 미루던 드라마 시리즈도 맘 놓고 보았다. 시리즈가 시즌 7~8까지 넘어가면 제작진도 십 년이 가까운 해를 함께 보내며 가족 같은 분위기고 등장인물도 화면 속에서는 수십 년을 보내며 성장한 캐릭터들로 등장한다. 며칠 만에 그 수많은 시간에 제작한 영화를 보게 되자 마치 신이 된 것처럼 그들의 인생을 한눈에 쏜살같이 훑어보게 되었다. 인생엔 굴곡이 저마다 존재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행동하는지 바라보게 되었다. 내 인생의 거울처럼 반영되기도 하고 내가 겪은 경험을 저렇게 선택해도 좋을지 나쁠지 알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무려 3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다. 한편에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이 넘으니 400여 시간이 넘은 것이다. 한 달 시간을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두 몰입해 보았다. 한 달여간 보게 된 영화를 다이어리에 적게 되었다. 시대물 영화나 드라마들은 세계사를 사실적으로 알게 되고 관련 인물과 역사를 찾아보게 되었다. 

 

눈은 이제 영상에서 책을 읽을 수 있어 그다음 달엔 책 속에 빠졌다. 

너무 많은 책들을 읽게 되자 북 리프트를 쓰고  내용들을 조금씩 적게 되었다. 북 리뷰 영화리뷰를 하니 전에 블로그에 썼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기록은 남아있는데 모두 디지털로 저장되어 있어서 한눈에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오프라인으로 펼쳐보고 싶었다. 디지털화면에 남아있는 나의 기록도 좋지만 지금은 아날로그의 내 글을 보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내가 지난 시절 끄적끄적 남긴 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상에 하루하루 같은 일정이지만 다이어리를 쓴 나는 내 과거 시절이 어제 일같이 바로바로 떠올랐다. 나의 일기가 91년도부터 있다. 거의 30년이 넘는다. 그 옛날 기록이 있다는 게 놀랍지만 중간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적혀있는 것들은 훑어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과거 사진첩과 포토북은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차례로 펼쳐볼 수 있었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며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바라보는 나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깨어난 포스


난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풀지 못한 감정을 그대로 일기에 쓰고 

미래를 위해 하루 루틴을 플래너에 적고 

사진을 찍어 포토북으로 추억을 만들고 

책을 읽고 견해를 적고

영화를 보고 감동을 적는다.

기록하는 것은 나의 일상이고

나란 존재를 내가 관찰하게 만든다.


난 나의 마음을 기록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질병에 큰 수술을 하고

일상의 큰 파도에 절망을 느낄 때도

다시 삶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익숙한 나의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핸드폰이 저장 공간이 가득 차서 더 이상 사진이나 앱 다운이 어려워졌다. 정리를 해야 하는데 용량이 더 필요한 뉴스마트폰을 구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러다 외부 하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급하게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모조리 외부저장 하드로 옮겼다. 그리고 폴더로 연도와 월에 따라 하나씩 정리해 갔다. 그해 몇 월에 있던 사진으로 과거의 시간이 추억되며 스스로 묻힌 경험들이 정리되었다. 나를 알게 되었다.


뇌에 가득 찬 생각들이 과거 현재 미래가 뒤죽박죽 섞이어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정리가 안되고 뭘 원하는지 어떤 삶의 목표가 있는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혼동하게 만든다. 

내가 하려 하는 것에 외부 정보가 들어와 거기에 또 첨가가 되고 원래 목적을 덮쳐 켜켜이 쌓인다. 주변 환경이나 시대의 흐름에 나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다.


나는 이제 나를 알게 되었다.

생각의 저장은 뇌에 한계를 만든다.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뇌의 외장하드를 적용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저장을 못해 버벅거릴 때 

외장 하드로 용량을 덜어내어 편리하게 바로 사용할 수 있듯이

우리의 뇌도 외부에 글로 쓴 아날로그 다이어리가 필요하다.


나는 나의 기록을 이름 지었다.

마인드 저널

나의 일상과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여 적혀있다.

그 속에 나는 쓰면서 현존한다.

이제 난 그 아날로그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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