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이름을 못 읽던 아이
계이름을 부를 줄은 아는데 읽을 줄은 모른다고?
전학을 많이 다녀서 배운 적이 없어요. 사촌 언니가 부르는 것 듣고 나도 부를 줄만 안단 말이에요.
그럼 다음 주까지 알아서 배워와.
9살.
즐거운 음악 시간.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출석부로 내 머리를 강타한 후, 담임 선생님은 내게 계이름을 알아서 배워 오라신다. 그렇게 나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다. 돌이켜 보면 그 선생님은 나에게 고마운 은인이다. 출석부로 머리를 맞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엄마가 내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그때부터 피아노 선생님이 이제 제발 집에 가라고 할 때까지 피아노랑 노는 시간이 이어진다. 짧았지만 내 기억 속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몰두였다.
촤르륵 펼쳐져 있는 피아노 건반들의 메커니즘이 한눈에 파악되었다. 까만 건반, 흰건반이 먼저 인식되고 선생님이 알려준 “도레미파솔”까지를 다섯 손가락으로 누르며 그럼 이다음 음은 라와 시겠구나, 그리고 또다시 도레미파솔라시…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도시라솔파미레… 어린 나의 눈에는 끝도 없이 도레파솔라시와 도시라솔파미레가 양옆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곳은 학원 간판을 걸어 놓은 일반 가정집이었는데 선생님이 거실에서 엄마와 면담을 하실 동안 나는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 이 다섯 음을 하나씩 하나씩 누르며 소리를 들었다. 선생님은 볼펜을 피아노 오른쪽 건반 마지막에서 두 번째 도 자리에 놓으시고 한번 반복할 때마다 오른쪽으로 한 칸씩(한 음씩) 옮기라고 하셨다. 금세 끝까지 옮기고 조심조심 다른 음도 눌러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의 손에는 바이엘 상권이 들려 있었고 책을 펼치자 콩나물들이 오선에 걸려있었다. 때론 똑바로 때론 거꾸로. 똑바로 걸린 콩나물들은 콩이 하늘을 향해, 줄기가 땅을 향해 서 있었다. 거꾸로 걸린 콩나물들은 콩이 바닥으로, 줄기가 하늘로 향하게 서 있었다. 이렇게 제각각인 콩나물들을 보면서도 나는 무엇보다도 일단 그들의 머리가 놓인 위치가 중요하다는 걸 단숨에 받아들였다. 고민될 것도 없이 자연스러웠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음표의 기둥(콩나물 줄기처럼 보이는 부분)은 오선의 세 번째 줄을 기준으로 음이 위로 올라갈수록 아래로 긋는다. 당연히 음이 아래로 내려가면 위로 긋는다.
곡의 음들은 순차적인 게 아니라서 악보를 처음 보면 왜 음표들의 방향이 제각각인 건지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다 보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이 부분에 곧잘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둥의 위치가 계이름을 제대로 읽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때론 너무 심도 있게 고민하며 헷갈려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보았기에 그때의 나는 용케도 중요한 것만 파악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처음 배울 때는 왜 제각각인지 깨닫지 못했지만 왠지 그냥 처음부터 콩나물(음표) 머리의 위치와 색깔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꽤나 직관적이다. 내가 지금도 관심 있는 것에는 빠르게 반응하고 높은 이해도를 보이지만, 관심 없는 것에는 놀라울 정도로 둔하며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 정도만 인식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은 내가 애초에 그렇게 생긴 인간이기 때문인 거다. 때론 그런 성향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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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 상권을 받아 들고 즐거운 리듬의 발자국 소리를 내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작은 야마하 키보드의 전원을 켰다. 우리 집에 진짜 피아노는 없었지만 외국에서 일하시던 아빠가 한국에 올 때 면세점에서 사다 주셨던 작은 신시사이저가 있었다. 9살의 작은 나의 무릎에 놓기 딱 좋은 크기의 겨우 서너 옥타브가 있는 건반이었다. 건반의 크기도 딱 내 손가락 굵기 같았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신 ‘악보를 읽는 법’은 나에게 그저 '밥은 숟가락으로 떠먹고 반찬은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거야 ‘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기술적인 것은 당연히 처음이니 동작은 어설퍼도 밥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을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바이엘 상권의 절반을 쳐보았다. 그리고 그 귀여운 음들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 소리는 각각 자기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눈으로 읽은 음표가 손끝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내가 틀린 음을 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다 말이 안 되는 조합의 음이 들리면 내가 악보를 잘못 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뒤, 선생님은 내게 바이엘 하권을 주셨다.
쓰고 보니 굉장히 잘난 척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결코 내가 천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피아노 건반의 순서와 악보의 메커니즘을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연습하고 어떻게 발현할 줄 아는지가 더 중요하다.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간단하기에 순수하게 접근하면 의외로 처음엔 쉬울 수 있다. 그렇게 존재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나서 반복하고 인내해 기술을 정복해야 천재일 것이다. 또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천재일 것이다. 나는 피아노를 정복하지도,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도 못한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피아노 학원을 계속 다녔다면 정복했을까? 머릿속에 떠도는 음들을 적당히 끄적일 수 있는 게 전부인 지금의 내가 아닌, 위대한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모차르트처럼 머리에서 생각하면 손으로 나오고 한번 친 곡은 길이에 상관없이, 악기도 없이 악보로 옮길 수 있게 되었을까? 베토벤처럼 귀가 멀어도 진동만으로 음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리스트처럼 초절기교를 가질 수 있었을까?
과거를 되돌려 미래를 바꿀 수도 없다만,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피아노 학원을 계속 다녔다 하더라도 세상 오만가지 것을 다 좋아하고 모든 것에 조금씩 재능이 있는(속된 말로 잡기에 능한) 나는 피아노 천재가 되지는 못했을 거다.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손가락이 잘 돌아가고 귀가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 될 수는 있었을지언정. 하지만 천재가 아니어도 피아노를 사랑하고 칠 수 있는 자격은 있다. 아니 피아노를 즐기는데 자격은 필요 없다. 그저 누구나 즐기면 될 뿐이다.
아무튼 나는 피아노 학원을 약 1년 정도 다녔다. 한국에서 주로 배우는 교재의 이름으로 알 수 있을 그때 나의 수준은 체르니 30번의 10번이었고, 부르크뮐러 25번의 13번이었고, 소나티네앨범 1번의 3악장이었다. (하농과 소곡집, 명곡집은 여기서 빼기로 하자.) 1년 남짓 배운 어린이의 수준으로는 상당이 높은 실력에 있는 편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내가 그만둔다고 하자 몹시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나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슬픈 상황에 놓였고 이런 억울함과 슬픔을 동시로 지으며 문학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글짓기로 예술혼을 불태워 허전함을 달랬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나는 이미 피아니스트였다. 10살. 피아노 학원을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자 체르니 30번, 부르크 뮐러 25번, 소나티네 앨범 이 세 개의 테이프를 사가지고 와서 들으며 상상 속에서 수많은 피아노 연주회를 갖곤 했다. 테이프 속 연주하는 사람을 상상하기도 했지만 직접 연주하는 상상을 더 많이 했다. 연주자의 소리를 훔쳐 내 손끝으로 옮겨 보았다. 그렇게 상상 속에서 한 번도 못 나가 본 콩쿠르 대회에서도 연주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끝내주는 곡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박수도 참 많이 받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관객들과 나의 아름다운 연주가 들리는 듯하다. 그 상상을 할 수 있었던 친구네 집, 이모네 집, 성당, 노란 장판의 방도, 까만 피아노도, 연분홍빛 커버도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