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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JiYou Jul 19. 2021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 (4)

반석이

어느덧 부쩍 짜증을 내는 학생이 있었다.

“자, 반석아 연습 좀 했어?”

“아니요.”

자식, 당당해서 좋다.


반석이는 올해 열두 살.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작년 코로나로 자가격리가 시작되기 조금 전부터였다. 반석이는 파리 외곽에 살고 있고 혼자 내 작업실로 찾아오기에는 아직 어려서 우리는 처음부터 웹캠으로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프랑스에 넉다운이 시작되었을 때도 아무런 문제 없이 온라인으로 레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영특함에 깜짝 놀랐다. 아빠가 프랑스인이고 프랑스 학교를 다녀서 불어만 잘할 줄 알았더니, 한국말도 아주 유창하게 잘하고 잘 알아들었다. 그리고 처음 배우는 아이 치고는 음감이 너무 좋아서 배우는 곡들을 너무 쉽게 이해하고 손으로 표현했다. 음감 테스트도 해 보았는데 타고난 절대음감이었다. 


처음부터 아주 쉽게 배워나가던 반석이의 모습에 나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많이 가르쳤다. 청음은 물론이고, 코드와 스케일, 치고 싶다던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도 악보 없이 가르쳐주었다. 문제는 서너 달쯤 지나서부터였다. 이쯤 되니 배워야 할 곡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아이는 점점 짜증이 늘기 시작했다.

"이거 어려워요."

"이거 안 할래요."

안 되는 부분을 여러 번 반복연습하는 것을 훈련시키려고 할 때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한숨을 쉬고 몸을 베베 꼬고 급기야 들어 눕기도 했다.

"반석이, 피아노 재미 없어졌어?"

그건 아니란다.

"그럼, 연습하는 법을 알아야 해. 피아노는 원래 어려운 악기거든. 지금까지는 쉬운 것만 했지만, 앞으로 어려운 것들이 계속 나올 텐데 그때마다 이럴 거야?"

특별하게 잘하던 아이가 벌써 여러 주 이렇게 반항이니 나의 마음도 너무 속상했다. 수업 중 절반을 아이를 설득하느라 보냈다.



당장 수업 시간을 줄였다. 반석이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서였다.

어차피 수업 중 15분 이상을 설교하고 타이르느라 보내는 중이었고, 그 아까운 시간에 잔소리를 하느라 나에게도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몇 주를 그렇게 버티다 결심이 서고 나서 당장 반석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당황하셨다. 처음엔 수업비를 덜 받으면서까지 시간을 줄이자고 권유하는 내가 이해가 잘 안 가시는 듯했지만, 곧 제안을 받아주셨다. 영특한 아이들이 종종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처음에 너무 쉽게 배우게 되면 언젠가 꼭 부딪히게 되는 어려운 순간이 아주 견디기 힘들게 마련이다. 보통사람들보다 더더욱. 늘 쉬웠는데 갑자기 어려워지니 당혹스럽고 기분이 나쁜 것이다. 그건 아이나 어른이나 어떤 일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순간을 견뎌내고 그 경험으로 인해 성장하는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되면 그다음은 스스로도 잘 이겨낼 수 있을 터였다. 나의 임무는 그런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아이를 억지로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반석이. 아주 잘 생겼다. 이런 귀여운 아이가 짜증을 냈으니.. 내 속이 더욱 상했었다.



그리고 다시 서너 달이 흘렀다. 이제 우리는 딱 30분만 만난다. 시간이 없으니 잡담을 줄이자는 핑계로 나는 반석이에게 곧바로 스케일 연습을 시킨다. 시간이 없으니 많이 시키지 않는다. 4옥타브를 두세 번 왔다 갔다 하게 시킨 후 악보로 넘어간다. 시간이 없으니 안 되는 부분이 왜 어려운지 얼른 생각해 보라고 한다. 왜 어려운지 이유를 발견하면 그걸 염두에 두고 그 부분만 한번 반복 연습해 보라고 한다. 필요하다면 양손을 따로 쳐보라고 한다. 시험 삼아 계이름만 한번 불러보라고 한다. 그럼 이제 치면서 동시에 음을 흥얼거려 보라고도한다. 필요하면 손가락을 살짝 들면서 쳐보면 어떨까? 한다. 그게 아니면 손목을 좌우로 살짝 굴리며 쳐보면?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거의 끝날 시간이 된다. 그러니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전체를 쳐보라고 한다. 이제 정말 30분이 다 지나갔으니 아쉬우면 치고 싶은 곡을 한 번만 치고 끝내자고 한다. 이렇게 이제 우리는 매번 수업시간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인사한다. 짜증은? 더 이상 없다. 나의 스트레스? 나는 영특한 반석이와 피아노를 치는 것이 너무너무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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